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여름 영화 대해부④] ‘비공식작전’, 흥행 참패에도 ‘팩션영화’ 중 으뜸

“공항 도착 직후, 민준은 몸값을 노리는 공항 경비대의 총알 세례를 피해 우연히 한국인 택시기사 판수(주지훈)의 차를 타게 되는데, 설상가상 갱단까지 돈을 노리고 그를 쫓고 기댈 곳은 유일한 한국인인 판수뿐, 결국 그 둘의 예측 불가한 공조가 펼쳐진다…”(본문 중에서) 사진은 <비공식작전> 한 장면


‘밀수’에서 ‘달짝지근해 7510’까지

<비공식작전>은 칸영화제 비공식 병행 섹션 감독주간 초청에 이어 국내 흥행 345만을 일궈내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던 장편 데뷔작 <끝까지 간다>(2014)와 ‘세월호 사건’을 에둘러 극화해 7백만이 넘는 대박을 터뜨렸던 수작 <터널>(2016), 그리고 넷플릭스의 성공적 안착을 넘어 한국산 드라마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국산 드라마 1호’ <킹덤>(2019)을 비롯해 <킹덤 2>(2020) 1화, <킹덤:아신전>(2021)을 연출한 명장 김성훈 감독이 하정우 주지훈 투 톱 등과 함께, 1986년 레바논 한국 외교관(도재승 서기관) 납치 실화 사건을 추적한 웰-메이드 드라마다.

‘명장’, ‘하정우 주지훈 투 톱’, ‘웰-메이드’라는 수식들이 무색하게 영화는, 개봉 4주째인 22일(화) 현재 1백4만5천여 명으로 종합 박스오피스 9위에 머물러 있다. <더 문>보다는 2배 가량 많은 수치이나, 순제작비가 200억원을 상회하고 손익분기점이 600만명이라니 역시 재앙에 가까운 대참패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비공식작전>의 흥행 참패가 유난히 더 충격적으로 다가서는 까닭은, 그간 감독을 워낙 높이 평가해온 데다 영화의 만듦새가 더할 나위 없이 뛰어나다, 고 여겨서다. 130여 분의 영화를 보는 내내, 무엇보다 드라마를 추동해나가는 플롯의 힘에 나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극적 호흡에서는 더 이상 잘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1987년 어느 날, 5년째 외교부 중동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무관 민준(하정우 분)이 막 퇴근하려던 차에 전화벨이 울리고, 수화기 너머로 20개월 전 레바논에서 실종된 선배 외교관(임형국)의 암호 메시지가 들려온다. 성공하기만 하면 꿈에 그리던 미국에 발령될 수 있을 것같은 포부에 가득 찬 민준이 ‘비공식적으로’ 그 선배를 구출하는 임무에 자원해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로 향하면서, 영화의 사건이 전격 시작된다. 공항 도착 직후, 민준은 몸값을 노리는 공항 경비대의 총알 세례를 피해 우연히 한국인 택시기사 판수(주지훈)의 차를 타게 되는데, 설상가상 갱단까지 돈을 노리고 그를 쫓고 기댈 곳은 유일한 한국인인 판수뿐, 결국 그 둘의 예측 불가한 공조가 펼쳐진다….

그 ‘공조’를 따라가는 맛이 여간 진한 게 아니다. 공항 경비대에 갱단까지 가세해 몸값을 가로채려 하고, 거기에 그 몸값을 인질극을 벌인 수뇌부에 전달하기 위해 두 주인공을 돕는 일군의 민병대까지 가세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사건들이 전개된다. 거칠 것 없는 속도감과 비교의 예를 찾기 힘들 유려한 편집 리듬으로. “민준과 판수의 ‘관계 변화’와 함께 달려가는 영화”라고 감독이 말했지만, <비공식작전>은 그 공조를 보여주는 데 만족하는 그렇고 그런 평범한 영화는 아니다. 흥미롭게도 베이루트 현지 못지않게 긴박하게 펼쳐졌던 국내 상황을 그리는 데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무려 500만 달러라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거액이 과연 제 때에 마련될 수 있을지, 그렇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했는지 그 과정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인질료를 둘러싼 후일담 등 추가적 이야기들이 영화를 한층 더 풍부하게 가꿔준다.

