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원의 차마고도⑤] 인상여강(印象麗江), 사랑이 무엇이 관대?
한 사내가 있었다. 평소 소심하여 무슨 일을 대차게 하지는 못했지만, 언어에는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금세 하와이에 이민 온 노동자를 통해 6개 외국어를 배울 수 있었고, 자신의 전공인 라틴어보다는 식물 채집이 더 적성이 맞는 것을 알았다. 그는 상무부의 제안을 받아들여 하와이 주변 섬을 탐험하여 식물 채집을 했고 그 공로로 중국 서남부를 탐험할 기회를 얻는다.
그의 탐험 목적은 나병 치료에 필요한 차울무그라(Chaulamoogra) 씨앗을 찾기 위해서다. 한번 파면 집요한 그의 성격답게 만년설이 뒤덮인 티벳 설산에서 고혹적인 호수의 늪지대를 뒤지고, 절벽 끝에 매달린 특이한 나무를 채집하고, 굴곡진 깊은 경사면을 누비며 드디어 대협곡이 여러 갈래로 주름진 해발 5,596미터인 옥룡설산 아래 여강(麗江, 리장)에 이른다.
조세프 록(Joseph Francis Charles Rock, 1884-1962)이란 이름의 이 사나이는 오스트리아계 미국인 식물학자, 탐험가, 지리학자, 언어학자, 민족지학자 및 사진작가로 활동했다.
그가 도착한 1922년과 그가 떠난 1933년 사이의 중국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대혼란 시기로 지방 군벌, 국공내전, 일본군 난징 침공, 국공합작, 팔로군 게릴라전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낯선 이방인이 산적들이 들끓는 한 가운데서 연구를 수행한다는 것은 여간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를 후원한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자 곧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젊은 나시족의 충격적인 사건을 목격하고 9년이나 더 머물며 식물학자에서 인류학자로 거듭 변신한다. 그의 충격은 파벌로 찢겨진 군벌이 벌인 티벳사원 파괴도 아니요, 무슬림 군벌의 잔혹한 유목민족 살해도 아닌, 나시족 젊은 남녀 일곱 쌍의 동반자살이었다.
나시족의 전통명절인 음력 설날, 이날의 축제에 남녀 모두 가장 예쁜 옷을 입고,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며 밤새 노래하고 춤을 춘다. 축제가 끝나고 집에 돌아갈 무렵, 여기저기 비명이 끊임없이 들린다. 젊은 남녀 일곱 쌍이 동시에 사라진 것이다.
이때 낯선 이방인이 머문 마을에도 소식이 전해져 함께 그들을 찾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실종된 젊은 남녀를 찾기 위해 원시림을 헤치고 얼음 낀 호수를 건너고, 가파른 협곡을 지나 점점 설산으로 몰려들었다. 그들 남녀 일곱 쌍을 찾은 곳은 바로 설산 아래, 그들이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동파교의 교리에 따라 제3국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운삼평(雲杉坪) 조금 지나, 성스럽게 여기는 가문비나무에 목매달아 죽어 있었다.
운삼평으로 가는 차 안에서 가이드가 짓궂은 질문을 한다. 남녀 둘 중 누가 먼저 죽어야 할까요? 잠시 침묵이 흐르자, “남자”라고 한다. 남자는 마음이 여려 연인이 죽고 나면 죽지를 못하고 도망친다고 한다. 오호라, 통찰이로고!
한 사내의 헌신적이고 집요한 노력으로 서방세계는 중국인보다 먼저 리장의 나시족을 알게 되었고, 제임스 힐턴의 유명한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의 모티브를 제공한다. 한 편의 감동적인 스토리 텔링은 티벳고원에 ‘샹그릴라’가 있다는 환상을 갖게 했고, 주민 30만명인 이곳에 한 해 관광객 4,500만명이 찾는 명소로 만들었다.
