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부럽다”···칠순 기타리스트의 끝없는 도전

강문기 범주인터내셔널 대표 “‘슬기로운 의사생활’ 보며 연습”

[아시아엔=박수진 <서울대총동창신문> 기자] 강문기 범주인터내셔널 대표의 대학 시절은 록의 전성기를 관통한다.

청년들이 못다 쓴 열정과 반항심을 강렬한 록 음악에 의탁하던 시절, 그가 다니던 서울대도 단대별로 ‘보컬그룹’과 ‘그룹사운드’로 불리던 록 밴드가 춘추전국을 이뤘다. 상대 ‘피닉스’, 공대 ‘에코스’, 음대 ‘밀키웨이스’ 등이 있었고 종로구 동숭동에 있던 문리대는 ‘엑스타스(EXTAS)’가 이름을 날렸다. 미국과 소련의 우주개발 경쟁에서 ‘미지의 별’을 뜻하는 말인 엑스타스는 1965년 1기로 출발해 8기까지 이어졌다.

강문기 범주인터내셔널 대표

2018년 엑스타스는 50년 만에 처음으로 모여 공연을 열었다. 1, 2, 3기가 주축이 된 공연에 엑스타스 3기 기타리스트였던 강문기 범주인터내셔널 대표(서울대 식물학과 68학번)도 참여했다. 지금도 일렉기타를 치고 밴드 활동을 즐기는 영원한 ‘록 키드’ 강 대표를 6월 30일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서울대 68학번에 교양과정부란 게 있었어요. 단과대 1학년이 전부 공릉동에서 수업했는데 당시 동기 넷이 밴드를 결성해 활동했습니다. 둘은 문리대, 둘은 공대여서 2학년 때 각자 단과대로 돌아갔는데 문리대 엑스타스가 신입을 모집하더군요. ‘우리는 함께가 아니면 안 하겠다’고 지원해서 그 멤버 그대로 엑스타스 3기가 됐죠.”

강 대표가 기타를 처음 잡은 것은 중학생 시절. 부모님을 졸라서 산 클래식 기타를 뚱땅거리다 록 음악에 빠져 일렉기타로 넘어왔다. 엑스타스 3기 멤버 셋은 부산고 동기들로 고교때부터 록 음악에 빠져 밴드를 하고 싶어하던 친구들이다.

미제 일렉기타는 구할 길 없고, 일본제 일렉기타와 조악한 앰프만 겨우 갖출 수 있던 시절이었어도 열정은 뜨거웠다. 동숭동 서울대 문리과대학 운동장 스탠드 뒤편에 엑스타스 연습실이 있었다. “세계 3대 전기기타 밴드로 ‘벤처스(The Ventures)’, 클리프 리처드가 활동한 ‘섀도스(The Shadows)’, 스웨덴 밴드 ‘스푸트닉스(The Spotnicks)’의 곡을 많이 쳤습니다. 유행했던 ‘CCR’의 보컬곡도 따라했고요. 지금은 악보가 있고 유튜브도 있지만 그때는 원판 구하기도 힘들었어요. 레코드판 걸어놓고 가사 따고, 코드랑 베이스 따고. 그 시절 밴드 하는 사람들에겐 일상이었죠.”

1960년대 엑스타스 초기 공연 장면

그 시절 닳도록 들었던 ‘빽판’(해적판 LP) 속 ‘기타의 신’들은 마치 구름 속에 있는 듯했다. 그들의 소리를 선망하고 상상하는 것만으로 즐거웠던 날들이다.

“지미 헨드릭스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죠. ‘벤처스’, ‘섀도스’는 곧잘 따라 해도 지미 헨드릭스는 흉내도 못 내고 그저 들으면서 ‘아, 기가 막힌다’ 했습니다. 그가 쓰는 기타 이펙터 같은 걸 우린 구할 수조차 없었거든요. 에릭 클랩튼이 활동했던 ‘야드버즈’, ‘애니멀즈’, ‘롤링 스톤스’도 좋아했고요.”