생애의 열연을 펼친 하정우와 주지훈 두 배우와 그들이 생동감 넘치게 구현한 성격화에 더해, 외무부 장관과 안기부장 사이의 흥미진진한 협력?갈등?대립과 양적 비중에 상관없이 기대 이상의 강렬한 임팩트를 선사하는 두 명품 조연 김종수와 김응수의 명불허전 연기, 민준을 인간적으로 챙기는 선배 박과장(박혁권)을 필두로 한 외무부 직원들의 ‘감동 사연’까지, 근자에 선보인 우리 영화들 가운데 이렇게 풍성한 드라마가 있었는지 자문하면, ‘그렇다’고 선뜻 답하기 주저된다.

한데도 영화의 거의 모든 미덕들이 수포가 돼버린 꼴이 됐다. 영화가 전하려고 그렇게도 애썼던 “짠내 나는 웃음과 생존형 액션”이 ‘범죄도시 시리즈’의 그 화끈한 액션과 웃음과는 그렇게도 거리가 멀어서였을까. 내게는 그래서 영화가 더 진정성 어리고 그만큼 더 소중하게 다가섰거늘…. 그 수준에서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높았고 말이다. 외교부 소속 말단 외교관과 그저 돈벌이에 혈안인 택시 운전사가 여느 스턴트맨처럼 자유자재로 공중을 날고, 신출귀몰할 무예를 뽐낸다면 ‘가짜’ 아니고 뭐겠는가. 더욱이 애초엔 ‘쓸모’에 의해 하는 수 없이 공조했던 두 버디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며 차차 ‘찐우정’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음미하는 재미?의미는 엄지척이다.

그렇다면 만듦새에서는 국산 ‘팩션 영화’(Fact+Fiction) 최고치라고 평한들 과장은 아닐 <비공식작전>의 흥행 대참패의 주된 요인은 과연 어디서 찾아야 할까. 판단컨대 그것은 다름 아닌 일종의 기시감[D?j? Vu(e)]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필이면 비교를 면할 수 없는 임순례 감독, 황정민 현빈 강기영 주?조연의 <교섭>(임순례)이 올 1월에 선보여 170여 만의 무난한 성적을 일궈냈다. 희대의 분쟁지역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장 테러 조직 탈레반군에 의해 일군의 한국인들이 납치되면서 벌어지는 액션 드라마. 게다가 영화의 주 사건인 베이루트 시퀀스들은 모로코에서 촬영됐단다.

360여 만으로 2021년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모가디슈>(류승완)와의 기시감을 피하기란 미션 임파서블이다. 드라마의 속내는 적잖이 다르건만, 그렇다 보니 미장센은 말할 것 없고 영화의 톤 앤 매너마저 일정 정도 비슷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판수 캐릭터는 여러모로 홍원찬 감독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박정민이 연기한 유이 캐릭터를 연상시킨다. 코믹 분위기도 그렇거니와, 캐릭터의 성숙?변화, 인물 해석에서도 둘은 닮은 꼴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인들은 반복, 달리 말해 기시감에 싫증을 쉽게 느끼곤 한다. 결국 <비공식작전>은 한국인 특유의 기질적 속성으로 인해 무너졌다고 할 수 있다. 디테일에서는 예로 든 상기 영화들과는 크고 작은 차이 즉 변주들을 드러낼 뿐 아니라, 그 변주들이 주목에 값하는 덕목들을 지니고 있건만….

반복 내지 기시감은 장르 영화의 운명이자 정체성이다. 기시감 없이 어찌 장르가 구축?발전할 수 있겠는가. 정도의 차는 날지언정 장르 영화는 으레 80?90%의 반복과 10?20%의 변주들로 구성되기 십상이다. 그 반복과 변주 중 어느 부분을 더 중심으로 볼 것인가 여부는 물론 보는 이들의 선택이다. 홍상수 영화들이 그렇게 오해되는 것처럼, 하지만 변주들을 외면하고 반복들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동어반복’이라고 비난하는 것을 바람직한 관람 태도라고 인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기시감에 치중해 영화를 보고 들으며, 어떤 특정 영화를 못마땅해하는 관객들의 취향을 탓할 수는 없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건 그들의 자유니까.

비공식작전 포스터

<비공식작전>은 애석하게도 이 땅의 관객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는 데는 실패했다. 그렇다고 그 영화가 못 만들었다거나 수준 이하라고 평할 수는 없다. <비공식작전>의 흥행 참패는 텍스트?콘텐트로서 영화의 문제라기보다는 달라질 대로 달라진 영화 관객, 환경 등 다른 요인들 때문이라는 것이 내 요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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