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여름영화 대해부③] ‘더 문’, 절반의 실패, 절반의 성공

<더 문>


 ‘밀수’에서 ‘달짝지근해 7510’까지

이미 말했듯 <밀수>부터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이르는 올해의 네 텐트폴 영화 중, 가장 큰 (순)제작비가 투하된 것은 약 280억원의 <더 문>이다. 2029년, 대한민국 최초로 떠난 달 탐사에서 동료였던 두 선배는 일찌감치 저 세상 사람들이 되고 홀로 살아남은 막내 대원 황선우(도경수/디오 분)와, 그를 무사 귀환시키기 위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선우 아버지의 상사이자 선배인 전 우주센터장재국(설경구)을 필두로 지구에서 분투하는 관계자들 사이를 오가며 펼쳐지는 치열한 우주 생존 드라마다.

이 짤막한 줄거리 소개만으로도 혹할 만하거늘, 영화는 개봉 14일째인 8월 15일(화)을 기해 박스오피스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17일 기준 12위에 머물러 있다. 놀라지 마시라, 흥행 성적은 50여만 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쯤 되면 대참패 정도가 아니라 대재앙이라 평하지 않을 수 없을 터.

제작을 겸한 ‘신과 함께 시리즈’의 쌍천만 감독 김용화는 말할 것 없고 지난해 <외계+인 1부>(최동훈)로 인한 재앙으로 이미 결정적 타격을 입은 CJ ENM, 나아가 (산업적) 위기의 터널에 갇혀 있다는 한국영화계를 둘러싼 작금의 위기감은 한층 더 고조되지 않을 수 없을 테다.

그렇다면 <더 문>은 그렇게 ‘엉망’으로 만들어진 영화일까. 유튜브 채널이자 팟캐스트 매불쇼 시네마지옥에 라이너, 거의없다 그리고 나와 같이 고정 출연 중인 평론가 최광희의 진단처럼, <디 워>(2007, 감독 심형래)나 <클레멘타인>(2004, 김두영) 같은 ‘역대급 졸작’일까.

<더 문>

아무리 엄격하게 평해도 내 답변은 “아니다!”, 이다. 다분히 도식적인 데다 식상한 내러티브 구조나, 다소 과도한 신파성,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은 인물 및 연기 연출 등은 크고 작은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도, 영화가 일궈낸 시‧청각 층위에서의 성취는 단연 주목에 값하기 충분해서다.

시네마지옥에서도 간단히 평했듯, <더 문>의 결정적 약점 내지 문제점은 SF 장르에서 요청되기 마련인 최첨단 VFX(Visual Effects)와 극적 설정 상 부득이 감상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을 낡은(?) 감성 간의 충돌에서 연유하는 괴리(라는 것이 내 총평이)다. 비교를 피할 수 없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2014)나 제임스 캐머론 감독으로부터 “사상 최고의 우주 영화”라는 극찬을 받은 <그래비티>(2013) 등과는 달리 감상성을 감동으로 승화시키질 못하고, 평소 그 순기능을 역설해온 내게도 부담스러운 과도한 신파로 나아간 것이다. 극적 사건과 캐릭터들의 사연에 좀더 거리를 견지하며 건조하게(Cool) 그렸어야 한다고 할까.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면서, <더 문>을 일정 정도 변호하고픈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인터스텔라>가 <명량>(김한민), <겨울왕국>과 더불어 1천만 고지를 넘었던 2014년이 아니라 요즈음 선보였더라도, 그런 기록적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천만의 말씀, 이다.

판단컨대 천만은커녕 500만 선도 돌파하기 무리였을 게다. 그 증거가 국경일인 15일 개봉하면서 첫날 50만을 넘었건만, 그 다음 날부터 이틀 연속 10만명대에 그친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 <오펜하이머>의 ‘부진한’ 흥행 실적이다. 2014년과 작금의 한국영화계는 이렇듯 천양지차인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포탈 다음의 네티즌 평점을 찾아보면 두 영화는 10점 만점에 8.0으로 같다. 동의 여부를 떠나 <더 문>을 향한 평가가 바닥인 것만은 아니다. 국내에서는 기념비적 VFX보다는 절절한 부성애 같은 가족 드라마로서의 감동 서사로 <인터스텔라>가 천만클럽에 가입하는 쾌거를 일궈냈지만, 정작 제작 당사국인 미국 등 북미 지역에서 벌어들인 매출 총액은 제작비 1억6천5백만 달러에서 불과 2천만여 달러밖에 넘지 못하며 상대적 ‘실패’를 맛봐야 했다.

오스카상 시상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버드맨>이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각본상, 촬영상에 이르는 4관왕에 오른 2015년 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는 5개 부문에 후보지명됐으나, VFX 부문 이외에는 수상하지 못했다. 나머지 넷은 음악상, 미술상, 사운드 믹싱과 편집 부문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드라마가 흥행의 결정적 변수였다면, 아카데미상에서는 전혀 아니었던 셈이다.

어떤 특정 영화의 수용‧평가에서는 이처럼 소위 작품성을 넘어서는 여타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하기 마련이다. 해당 영화가 관객과 만날 당시의 사회 분위기, 관객들의 영화 보기 성향, 문화적 차이, 인기 흥행 코드 같은 요인들 말이다.

