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 회장 권오갑의 ‘원칙·뚝심’과 ‘선공후사’ 리더십

권오갑 현대중공업그룹 회장(오른쪽)이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취임한 2014년 비옷을 입고 출근하는 직원 손을 맞잡고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 현대중공업>


‘60조 매출’ 재계 8위 HD현대, 영업이익 2배 신장

조직 앞세우는 CEO, 취임 후 기업가치 2.5배 높여
3세 정기선, 수소중심 친환경·디지털경영 전환 시동

45년 동안 HD현대에서 근무한 권오갑 회장. 사원으로 입사해 CEO에 올라 누구보다 그룹 속사정을 잘 안다. 그는 늘 회사를 먼저 생각하는 선공후사의 ‘원칙’을 지켜왔다. 오너 정몽준의 속을 그룹에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이기도 하다.

HD현대의 기업가치는 민계식 전 회장에 이어 그가 CEO를 맡은 이후 2.5배 커졌다. 경기 광주 출신의 토끼띠로 72살, 1978년 입사했다. 외국어대 포르투갈어과를 나와 해외영업 파트에서 일했다.
학교법인 사무국장을 거쳐 2007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2010년에는 현대오일뱅크 첫 사장으로 경영을 정상화했다.

HD현대 매출의 약 60%를 담당하는 주력 회사로 탈바꿈시켰다. 오일뱅크 사장 때 매주 화요일 충남 대산 공장으로 출근했다. 그는 참을성 있게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다. 당시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똑 같이 식판을 들고 줄을 섰다. 함께 식사하며 직원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현장을 챙겼다.

금요일마다 주요 경영진과 현안을 논의하며 팀워크를 다졌다. 이런 자세에 감동한 오일뱅크 노조는 권오갑에게 임금협상을 전적으로 위임하는 ‘화합경영’을 연출하기도 했다. 2014년 조선업황 악화로 현대중공업이 사상 최대 영업손실을 냈다.

권오갑이 경영 정상화를 이끌 구원투수로 전격 발탁됐다. 손에 피를 묻히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했다. 2014년 말 기준 2만8000여명을 2016년 9월 말 2만4000명대로 4000명 이상 줄였다. 현대중공업과 미포조선, 삼호중공업 등 임원 260여명도 짐을 쌌다. 조직 수술에 책임 지는 자세로 4년여 보수를 받지 않았다. 할 일과 안 할 일을 구분해 정리하는 사업재편에도 힘 쏟았다. 조직의 미래전략, 대외업무 등 CEO 역할에만 집중했다.

작년 매출 60조8497억원, 영업이익 3조387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114.6%, 226.7% 각각 증가했다. 그의 지휘 아래 HD현대는 눈부신 경영실적을 올린 것이다. 이 수익을 투자재원으로 경쟁력 확충에 투입할 계획이다.

그의 말이다. “하나의 변수가 아닌 안팎의 악재가 겹치는 복합위기가 현실화됐다. 위기에서 도약하는 기업이 실력있는 기업이다.”

2년 전, 경영학회 주최 ‘명예의 전당’에 그가 전문경영인 최초로 헌액됐다. ​학회는 2016년부터 나라 경제에 큰 기여를 한 기업인을 매년 헌액해왔다. 현대 정주영, 삼성 이병철, LG 구인회, 롯데 신격호, 현대차 정몽구 회장 등이 선정됐다.

권오갑은 오일뱅크 사장 때 과감한 투자와 조직문화 혁신, 전 직원을 직접 만나는 소통 리더십을 발휘했다. 영업이익 1300억원대의 기름회사를 1조원대 규모로 키우고 경영의 질도 종합화학회사로 업그레이드했다.

2014년 어려움에 처한 현대중공업 대표이사와 그룹 기획실장으로 취임했다. 과감한 의사결정과 추진력, 원칙과 뚝심으로 개혁해 경영을 정상화했다. 현대건설기계·현대일렉트릭·현대로보틱스·현대에너지솔루션 등 비조선 사업을 분할했다.

