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광복회장 취임 “국가정체성 확립·학술원 창립”

제23대 광복회장 취임식에서 국민의례 하는 이종찬 광복회장(앞줄 오른쪽 두번째). 앞줄에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이 보인다. 이 회장은 “내편 네편을 가리지 않고, 공정하게 일한다면 그분이 내편입니다. 국가의 정체성을 찾고자 고민하고, 정의의 편에 선다면 그분이 내편입니다”라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사진 연합뉴스>


독립운동에 전재산 바친 이회영 선생 친손자 23대 광복회장 

학술원 창설, 임정수립 1919년 기산한 ‘대한민국 105년’ 연호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로 구성된 제23대 광복회장에 이종찬 전 국정원장이 22일 취임했다. 광복회는 이날부터 모든 공식 문서에 서기 대신에 ‘대한민국 연호’를 표기하기로 했다. 연호는 일제 때 상해 임시정부에서 사용했다.

독립선언과 임시정부를 수립한 1919년이 원년이다. 환산하면 올해는 ‘대한민국 105년’이 되는 셈이다. 이종찬 회장은 이날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국가정체성과 헌법적 가치를 확립하는 과제를 최우선 목표로 삼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날 비화도 소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 25일 그가 광복회장에 당선한 직후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국가 정체성이 바로 서야, 나라도 바로 설 수 있습니다…”는 글귀가 마음에 박혔다. 아들(이철우)과 죽마고우인 윤 대통령을 어릴 때부터 아꼈다.

좌우로 두 동강 나듯 갈라진 나라, 대결과 분열. 이종찬은 “국가 정체성만 바로 선다면…이 길로 나간다면 통합도 이뤄지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58년 전 탄생한 광복회의 역사는 순탄치 않았다. “나라 최고 원로기관으로서의 역할에서 벗어나고 후손들의 빈곤과 무직, 교육기회의 상실, 이런 악순환을 끊어내지조차 못했습니다.”

이종찬은 “권위와 존경을 누리면서도 국가의 정체성, 정통성을 확립하는 데는 소홀했다”고 자성부터 했다. 광복회의 미래에 대한 대비에도 부족했다고 진단했다. “그런 와중에 저는 희망의 싹을 발견했습니다. 지부장 중 한 사람이 ‘선거에서 지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네편 내편 가리지 않고 저를 다시 임명해 주신 회장님의 참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광복회가 도약하는데 최선을 다해서 뛰겠습니다’라고 하더군요…광복회를 다시 세우는 데 힘을 모으고 단결하면…”

취임 연설하는 이종찬 광복회장

연설 도중 가장 뜨거운 박수가 나온 순간이었다.
“내편 네편을 가리지 않고, 공정하게 일한다면 그분이 내편입니다. 국가의 정체성을 찾고자 고민하고, 정의의 편에 선다면 그분이 내편입니다.”

목청 높여 이렇게 말할 때도 박수가 쏟아졌다. 이종찬 회장은 “독립정신으로 무장된 세대가 국가의 중추적 인적 자산으로 등장하도록 다음 세대를 키우는 데도 주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임기 내 여러 곳에 분산된 독립운동 사료들을 모아 연구할 ‘광복회학술원’을 창립할 계획도 밝혔다.

취임식에는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김형오·문희상 전 의장, 권노갑 민주당 상임고문, 정대철 헌정회장, 박유철 전 광복회장, 김기현 국힘대표,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 등이 취임식에 참석했다. 또 16개 보훈단체장, 광복회원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박민식 장관은 “이종찬 회장님이야말로 좌우 이념을 떠나 독립운동으로 하나가 되었던 정신을 되살려 광복회를 통합하고, 더 나아가 국민 통합에도 앞장서실 최고의 적임자라고 믿습니다”라고 했다.

이어 정대철 회장의 연설이 압권이었다. “아들 친구인 윤석열 대통령이 선거운동 때부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철저히 하라고 촉구하신 바 있다. 아마도 윤 대통령이 가는 곳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강조하는 건, 이종찬 회장의 영향이 적지 않았을 것…”

그는 이종찬을 ‘존경하고 좋아하는(respect and like)’ 이유 5가지를 들겠다고 했다. 정대철 회장의 연설을 나는 처음 봤다. 준비를 단단히 한듯 짜임새와 재치가 넘쳤다. 먼저 DJ 대통령 만들기부터 시작해, 두번째 노벨평화상 수상에 기여, 세번째는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장애인 청소년 노인 여성을 비롯한 힘없는 약자들도 잘 살 수 있는 사회 만들기를 꼽았다. 뿐만 아니라 미담의 한 가운데 계신다는 점도… “1977년 김지하 시인이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비판받을 때 뒷구멍으로 도망가라고 일러주고, 조영래 동지를 위해 1980년 법원행정처장을 찾아가 그를 사법연수원에 복교시켜 달라고…”

미담의 당사자라는 게 존경하고 좋아하는 네번째 이유였다. 그리고 물심양면으로 독립운동에 기여한 최고의 독립운동가 가문으로 우당 이회영 선생과 성제 이시영을 비롯한 6형제가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털어놓은 적공을 칭송했다.

“요즘 계산하면 600억원 대, 어떤 사람은 1000억, 2000억 대라고도…그 재산을 팔아 갖고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그렇게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을사5적을 척결하려 하신 우당의 친손자라서 존경하고 좋아한다 했다.

다섯 가지가 아니라 여섯 가지로 늘어났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 광복회도 바로 세우겠다는 뜻을 세웠기 때문에 존경하고 좋아한다고 정대철 고문은 말했다. 정대철 회장은 위트가 넘쳤다. “한 마디만 더 드린다면 마지막으로 그를 좋아하는 것은 고등학교 선배라서…” 정대철은 일곱 가지 존경하고 좋아하는 이유를 댔다. 이어 김기현 국힘 대표가 축사를 했다. 모두에 “웃음이 절로 나오고 행복한 자리입니다. 정대철 회장님의 멋진 축사를 듣고…”라고 했다.

이날 사회를 본, 경기고 후배인 김동건 아나운서의 사회 및 진행도 매끄러웠다. 인삿말을 마치고 내려가는 이종찬을 불러세웠다. 그리고 40년 정치역정의 뒷전에서 수고한 아내 윤장순 여사를 연단에 오르게 했다. 광복회장을 단단히 잘 하려면, 윤 여사 내조가 필수라면서…

이종찬 회장은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1867∼1932)의 손자, 4선의원으로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 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장을 역임했다.

나는 특히 그의 학술원을 만든다는 구상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필자는 이종찬 회장의 국가정체성 바로세우기에 미력하나마 적극 동참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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