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디게 늙는 4가지 비결
우리나라 인구학 권위자 조영태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주도했던 핀셋 방식의 출산율 제고, 고령화 방지 정책은 눈앞에 닥친 현상을 무마하는 데 목적을 뒀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암울한 미래를 대대적으로 바꿀 새로운 정책들을 기획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영태 교수는 서울대 보건대학원 부원장으로, 작년 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구와 미래전략TF’에서 공동자문위원장을 맡았다.
조영태 교수가 꼽은 ‘새로운 정책’의 예시는 정년 연장과 연령규범 완화, 지방 생활공간 개편 등이다. 현재 정책과 제도는 대부분 인구 규모가 커지던 고도 성장기에 마련된 만큼 인구 감소기에는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 수 있다. 따라서 세수(稅收)를 확보하고 재정을 튼튼히 하며 지역·세대·집단 간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현 제도를 선제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지 않으면 인구 문제 개선은 불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조영태 교수는 사람들이 태어나고, 이동해 다니며, 사망하는 인구현상을 통해 사회의 특성과 변화를 읽어내는 인구학자다. 고려대학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대학에서 사회학 석사를, 인구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4년부터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현재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장을 맡고 있으며, 2015년부터 베트남 정부의 인구정책자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조영태 교수는 자신의 <인구 미래 공존> 저서에서 우리나라의 인구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부터 해야 할 방안들을 제시한다. 이 책에서 그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3가지다.
첫째, 조급하지 말라는 것이다. 30만명씩 태어나던 아이가 3년 만에 20만명대로 떨어졌으니, 조만간 10만명대로 추락하지 않겠냐고 걱정인데, 지금보다 합계출산율이 더 낮아져도 10년 정도는 20만명대 출생아가 유지될 수 있다. 인구감소의 시간표는 이미 정해져 있으므로 앞으로 인구감소가 언제, 누구에게 얼마큼의 영향을 주게 될지 정밀하게 예측하고 미리 대응방안을 마련한다면, 앞으로 남은 2020년대는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둘째, 안이하게 대처하지 말라는 것이다. 2030년이 오기 전 10년은 우리가 인구감소의 충격에 대비할 마지막 기회다. 저출산과 고령화 이슈가 15년 넘게 한국사회를 떠돌았지만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한 채 우리는 데드크로스(Dead Cross, 인구학에서 태어난 사람보다 사망한 사람이 더 많을 때 쓰는 용어)를 맞았다. 마지막 기회로 주어진 2020년대를 또다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흘려보낼 수는 없다.
셋째, 그래서 함께 살자는 것이다. 인구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흔히 ‘여성들이 아이를 더 낳으라’거나 ‘청년 일자리를 위해 장년들이 더 일찍 물러나라’는 누군가의 양보와 희생을 전제하곤 한다. 그러나 불필요한 희생이나 경쟁을 최소화하며 각 집단의 삶의 질을 더 높이는 공존(共存)의 방안이 있다. 인구학적 관점으로 생각하면 가능하다. 즉, 인구학적 상상력을 통해 어두운 미래를 공존의 미래로 바꿀 지혜를 모색할 수 있다.
노년내과 전문의 정희원 교수(서울아산병원)는 “한국의 최대 위기는 자연 노화보다 빠른 ‘가속 노화’”라고 말했다. 가속노화(加速老化, Accelerating Ageing)란 신체 기능의 노쇠화를 속도로 나타낸 생물학적 개념이다. 노화가 진행되는 정도는 신체 기능이 떨어지는 정도와 같은데, 숫자 나이와 생물학적 나이는 다를 수 있다.
예를 들면, 나이가 90대가 되어도 중년 정도의 신체 및 인지 기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60대에 요양병원·요양원에 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생활이 가능한 ‘노인장기요양보험’ 인정자가 100만명 수준이며, 요양보호사는 약 50만명이다. 그런데 지금의 고령화 속도와 가속 노화 정도를 계산하면, 20-30년 후엔 요양보호사만 150만명이 필요하게 된다. 돌봄이 덜 필요한 사회가 될 때 장수(長壽)가 재앙이 아닌 축복이 된다.
저출생·고령화는 아이들만 낳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미래의 노인들이 스스로 신체 기능을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데도 불구하고, 노인의학에 대한 관심이 적다. 영국은 1940년대부터, 미국과 캐나다는 1970년대부터 노화 문제 및 노인의 신체적 특성에 근거한 의료 행위의 중요성에 주목했다.
미국노인병학회(American Geriatrics Society)와 미국병원협회(American Hospital Association)에서 권장하는 ‘가속노화예방법’은 4M 건강법(Mobility, Mentation, Medical Issues, What Matters)이다. 가속노화를 피하고 노화지연 효과를 얻기 위해서 현대인들은 육체와 마음의 건강을 다각도로 관리하여야 한다.
첫째 M은 이동성(Mobility)이다. 우리 몸은 처음부터 많이 움직이도록 설계되었다. 따라서 노년기에도 되도록 많이 움직여야 한다. 자신의 건강과 체력 조건에 맞는 운동 종목을 찾아 꾸준히 운동습관을 길러야 한다. 둘째 M은 마음·정신건강(Mentation)이다. 정신건강은 적절한 몰입 활동을 통하여 꾸준하게 두뇌 활동을 촉진하여야 한다. 마음건강은 치매 예방에도 중요하다.
셋째 M은 건강과 질병(Medical Issues)이다. 가속노화를 피하고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은 없지만, 좋은 방법은 건강한 생활습관과 균형이 맞는 식습관이다. 일상 속 좋은 습관을 지키면 나이가 들면 당연히 아플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네번째 M은 나에게 중요한 것들(What Matters)이다. 나이가 들었을 때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만 남기는 것이다. 젊었을 때나 인생의 전성기 때처럼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다.
네 가지 축의 건강관리 방법을 꾸준히 실천하면 큰 폭으로 좋아질 수 있다. 다만 연령대에 맞는 신체 관리가 중요하다. 노화는 요행을 기대할 수 없다. “지금이 잘 늙는 것을 대비하기 위한 가장 이른 때”인 것을 명심하고 실천해야 한다. 사람이 100살까지 산다고 했을 때, 100살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죽을 것인지, 아니면 오랜 기간 요양병원에서 누워 지낼 것인지를 자신이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가족의 축하를 받으며 100세 생일잔치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