오지여행가 최재완 센트럴서울안과의원 원장 “‘좁은문’ 통과하니 삶이 달리 보였다”
무인도·사막 등 오지여행에 빠져…아내도 “살아서만 돌아오라”
[아시아엔=박수진 <서울대총동창신문> 기자] 구글맵에서 미국 보스턴을 검색한다. 지도를 약간 축소하고 비행기로 한두 시간 떨어진 곳을 찾는다. 섬이나 호수, 사막이면 좋다. 위성 모드로 봤을 때 민가가 보이면 탈락. 누가 여기 살까 싶고, “어떤 이미지가 그려지는” 곳이면 합격이다. 최재완 센트럴서울안과의원 원장이 여행지를 선정하는 법이다.
용산구 센트럴서울안과의원에서 지난 5월 9일 만난 최재완 원장은 “녹내장 아닌 여행 얘기를 하려니 어색하다”고 했다. 그는 녹내장 수술 분야의 명의로 꼽힌다. 국제적 명성도 높아 해외 학회 강연이 잦고 학술상도 여러 번 받았다. 최근 세계에 68명뿐인 ICGS(국제녹내장수술학회) 펠로우에 한국인 최초로 선정됐다. 그런 그가 학회 참석차 출국할 때 챙기는 짐이 있다. ‘오지 여행’용 배낭이다.
최 원장이 구글맵에 낯선 섬 하나를 띄웠다. 2009년 다녀온 미국 낸터킷섬. 가위로 오려낸 듯한 긴 해안선이 독특했다. “보스턴에서 학회를 마치고 갈 곳을 찾는데 섬이 재밌게 생겼더라고요. 해안선을 따라 야생동물 보호구역이 있고 들어가는 길이 딱 하나라 이거다 싶었죠. 바람이나 쐬려 뚜껑 뗀 지프를 몰고 들어갔더니 온통 늪지에, 야생 모기떼가 사정없이 물어뜯는 겁니다. 커다란 관목에 가려 보이는 건 없지, 내비게이션도 안 되지…. 나오는 길도 몰라서 종일 헤매다 해질 때쯤 겨우 탈출한 게 첫 오지 여행의 기억이죠. 귀국하고도 한 달은 열병에 시달렸어요.”
‘다신 안 간다’ 학을 뗄 법한데 반대였다. 의사란 직업이 조금은 단조롭게 느껴지던 참. ‘살아 있다. 이게 내 체질이구나’ 싶었다. 다음 학회가 기다려지고, 가기 전엔 두근대는 마음으로 지도를 열었다. 그렇게 다녀온 곳이 미국 데스밸리, 캐나다 밴쿠버 인근 무인도, 호주 멜버른 근처 야생 캥거루 서식지, 핀란드 린난사리 국립공원,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의 에트나 화산…. ‘오지’ 하면 떠오르는 밀림이나 늪지는 아니지만 여행 가이드북에도 없고, 웬만한 여행자는 엄두를 못 내는 곳들이다.
“데스밸리는 여름 기온이 50도까지 오르고 휴대폰도 잘 안 터져요. 많이들 가는 코스가 있지만 한두 시간 더 가서 우베히베 분화구(Ubehebe Crater)에 올랐죠. 죽은 화산에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태고의 느낌이 나더군요. 어디든 스스로 오지 같은 일을 만들면 내가 가는 그곳이 바로 오지인 거죠. 지도를 보고 끌림이 오면 갈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아냅니다.”
오지는 자연 환경이나 기후 등 위험 요소가 많아 비박이나 거친 트레킹은 삼간다. 물가면 가볍게 서프보드 정도만 탄다.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기다리는 환자들이 있는 의사로서 지키는 철칙이다. 여행 전 식단 관리와 운동으로 철저하게 체력을 관리하고, 정 위험한 곳은 유사시 ‘목격자’가 돼줄 친구와 동행한다. 서핑용 기상 예측 앱도 필수다. 결혼 22년차, 처음엔 ‘왜 그런 곳을 가냐’며 못마땅해 하던 아내는 믿음 반, 포기 반으로 “살아서만 돌아와라” 한다.
비단 여행이 아니어도 “쉬운 선택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최 원장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녹내장은 흔한 병이지만 원인과 치료법을 몰라 안과 의사들 사이 기피 분야였다. 하지만 그는 녹내장 전문의를 택했다. “남들이 해결 못하는 문제, 보기 싫어하는 환자들이 잔뜩 있다는 게 오히려 저를 흥분시켰습니다.”
2011년 개원할 때도 마치 여행지처럼 병원 자리를 골랐다. 당시 용산은 개원가에서 선호하는 곳이 아니었기에 주변에서 많이들 말렸다. 여전히 동네(이촌동) 유일한 안과인데 의사 7명, 직원 70명 규모로 키웠고 전국에서 환자가 찾아온다. “개원의 두려움도 여행으로 달랬다”는 그는 “나처럼 무모한 사람을 생각해 보니 나폴레옹이 떠오르더라. 나폴레옹 생가가 있는 코르시카 섬에 가서 그의 평전을 읽으며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녹내장이나 백내장 수술은 0.1초 사이 성패가 갈린다. 자칫 실수하면 실명에 이르니 부담이 크다. 그의 병원은 재수술 환자처럼 까다롭고 복잡한 상황의 환자들이 유독 많이 찾아 더 어렵다. “여행에서 스스로를 극한 상황에 몰아넣고 위기를 극복하면서 길러진 담력이 수술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성격도 변했다. “플랜 A부터 플랜 Z까지 세우고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그런데 아무리 철저하게 계획해도 현지에선 느닷없는 일이 생겨요. 작년에 해발고도 3100m 에트나 화산을 오르다 동행인이 탈진했습니다.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는 상황에 대신 짐을 메어주며 함께 완주했죠. 얼마 전엔 두바이 학회에 갔다가 대홍수가 나서, 오지 여행은커녕 숙소까지 차를 8시간이나 침수된 도로를 몰았고요. 사람의 계획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깨닫게 되니까 더 유연해져요.”
오지 여행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아서다. “복잡한 삶 속에서 보이지 않던 사실들이 명료하게 떠오를 때가 있어요. 현실 속에서 머리만 써서는 절대 답을 찾지 못했을 것들이죠. 새로운 경험이 뇌를 채우고 나면 안 좋은 기억이 ‘리셋’ 되는 느낌도 들어요. 그럼 현실이 덜 괴로워집니다.”
그는 “서울대 출신들처럼 모든 걸 지적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은 여행과 운동 같은 ‘뻘짓’이 필요하다”고 했다. 가이드북 여행, 패키지 여행만 다니던 사람도 오지 여행을 시작할 수 있을까. “일단 안전한 오지는 없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분들께 전 viator.com 같은 여행 사이트에서 현지 트레킹에 참여해 보라고 권해요. 절대 한국인이 인솔하는 프로그램은 가지 마시고요, 외국인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으로 시작해 보세요. 또 한 가지, 어떤 것을 보겠다는 목적은 버리시는 게 좋아요. 오로지 내가 뭘 느끼게 될지 기대만 갖고 떠나시길 바랍니다.” 요즘엔 지도에서 본 새하얀 땅에 꽂혔다. 그린란드다. 그린란드와 알래스카처럼 추운 곳의 오지도 꼭 가보고 싶다고 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일들이 적다’. 좋아하는 마태복음의 구절이에요. 오지는 제게 들어가기 어려운 ‘좁은 문’이고, 그 문을 지나 자유와 생명을 느끼면서 삶이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특별한 탐험가가 아닌 제 얘기에서 용기 얻으셨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