지주회사로의 전환도 성공시켜 그 변화와 혁신의 공으로 2016년 명실상부 CEO에 올랐다. 이후 세계 1위 한국 조선의 기술과 품질 경쟁력 높이기에 힘을 쏟았다. 판교에 미래 기술경쟁력을 책임질 GRC(Global R&D Center)를 설립했다. 덩치 큰 대우조선까지 인수해 한국 조선산업의 변화를 앞장서 이끌고 있다.

권오갑을 검색하면 기업인, 축구행정가이자 울산현대 구단주로 나온다. 1951년 3월 17일 경기 광주 판교리(현 분당 판교동)에서 그는 태어났다. 오너인 아산재단 이사장 정몽준(MJ)은 정치에 입문한 뒤 경영을 하지 않았다.

정몽준 아산나눔재단 명예이사장(왼쪽)과 권오갑 HD현대 회장

MJ는 의중을 꿰뚫는 권오갑을 학교법인 사무국장 때부터 유심히 봤다. 그리고 현중을 물려받은 후 그를 곁에 두며 여러 중책들을 맡긴다. 부농 출신의 권오갑은 ‘항산에서 항심이 나오듯’ 원칙과 뚝심으로 갔다. 한결 같은 자세로 조직을 앞세우는 그에게 까다로운 MJ도 신뢰를 보낸다. 

어찌 보면 부침을 거듭한 HD현대의 오늘날 눈부신 성취는 MJ의 덕분이다. 현대 경영에서 잘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안할 것을 하지 않는 것이다. MJ는 가장 어려운 ‘위임 경영’, 그 신의 한수로 권오갑을 발탁한 거다. 쓸데 없는 짓을 하지 않는 게 ‘무위無爲의 위爲’일는지 모른다.

MJ 역시 전문경영인에게 믿고 맡기며 쓸 데 없는 간섭이나 개입을 않았다. 오너들은 기심機心으로 늘 전문경영인이 딴 맘을 품지 않는지 의심한다. 참으로 하기 힘든 게 바로 그 ‘무위의 경영’인데, MJ가 그것을 해낸 거다. MJ는 한번 믿으면 오래 쓴다.

최근 3연임을 한 오연천 울산대총장에게 최근 축하 문자를 보냈다. 며칠 전 “언론인 중 유일하게 축하해줘 고맙다”는 답례 전화가 걸려왔다. 오연천 총장과 장시간 통화하면서 남들이 잘 모르는 MJ의 장점을 길게 들은 바 있다.

권오갑의 선공후사 리더십, 원칙과 뚝심경영에 대해서도 길게 말했다. CEO로 오른 사람이라면 누구나 오너의 믿음을 얻기까지 곡절을 겪고 참으며 이겨내야 하는 법이다. 권오갑은 한번 맡으면 성공시켜 돈까지 벌게 하는 ‘마이다스의 손’인가?

“故 정주영 회장의 기업가정신, 도전정신을 계승한 현대중공업이야말로 경제성장과 발전의 핵심적인 역할…권오갑 회장은 수많은 직장인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살아있는 메시지가 될 것…”(이영면 회장, 2021년 명예의 전당 헌액 때).

원칙과 뚝심경영의 날카로움을 감싸는 게 바로 소통과 포용의 자세다. 두산인프라코어와 합병 때 그는 화학적 결합에 애를 썼다. 국내 건설기계 1위 두산인프라가 2위인 현대건설기계로 흡수된 것이다. 두산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자존심이 상한다는 직원들의 글이 잇따랐다.

그는 두산인프라 전 임직원들에게 한 식구가 됐다는 진정어린 선언을 했다. 한솥밥을 먹는다는 뜻으로 방짜유기 수저 세트와 환영의 편지도 보냈다. ‘스펙트 스톰’이 부는 거친 바다를 헤쳐가야 할 HD현대 호의 키는 정주영에서 권오갑의 손으로 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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