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길이란 게’ 최명숙

길을 걷다

많은 길을 걸었지만
아무도 길을 가르쳐 주진 않았다

어느 날은 홀로 걷는 길이기도 했다
미로 속에 가야 할 길을 물어도
답은 없고
어제의 그 길 위에서
저 노을이 지기 전에
저 먼 길 끝에 다다를 수 있다고 믿어도
그 끝을 알 수는 없었다

넓은 광장이거나
바다로 이어지는 해변이거나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이거나
아니면 낭떠러지일 때도 있었다
걸어온 많은 길 위에서
어둠의 긴 터널에 갇혀 막막하던 날이 있었다

그 막막하던 시간에
앞에서 가고 뒤에서 오는 사람이 보였고
터널의 끝의 밝음을 향해 가는 사람 사이에서
걸어온 나의 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걸어온 길이란 게
누가 가르쳐준 길일 수 없는
오롯이 나만의 길이었으며
그 길 위에는 앞에도 뒤에도 그리고 양옆에도
동행하는 이들이 있는 길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들이 있어
다다르는 광장과 해변과 갈림길, 낭떠러지를 지나
나의 길을 가고 있음을 스스로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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