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거주 외국인 지방참정권, 김종필(JP)의 선물?

김종필 총리 부부(왼쪽)와 김대중 대통령 부부(오른쪽)


[아시아엔=김제완 전 재외국민참정권연대 사무국장] “중국국적자들이 왜 한국 선거에 투표를 하지? 그들에게 언제 투표권을 주었지?”

지방선거가 있을 때마다 이런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심지어 외국인 투표권이 위헌이라는 서명운동도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왜 투표하게 됐는지 그 연유를 설명하는 사람이 없다. 관련 학자들의 논문이나 외교부 자료에도 정확한 내용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필자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필자는 지난 2007년부터 재외국민참정권연대 사무국장으로 일했다. 그전에는 발행인으로 있던 프랑스 교포신문 ‘오니바’에 1997년부터 투표권 관련 기사를 실었다. 그 당시 10년 넘게 재외국민투표권 되찾기운동을 했었다.

2007년경 블로그에 ‘참정권 3형제’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3형제 중 맏형은 400만 재외국민의 국내참정권이고, 둘째는 재일동포의 일본내 지방참정권, 세째는 미국국적 동포들의 미국국정선거 참정권이다. 3형제라는 말에 흥미를 느꼈는지 그 당시 일본 모신문의 서울특파원이 찾아와서 인터뷰했다.

사실은 3형제 외에도 두형제가 더 있었다. 외항선원들의 선상 팩스투표는 크게 보면 재외국민투표권에 포함되지만 별도의 법안에 규정됐다. 국내거주 외국인들의 국내지방참정권 문제도 있었다. 그런데 국내의 외국인 참정권은 ‘의붓자식’ 취급해 관심이 없었다. 대상자 대부분이 국내 화교들이었고 조선족 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물론 그들 중에 영주권 소지자로 제한된다.

특기할 것은 그들 당사자가 나서서 요구한 바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가장 먼저 선물이 주어졌다. 외국인 지방참정권 도입 과정은 다음과 같다.

▲2005년 6월, 정부는 ‘외국인정책 기본방향’을 통해 외국인의 지방참정권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2006년 4월, 법무부는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하여 영주권을 가진 외국인에게 지방선거 참여를 허용했다.
▲2006년 5월 31일,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부터 영주권을 가진 외국인은 지방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영주권을 가진 외국인은 2006년 12월 기준으로 67,716명이었으며, 이 중 6,435명이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했다.(출처 : 나무위키 외국인참정권)

재외국민참정권 문제는 2009년 1월 정개특위에서 합의하여 2월에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그러므로 외국인 지방참정권은 이보다 3년이나 앞서 실시된 것이다. 그 연유가 무엇일까.

필자가 당시 재일동포 지방참정권 운동하는 분들에게 들은 사실은 다음과 같다. 이 글을 참고자료로 해서 추후에 공식적인 확인과정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재외참정권 삼형제 중에 가장 먼저 시작했으며 활동력이 가장 강한 사람은 둘째형 즉 재일동포의 일본내 지방참정권이었다. 오래전부터 도쿄의 히부야공원에서 대규모 집회를 갖는 등 강력하게 일본정부에 요구했다. 그들은 4대 5대에 걸쳐 증조할아버지부터 투표를 한번도 하지 못했다. 재일동포 DNA에는 투표가 없다는 말도 들렸다. 지금 국제화된 사회 분위기에서는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데, 그들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한국국적에 두었다. 그래서 한국어는 못하더라도 국적은 지키려는 분위기가 강했다.

재외국민참정권연대 사무국장이었던 필자는 국내참정권을 먼저 요구하고 나서 일본 지방참정권을 주장해야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분들의 현실은 달랐다. 연로한 재일동포들은 한국어를 못하고 국내 사정에 어두워서 재외국민 투표권을 절실하게 여기지 않았다.

재일동포들은 일찌기 80년대부터 오직 일본 지방참정권에 진심과 열정을 담아서 청원운동을 해왔다. 유럽의 몇나라가 영주권을 가진 외국인에게 지방참정권을 부여하고 있는 사례를 근거로 들었다. 국적이 없는 외국인 영주권자들도 지방세를 납부하므로 마을의 도로나 교량 건설 등에 대한 권한행사가 인정된다는 것이 유럽의 논리였다.

그러나 일본정부의 완강한 입장이 문제였다. 한국내 일본인들도 지방참정권이 없는데 왜 일본내 한국인에게만 주어야 하나, 상호주의 원칙에 어긋난다. 이 논리에 막혀서 한 걸음도 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재일거류민단은 일본을 방문하는 한국정치인들에게 이같은 사정을 설명하며 한국내 거주 일본인도 투표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정치인들은 이같은 요구를 받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귀국하면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2000년대초 일본방문길에 김종필(JP)가 전부터 귀에 따갑게 듣던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당시 90을 바라보는 노정객의 측은지심이 발동한 것일까. 한일협정을 주도했던 정치인으로서 재일동포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던 것일까.

그가 2006년 관련법 개정때 슬쩍 한 귀절을 넣었다. 법개정 이후에 필자가 재일동포들로부터 들은 말이었다. 이 과정도 책임있는 관계자들의 확인이 필요하다. 이렇게 해서 국내의 외국인 지방참정권 시대가 열렸다. 당시 재외국민참정권 운동을 하며 여러 정보 통로를 갖고 있었던 필자도 법이 개정되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참정권 운동을 함께 했던 이들 몇분은 자국민 재외참정권을 보장해주지 않으면서 국내의 외국인 참정권을 먼저 챙겨주는 정부에 불만을 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국내거주 외국인의 지방참정권을 얻게 해준 재일동포들은 지금까지 일본내 지방참정권을 얻지 못하고 있다. 한국 외교부가 국내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부여했을 때 일본측과 사전 합의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또는 재일동포들이 연로해져 지방참정권 운동이 힘을 잃은 것이 아닌가 짐작해 볼 수 있다. 아무튼 재일동포들의 애초의 의도는 엇나간 셈이다. 이렇게 해서 엉뚱하게 국내 거주 외국인들이 참정권 횡재를 하게 됐다.

이민청 설립을 준비하는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그 당시에 앞을 내다 본 선견지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JP의 선물이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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