주지하다시피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 <범죄도시2>와 <범죄도시3>(이상 이상용 감독)이 천만영화로 등극했다. 한국영화로는 스무 번째와 스물한 번째였다. 그것은 바야흐로 이 땅의 대중 관객들이 열광하는 영화 코드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화끈한’ 액션‘과’ 코믹 두 요소라는 사실을 함축한다. 설득력 따윈 아랑곳없이. 이때 ‘화끈한’과 ‘과’가 중요하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기대엔 다소 미치지 못할지언정, 가령 류승완 감독의 <밀수>가 올 텐트폴 영화 네 편 중 흥행 정상을 차지한다면, 다름 아닌 위 코드들 덕분임은 새삼 강변할 필요 없다. 2024년 아카데미상 최종 한국 후보작로 결정돼서는 아니다. 장기 상영에 들어가리라 예측되는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영화 미학‧예술적으로는 최상의 수준을 구현했건만, ‘범죄도시 시리즈’ 같은 폭발적 흥행 세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도 그래서일 공산이 크고….

이런 진단은 <더 문>에도 고스란히 해당된다. 이 영화의 치명적 불리점은 ‘범죄도시 시리즈’ 같은 화끈한 액션과 코믹이 부재한다는 바로 그 점이다. 마석도 캐릭터와 마동석이란 배우도 없고. 그런 부재 내지 결여는 그러나 <더 문>의 운명이요 정체성이기에 그 자체를 흠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런 이야기와 그 만듦새가 관객들에게 폭넓게 소구되지 못하고, 그들을 대거 유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위에서 내게조차 과도하게 다가선 신파를 비판했으나, 인물들의 특별한 관계를 감안하면 그것도 그렇게까지 비판받을 정도는 아니(라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선우와 재국은 <인터스텔라>에서처럼 직계 가족은 아니어도, 부자관계나 다름없다. 선우의 아버지 황규태(이성민 특별출연)는 재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형제 같은 사이였다. 그리고 규태의 죽음에는 일부나마 재국의 책임도 있다. 더욱이 김희애가 특별 출연해 연기한 발군의 과학자 윤문영은 재국의 전 부인이다.

따라서 재국-선우-문영은 유사 가족이다. 신파까진 아니더라도 영화 내러티브가 그 극적 설정에서 상당 정도 감성적‧감상적으로 추동되지 않기란, 애당초 미션 임파서블이었던 것이다.

관객들은 물론 제3자로서 일정한 거리를 뗀 채 주‧객관적으로 드라마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 <더 문>이 처참하게 참패를 맛본 것은 관객들이 동일시할 수 있는 인물들이 그만큼 적었으며, 내러티브에 몰입하지 않았기 때문임은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그렇다고 해서 <더 문>의 재앙적 흥행 참패를 영화 텍스트 그 자체의 문제로만 돌릴 수는 없다. 여타 다른 요인들 탓도 그 못지않게 크다고 여겨서다. 이미 제시했듯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변화된 한국 관객들의 영화 보기 성향 변화라든지, 그로 인해 벌어진 변한 환경적 요인들, 그리고 인기 장르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아직도 시간을 요하는 SF라는 장르 요인 같은 것들 말이다.

제임스 캐머런의 ‘아바타 시리즈’(2009/ 2022)나 스티븐 스필버그의 (1982) 같은 예외가 있긴 하나,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국적을 불문하고 SF 영화들이 기록적 흥행 성공을 거둔 적은 거의 없다. 대표 사례가 <스타워즈>(스타워즈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 1977>부터 최근작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2020)까지 9편에 이르는 ‘스타워즈 시리즈’다. 그들 중 적잖은 에피소드가 세계의 숱한 나라들에서 그해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했건만, 한국에서는 단 한 편도 없다.

고로 그런 외부 요인들을 아예 도외시한 채, 영화를 엉터리로 만들었기에 <더 문>이 지금과 같은 재앙에 직면했다는 비난은 지양돼야 한다(는 것이 내 진단이다). 더욱이 <더 문>이 일궈낸 시‧청각적 성과는 그에 합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오펜하이머>의 예에서도 보이듯, 영화는 오로지 내러티브로만 재단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다소는 과장일 수는 있어도, 관련해 <더 문>의 화질과 음질의 철저 분석을 근거로 “한국 최초의 레퍼런스 영화가 탄생”했다는 유튜버 하피TV(HighFidelity TV)의 주장에 경청하지 않을 수 없을 같다.(https://www.youtube.com/watch?v=muohrlnFa58&t=35s) 그의 분석은, 테크놀로지에는 워낙 과문한 탓에 <더 문>에서 주목해야 할 화질과 음질까지 꼼꼼히 점검하지 못한 비평가로서 나의 부족함을 새삼 일깨워주기 모자람 없다.

그렇다면 <더 문>을 전적인 실패작으로 단죄하는 것은 지나치게 성급하고 폭력적인 결론 아닐까. 절반의 실패, 절반의 성공으로 평해야 합당하지 않을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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