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흘려 들어야 할 말, 담아 두어야 할 말
에스겔 33장
“마치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무슨 구경거리를 보러 오듯이 너에게 올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네가 하는 말을 듣기만 할 뿐, 그 말에 복종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입으로는 달갑게 여기면서도, 마음으로는 자기들의 욕심을 따르기 때문이다”(겔 33:31)
말에는 말하는 사람의 마음이 묻어나오기 마련입니다. 말을 잘 들어보면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심을 가리기 위해 하는 말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마음에도 없는 말을 진심인 것처럼 할 줄 아는 능력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마음을 감추기 위해서 오히려 더 자주 사랑한다 말하기도 하고, 기도하지 않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기도하겠다는 말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무엇이 본심이 묻어있는 말인지, 무엇이 본심을 가리는 말인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는게 문제입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언어와 진정성의 관계에 대하여 ‘신언불미 미언불신’信言不美 美言不信이라고 했습니다. 진실한 말은 꾸밈이 없고, 꾸미는 말은 진심이 없다는 뜻입니다.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는 과정에서 ‘이게 다 너희를 위한 것’이라며 말로 떠들지 않으셨습니다. 아무 말씀 없이 십자가를 지셨을 뿐입니다.
에스겔 당시에 에스겔의 메시지에 대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던 것 같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설교에 은혜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들의 말 속에 감추어진 저의에 관하여 정확하게 말씀하십니다.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름이라.” 말과 본심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은혜받았다고 하는 말이 마음에 없는 말이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날 끝이 없는 말들 속에서 우리가 지쳐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본심이 아닌 말을 하는 것과 본심이 아닌 말을 듣는 것은 하는 사람에게도 듣는 사람에게도 독입니다.
왜 성경을 읽어야 할까요? “주님의 교훈은 정직하여서 마음에 기쁨을 안겨 주고, 주님의 계명은 순수하여서 사람의 눈을 밝혀 준다. 주님의 말씀은 티 없이 맑아서 영원토록 견고히 서 있으며, 주님의 법규는 참되어서 한결같이 바르다.”(시편 19:8-9)
말을 듣는 것과 물을 마시는 것이 똑같습니다. 맑은 말이 아니면 탈이 납니다. 이 시대에 어디 가야 맑은 말을 구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