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필의 시선]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고 꽃은 바람을 탓하지 않는다는데…
선거가 끝난 지 어느덧 40여 일이 지났다. 동네 거리를 걸어 다니기가 아직도 어색하기만 하다. 사람들이 알아봐 주지 않으면 살짝 섭섭하고,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순간 어물대기도 한다. 우선 집을 나설 때부터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다니기도 뭣하고, 그렇다고 죄지은 사람처럼 푹 숙일 필요도 없고, 어느 정도의 고개 각도가 적당한지, 다시 말해서 ‘슬기로운 낙선자 생활’이 참 쉽지가 않다.
지인들이 위로주를 산다고 해도 선뜻 나가기도 뭣하다. 뜻은 고맙기 이를 데 없지만, 무슨 이야기를 해도 패배담이 되니 귀갓길은 십중팔구 씁쓸한 뒷맛만 남기고, 거룩한 위로주는 상담주(嘗膽酒: 쓸개 맛보는 술)로 변하기 일쑤다.
길거리에서, 지하철·버스 안에서 얼굴도 모르는 어르신으로부터 “내가 좀더 열심히 했어야 하는데, 미안하다”는 말씀을 듣고 크게 당황한 적이 있다. 이런 인사말은 정말 예상 밖이었다. “어이구, 아닙니다. 제가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엉겁결에 대답했다. 어떤 때는 ‘제가’를 ‘저희가’로 슬쩍 바꿔서 제 개인의 잘못이 아님을 은연중에 나타냈지만, 이것도 부질없는 이기심의 발로라고 뉘우쳤다.
아무튼 나의 행, 불행과 상관없이 잘 돌아가는 게 세상이다. 해는 오늘도 뜨고 진다. 스위치만 누르면 전기가 들어온다. 수도꼭지를 좌로 돌리면 온수가 나오고 우로 젖히면 냉수가 나온다. 이런 긍정적 생각을 하니 마음이 밝아진다.
집권당 내에서 실패 이유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성공한 이유는 단순한 반면 실패한 이유는 백 가지가 있는 법이다. 분명한 것은 실패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아야 답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상대방과 세상 사람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다면 나의 생각을 세상에 맞추려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고 꽃은 바람을 탓하지 않는다. 나무는 서 있는 자리에서 물을 길어 올려 생존한다. 집권당의 모든 구성원들은 대통령부터 평당원에 이르기까지 농부와 꽃의 자세, 나무의 의지를 본받아야 한다. 새는 좌익으로만 날지 못한다. 상처난 우익을 복원하여 좌우 균형 있는 날갯짓으로 대한민국의 비상을 이끌어야 할 책임이 정부 여당에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