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아담의 죄를 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건 첫 아담이 선악과를 먹는 그 자리에 내가 함께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사건입니다. 그것이 인정되어야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나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사실이 내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사진은 미켈란젤로 작품 ‘아담과 하와’


에스겔 18장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찌 됨이냐”(겔 18:2)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아버지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 의인의 공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겔 18:20)

하나님나라에 연좌제는 없습니다. 부모의 죄 때문에 자녀가 고통받는다거나 부모가 쌓은 기도 덕분에 자녀가 복을 받는다거나 하는 일은 단순한 공식처럼 적용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사울같이 살아도 아들은 요나단 같이 살 수 있습니다. 다윗 같은 아버지 밑에서 압살롬 같은 아들이 나올 수 있습니다. 사무엘은 칭찬받는 선지자였지만 아들들은 악명높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몰렉 신을 섬기던 아하스에게서 히스기야같은 아들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아담과 우리의 관계는 어떨까요? 원죄에 관하여 모든 게 아담 책임일까요? 아담이 선악과를 먹어서 내가 죄인이 되었다는 의미가 나는 아무 잘못이 없고 모든 게 아담 잘못이라는 뜻일까요?

나의 죄성을 아담 책임으로 미루고 싶다면, 자기가 선악과를 먹어놓고 하와 때문이라며 책임을 떠넘기는 아담이나, 내 죄성이 아담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은 나나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담 이야기는 바로 내 이야기이며 모든 인류의 이야기입니다. 만약 아담이 선악과를 먹지 않았다면 내가 먹었을 것입니다. 나의 죄성에 관하여 원죄론을 들먹이며 아담 탓을 하고 싶은 건 내가 죄인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원죄 교리란 죄의 인과율보다는 죄의 보편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만약 원죄가 죄의 인과율에 대한 것이라면 아담이 아니라 하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에덴동산의 첫 아담은 선악과 하나 먹고 말았지만 오늘날 나를 포함한 수 많은 아담과 하와들은 선악과를 품종 계량해서 대량 재배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건 첫 아담이 선악과를 먹는 그 자리에 내가 함께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사건입니다. 그것이 인정되어야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나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사실이 내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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