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무엇이 천직일까?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할까?’ 이 질문에 답만 가지고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바룩은 ‘무슨 일을 하다가 죽어도 좋을까?’ 이것이 분명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바룩은 예레미야가 말씀을 받을 때마다 글로 기록하는 일을 했고 그 덕분에 우리는 예레미야서를 읽습니다.

예레미야 45장

“유다의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 넷째 해에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예레미야가 불러주는 대로 이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니라”(렘 45:1)

바룩은 예레미야의 유일무이한 친구였습니다. 예레미야는 듣도 보도 못한 변방의 제사장 아들이었고 바룩의 집안은 왕실의 최측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따라다니는 바룩을 보면서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바룩의 형제 스라야는 왕의 비서실장이 되었는데, 바룩은 소위 ‘듣보잡’ 예레미야의 비서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예레미야를 따라다니는 동안 바룩에게 바람 잘 날이 하루도 없었습니다.

“바룩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네가 일찍이 말하기를 화로다 여호와께서 나의 고통에 슬픔을 더하셨으니 나는 나의 탄식으로 피곤하여 평안을 찾지 못하도다”(렘 45:3)

그런데도 그가 예레미야 곁을 떠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권력의 중심부에서 부패의 악취만을 맡다가 예레미야가 전하는 메시지에서 진리의 향을 느꼈기 때문 아닐까요? 그는 권력의 편이 아니라 진리의 편에 서는 것을 선택한 것입니다.

진리를 알게 되면서 그가 맛본 것은 자유였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평가와 시선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고 출신과 배경으로부터도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남들 다 누리고 사는 것을 좀 누리지 못해도 괜찮았습니다. 바벨론의 앞잡이라는 오해가 늘 따라다녔지만 그는 오해 받는 것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목숨을 걸어도 될만한 일을 발견했다는 것, 인생에서의 그 어떤 발견보다 의미있었을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할까?’ 이 질문에 답만 가지고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바룩은 ‘무슨 일을 하다가 죽어도 좋을까?’ 이것이 분명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바룩은 예레미야가 말씀을 받을 때마다 글로 기록하는 일을 했고 그 덕분에 우리는 예레미야서를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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