그런 그도 졸업 후 바로 취직하면서 기타를 한동안 놓았다. 요새처럼 직장인 밴드도 없던 때다. 그 와중에 예전부터 갖고 싶었던 펜더 사의 일렉기타 한 점을 장만해 그저 바라보며 흐뭇해 하다, 가끔 퉁겨보다 무심히 세월만 흘렀다. 그러다 2007년 부산고 졸업 40주년 행사에서 엑스타스 3기가 다시 모여 공연하게 됐다. 한 번의 이벤트로 만족한 친구들과 달리 강 대표는 되살아난 음악의 불씨를 꺼뜨리고 싶지 않았다.

“공연을 마치고 혼자 직장인 밴드에 참여해 사람들을 모았어요. 부산고 행사 때 베이스 하던 친구가 미국에 살아서 온라인으로 대체 멤버를 찾다가 직장인 밴드가 많단 걸 알게 됐죠. 2009년부터 ‘메모리즈’라는 밴드를 하면서 일주일에 한번씩 모이고 있어요. 제 나이가 제일 많고 크게는 20, 30세 차이 나는 멤버, 여성 멤버도 있어서 원하는 레퍼토리가 저와 또 달라요. 새로운 걸 해볼 수 있어서 즐겁죠.”

주법에 대해 얘기하던 중 그의 바지 주머니와 지갑에서 기타 피크가 세 개나 나왔다. 코로나19 이전엔 연습을 자주 했었기에 갖고 다니게 됐다고 했다. ‘기타리스트의 훈장’이라는 굳은살도 왼쪽 손가락 끝에 선명했다. 일렉기타의 매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가 말했다. “일렉기타 하나로는 몰라요. 앰프가 필요하고 이펙터도 있어야 하는데, 이펙터 종류가 무수하게 많아요. 기타만 잘 쳐서는 안 되고 이런 장비들을 잘 활용해야 원하는 사운드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일렉기타가 어려운 겁니다. 매력이라면 매력이죠.”

코로나19 탓에 합주 연습하기는 어렵게 됐지만 연습은 게을리 하지 않는다. 까랑까랑한 소리가 일품인 펜더 사의 ‘스트라토캐스터’를 포함해 베이스 기타와 가수 송창식이 쓰는 것과 같은 오베이션 어쿠스틱 기타까지 기타 일곱 대를 갖고 있다. 장비가 좋아져 방에서 연습해도 거실에서 TV를 보는 가족에게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다. 많은 일렉기타 연습생의 목표인 속주를 잘하는지 묻자 “기타를 치는 데 속주가 전부는 아니지만 지금도 여전히 부럽고, 하고 싶고, 어렵다”고 말했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보셨나요? 밴드가 나온다길래 본 건데 요즘 합주를 못 하니까 거기 나온 캐논 록버전을 혼자 연습 중입니다. 그 곡의 속주 부분이 제법 어렵거든요. 새로운 곡에 도전해서 다 치면 성취감이 있어요. 곡을 외워야 하니까 머리도 많이 쓰게 되고요.”

젊음과 청춘의 상징인 록을 놓지 않아서일까. 칠순을 넘긴 그의 얼굴엔 기업 대표다운 중후함과 함께 청년의 눈빛이 형형하다. 한때 장발도 했었는지 묻자 손으로 귀밑을 가리켰다. “이것보다 조금 더 길었나요, 기르고 싶었는데 장발 단속이 있던 때라서요.” 그 시절 단과대학별 밴드 경연대회에도 나갔고, 대학축제 시즌엔 초청을 받아 여대에서도 많이 공연했다. 개런티를 받으면 악기 운반비에 쓰고 멤버들끼리 술 한 잔 하던 추억이 있다. “간판 기타리스트니 인기가 많았겠다”는 말에는 손사래를 쳤다.

최근 서울대문리대 동창회가 재건되면서 엑스타스의 공연을 볼 기회가 늘 것 같다. 쑥스럽다는 이유로 얼굴이 보이지 않게 올렸지만, 유튜브에서 강 대표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 ‘KangSan’ 검색 후 기타 그림이 프로필인 채널 선택. 2018년 엑스타스 합동 공연도 검색해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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