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안전기본법 국민청원 마지막날…”서명 참여해 ‘무산’ 막읍시다”

‘구의역 김군 사망 사건’ 7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5월27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구의역에서 열린 추모제에서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과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등 참석자들이 9-4 승강장에 헌화한 뒤 묵념하고 있다. <글 사진 연합>

재난과 참사에서 국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생명안전법을 제정하자는 국민동의청원이 무산될 기로에 놓였다. 28일 국회에 따르면 청원 마지막날인 이날 오후 5시 25분 현재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에 관한 청원’ 동의자 수는 4만3118명(86%)이다.

국민청원은 규정상 청원서 공개 이후 30일 동안 동의 수가 5만명을 넘기면 이 청원은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로 회부된다. 심사에서 채택되면 국회 본회의로 상정된다. 5만명을 넘지 못한 청원은 폐기된다.

지난달 29일 시작된 이 청원은 국회가 △안전권 △피해자 권리 보장 △안전약자 보호 △독립적 조사 기구 △위험에 대한 알 권리 △안전에 대한 시민 참여권 △안전영향평가 등 7가지 방안을 담은 법을 제정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등 시민 단체와 참사 피해자·유가족들이 청원을 주도했다. 청원인은 청원 취지에 대해 “재난과 참사가 계속되고 있다”며 “피해자가 겪은 참사를 누구도 경험하지 않길 바란다, 시민의 안전권과 피해자의 권리 보장, 재발방지를 위한 진상 규명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2016년 6월 2일 서울 지하철2호선 구의역의 내선순환 쪽 플랫폼의 모습. 참사 직후부터 시민들은 이곳을 찾아 고인을 추모하고 재발방지를 촉구하는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다. <사진 미디어스> 

앞서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위한 시민동행’과 국회 생명안전포럼은 지난 7월 27일 공동기자회견에서 안전 관련 제도와 행정의 기본 방향을 ‘국민이 안전하게 살고 일할 수 있는 권리 보장’으로 적극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국민을 안전과 재난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보장해야 할 권리와 참여의 주체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내용을 담은 법안이 지난 2020년 발의된 생명안전기본법이다.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재난안전법, 재난구호법 등 현행법 중에도 안전 관련 법안이 있지만 재난 복구와 관리에 중점을 두고 있는 반면 생명안전기본법은 기존 법안에서 나아가, 생명과 안전을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조사 과정 참여와 회복 과정 지원 등 피해자 권리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들 단체는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된다”며 “국회 행안위에 계류 중인 생명안전기본법을 조속히 통과시키고, 모든 참사 피해자들에게 피해자 중심의 지원과 피해자 권리를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다음은 생명안전기본법 주요 내용

1. 안전권
사람의 생명과 신체가 함부로 손상되지 않도록 하는 ‘안전권’은 다른 기본권의 전제이고,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라고 헌법재판소가 판시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 안전이 권리로 보장되지 않고 있습니다. 생명안전기본법에 ‘사람의 안전권’을 명시하고, 정부가 안전권을 책임지는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2. 피해자의 권리 보장
누구라도 재난과 참사의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이유는, 모두의 권리인 ‘안전권’을 침해당한 이들이 온전하게 회복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피해자에 대한 특혜가 아니라 ‘피해 회복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입니다. 생명안전기본법에 피해자의 정의, 범위, 재난참사 상황에서 피해자의 권리를 명시해야 합니다.

3. 안전약자 보호
정부는 안전사고에 취약한 경제적ᆞ사회적ᆞ문화적 약자의 특성을 고려하여 안전약자에게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장애인과 노인, 환자, 어린이 등 신속한 이동이 어려운 분들에게 별도의 대피계획과 지원대책이 마련되어야 하고, 안전에 관한 정보가 차별없이 신속하게 제공해야 합니다.

4. 독립적 조사기구
사고가 발생하면 수사를 하고 재판을 합니다. 그런데 수사나 재판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구조적인 원인을 살펴보고, 대응이 적절했는지를 따지지 못합니다. 이는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어렵게 만듭니다. 재발방지대책을 세우려면 재난 참사의 구조적인 원인을 파헤치는 독립적인 조사기구가 필수입니다.

5. 위험에 대해 알 권리
안전사고에 관한 정보를 국가와 기업 등이 공개하도록 하여, 안전사고 발생을 은폐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내가 사는 곳에 위험한 화학물질을 다루는 회사가 있는지 알아야 하고, 노동자들도 자신이 취급하는 물질의 위험에 대해 잘 알아야 합니다. ‘위험에 대해 알 권리’가 있어야 제대로 된 대응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6. 안전에 대한 시민들의 참여권
안전에 대한 시민의 참여도 중요합니다. 안전에 대한 여러 시민 모임을 구성하여 참여의 기틀을 마련해야 합니다. 참여를 의미 있게 만들려면 생명과 안전을 과제로 하는 시민들의 모임에 권한이 주어져야 합니다. 각종 재난과 안전사고에 대한 정보에 대해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재난과 사고의 예방 및 대처 과정에서 참여하여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7. 안전영향평가
국가가 각종 정책 등을 시행할 때 안전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평가하여 실시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정부가 정책을 수립할 때 안전을 중요한 요소로 고려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특히 규제완화를 이야기하며 안전에 대한 규제마저 완화시키는 상황에서, 안전영향평가제도를 통해 안전 정책이 후퇴하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여러 참사를 겪으며 시민들은 안전사회를 열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가의 대응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시민의 관점’에서 안전시스템을 제대로 마련하려면 ‘생명과 안전이 기업의 이윤보다 중요하다’는 사회적 가치가 형성될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피해자의 권리와 함께 독립조사기구 설치, 안전에 대한 국가와 기업의 책무, 시민들의 참여, 안전영향평가제도를 규정하는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통해 생명존중 안전사회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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