그즈음 1917년 우리나라 제주도에도 한 사내가 찾아드니 영국 식물학자 어니스트 헨리 윌슨이다. 그는 제주말로 ‘쿠살낭’이라 불렀던 그저 평범한 가문비나무가 하바드대 아널드 식물원의 정밀 검사 결과 전혀 다른 새로운 종임을 알게 되었고, 이는 장차 크리스마스트리의 95%을 차지하는 구상나무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여강의 한 식물학자는 여강을 전 세계의 관광명소로 만들었고, 제주도의 한 식물학자는 제주도 원산이 전 세계의 돈벌이가 되게 만들었다.
자, 이처럼 서양 이방인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여 화석을 수집하고 식물을 채집하는 그 이유는 묻지 않겠지만, 낯선 이방인의 발길을 머물게 한 일곱 남녀의 동반 자살에 대해서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왜냐고? 사랑이기 때문이다. 나시족은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배우자가 결정된다. 부모가 정해준 제도적 배우자에게 사랑이 깃들지 않으면 결국 죽어야만 사랑을 맺을 수 있는 제3국에서 동반자살을 하게 된다.
나는 공자에게 묻고 싶다. “사랑이 무어냐고?” “남녀유별(男女有別)이니, 음양의 이치에 따라 각자의 역할이 따로 있느니라”, 이 무슨 말인고. 다시 노자에게 묻는다. “사랑이 무어냐고?”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니, 그냥 내버려 두면 저절로 될 것이다”
어허 갈수록 태산이다. 설산에서 도를 깨친 부처님께 여쭌다. “사랑이 무어냐고?” “애증취사(愛憎取捨)는 번뇌를 가져오니, 다 헛되도다” 그 양반들 참 점잖아서 드디어 나는 사막에서 도를 통한 예수님께 “사랑이 무어냐?”고 여쭈니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느니라” 한다. 이건 뭐 달콤한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잔소리에 가깝다.
여강에 머물렀던 낯선 이방인처럼 ‘사랑’을 성인에게 여쭈어봐도 속 시원한 답을 얻지 못한 것은 매한가지라, 낭만파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에게 물었다. “사랑이 무어냐고?” “음, 처음에는 2분 동안 그 사람을 생각하고 3시간 동안 잊고 있지. 그런데 나중에는 3시간 생각하고 2분 동안 잊는 거야. 곁에 없으면 마약 중독자처럼 불안해지지.”
나는 내 질문의 해답이 점점 가까울 무렵 군인이자 탐험가이자 시인이자 신부인 푸코에게 물었다. “사랑은 무어냐고?”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선택에 달린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 그럴듯하다. 내 여태 “사랑이란 무어냐?”라는 질문 중 가장 맘에 드는 답은 나훈아의 “눈물의 씨앗”이지만, 이 모든 질문은 그들이 평생 보고 듣고 느낀 그들의 답이라 내 답은 무엇일까? “사랑은 접속이며 떨림이며 그리움이다”라고 정의하고 싶다.
우리, 차마고도 일행은 장예모 감독이 만든 <인상여강>(印象麗江), 바로 ‘나시족의 비극적 사랑의 이야기’를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해발 3,050미터 노천극장에서 1시간 가량 보고 나니, 사랑의 감동보다도 더 긴박한 고산증세로 바삐 해발 2,400미터 여강고성으로 되돌아와야 했다. 그러자 산학협력단장님께서 나시족의 사랑에 감동을 받았는지 저녁을 한턱 낸다고 한다. 더불어 대학원 총학생회장에 당선된 회원님과 외손녀를 본 회원님, 생일인 회원님이 겹쳐 또 축제가 되어 서로 덕담과 건배사가 이어지고, 여강고성 안에 있는 호텔 바로 앞 술집에서 등려군의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을 마지막으로 흥얼거리고 나니 밤 11시 50분이었다.
*6부 ‘차마고도, 13억 중국인의 별난 유비와 제갈량 사랑’로 이어짐. 사진은 인상여강과 옥룡설산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