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 칼럼] “내려놔서 행복하다?…먹고 싶어도 안 먹을 수 있어서 인간”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났다. 20대 청춘일 때, 같이 시를 읽고, 참된 삶, 깨달음 등등을 논하며 더불어 객기를 부리던 날들이 많았다. 가는 길이 달라 자주 만날 기회가 없다가, 최근 나의 변화를 보고 걱정이 되었는지 보자고 해서 만났다. 그는 여전히 잘 마시고, 잘 취했다. 나는 술의 대오에서 조금씩 이탈한 지 벌써 여러 해가 되었다.
내가 지식인, 선도국가, 지적인 삶 등을 논하는 것을 마뜩잖아 했다. 내려놓는 삶에 대하여 길게 말했다. 참되게 사는 길은 내려놓고, 비우고, 욕심내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사니 행복하고, 오히려 마음은 충족감으로 가득하다고 자랑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고향에 내려가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눕고 싶을 때 눕고 사니 이 이상 행복할 수가 없고, 자유로울 수가 없단다. 과학에는 한계가 있으니, 자신은 과학을 믿지 않고 항상 과학 이상을 추구한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해줬다. “나랑 안 만나는 긴 세월 동안 공부를 잘했나 보다. 60대 중반에 들면서, 드디어 천인합일의 경지에 들었구나. 자연과 일체가 되었으니, 축하한다. 그 경지가 깊고도 깊어서 너는 이제 동물과도 다른 점이 없이 일체가 되었다. 네가 비우고 비워서 동물과도 같아졌으니, 너의 경지는 나같이 공부가 느린 사람은 감히 넘보지 못할 높이다.” 내 친구는 만족한 표정과 겸손한 표정을 섞어 짓더니 내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주고 돌아갔다.
집에 가는 길에 혼자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인간은 자고 싶을 때 자면서 고유한 특성을 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고 싶어도 안 잘 수 있어서 인간이다. 인간은 먹고 싶을 때 먹으면서 고유한 특성을 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먹고 싶어도 안 먹을 수 있어서 인간이다. 인간은 눕고 싶을 때 누우면서 고유한 특성을 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눕고 싶어도 안 누울 수 있어서 인간이다.”
과학을 믿지 않다니… 과학으로 포착되지 않은 과학 이상을 믿다니… 나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경지다. 나는 과학을 모르고 하는 철학에는 헛소리가 많다고 생각하는 수준이니, 내 공부가 느리긴 느린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