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마음껏 슬퍼해도 괜찮은 기쁨
에스겔 25장
“너는 암몬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 성소가 더럽힘을 받을 때에 네가 그것에 관하여, 이스라엘 땅이 황폐할 때에 네가 그것에 관하여, 유다 족속이 사로잡힐 때에 네가 그들에 대하여 이르기를 아하 좋다 하였도다”(겔 25:3)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기쁨이 있습니다. 강렬하지만 잠시 후 없어지는 기쁨도 있고, 잔잔한데 오래가는 기쁨도 있습니다. 나누면 두 배가 되는 기쁨도 있고, 나누었다가 시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기쁨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과 상황을 통제하는데서 희열을 느끼는가 하면, 고통스러운 통증에서 쾌감을 느끼는 심리도 있습니다.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기쁨을 추구하며 삽니다. 무엇에서 기쁨을 느끼는가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기쁨을 느끼는 대상이 내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입니다.
암몬 족속에게는 남유다의 몰락이 기쁨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다의 패망을 보며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즐거워했습니다(겔 25:6).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것만큼 천박한 기쁨이 있을까요? 세상에서 가장 값싼 기쁨입니다.
그런데 저렴하기 때문에 가장 쉽게 맛볼 수 있는 기쁨이기도 합니다. 가성비가 아주 좋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들 찾습니다. 내 안을 들여다보니 기뻐할 거리는 없고 대신에 타인의 불행이나 보며 위안을 삼는 것입니다.
남과 비교했을 때 뭐라도 좀 더 나으면 기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비교우위의 기쁨은 이상하게도 기쁠수록 지칩니다. 즐거운데 공허합니다. 기쁨의 역치가 계속 상승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여정은 남보다 우위를 점하기 위해 올라가는 길이 아닙니다. 바닥 아래에 숨겨진 기쁨의 비밀을 캐기 위해 내려가는 길입니다. 내 전부를 걸어야 하기에 가성비가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쁠 일이 하나도 없을 것 같은데 신기하게 기쁩니다.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심지어 마음 놓고 슬퍼할 수도 있는 기쁨입니다.
바울은 이 기쁨에 관하여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고후 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