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칼럼] “나는 야구인이다…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이만수 감독

요즘 TV에서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이 솔직담백, 순수함으로 승부하며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자연생활의 불편함을 크게 개의치 않는 주인공들을 보며 안쓰럽다가도 그들의 표정에서 삶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작년 9월 3일 대구에서 열린 ‘제1회 노브랜드배 고교동창 야구대회’ 경기를 마친 후 막차를 타고 힘들게 인천으로 돌아왔다. 격렬한(?) 운동과 사구(死球)의 통증으로 인해 몸살을 걱정했는데 이상하리만치 상쾌한 아침을 맞이했다.

지금도 후배들과 함께 모교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경기했던 순간들이 잊히지 않는다. 좋았던 추억이 뇌리에 남아서인지 어느 곳 하나 아픈데 없이 흐뭇한 미소로 아침에 눈을 뜰 수 있다. 정말 오랜만에 타석에 들어선 그 설레는 마음이 여운처럼 남아있다. 야구 유니폼을 입으면 항상 젊은 시절로 되돌아가는 느낌이다. 치열했던 야구 현장을 떠난 지 9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라오스와 베트남에 들어가 젊은 선수들에게 야구를 가르치는 일은 나에게 행복으로 다가온다.

베트남 야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박효철 감독과 이장형 단장. 그들과 함께 베트남 야구 현장을 누비며 야구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몇 달 전에도 40도가 넘는 하노이의 무더운 날씨에 유니폼을 챙겨입고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도 젊은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고 뛰며 그들을 가르쳤다. 무더위와 싸울 필요도 없다. 그냥 무더위를 즐길 만큼 나에게는 더없이 행복한 일이다.

어느덧 라오스와 베트남에서 야구 전파를 시작한 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지인들이 뭐 하나 득 될 것 없는 이 일에 매달려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경제적으로 힘에 부칠 때도 있었고 사익을 탐하거나 자신들의 입신양명만을 생각하는 이들의 음해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단 한번도 힘들거나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유니폼을 장착하는 순간 헐크처럼 몸에서 강한 힘이 솟아나 선수들과 함께 경기장을 누비게 된다.

그것뿐만 아니다. 라오스와 베트남에서 보내는 시간 이외에 나머지 시간은 한국에서 전국을 돌며 재능기부를 한다. 급한 마음에 어린 학생들을 조금 더 많이 가르치기 위해 몸도 제대로 풀지 않고 갑자기 공을 던져주다가 오른쪽 어깨 근육이 파열되었다. 몰입의 힘은 참 대단하다. 그때 근육이 파열된 지도 모르고 한참 동안 공을 토스해준 내 미련함 때문에 아직도 자다가 통증을 느껴 숙면을 제대로 취하지 못하곤 한다.

이만수 감독

무엇이 나를 이렇게 움직이게 하며,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걸까?

야구와 함께 한 인생이 반백년이다. 한 분야에서 오랜 시간 연구하고 노력하며 일한 사람을 우리는 전문인, 전문가라고 부른다. 나 또한 그 대열에 와 있다고 감히 이야기해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대중들은 한 분야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들에게 사람과 사람이 느끼는 권태기 같은 감정이 분명 오지 않았을까 궁금해한다. 참 신기한 일이다. 나는 아직도 야구 유니폼을 입기를 좋아하고 아이언맨의 슈트처럼 유니폼을 입으면 신기한 능력들이 생겨나는 느낌이다.

고등학교 시절 하루 4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고 훈련에만 매달리는 나에게 선배들이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만수야. 너는 야구가 지겹지 않니?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니?” 너무나 당연한 이 질문이 그때는 너무 이상하게 받아들여졌다. 왜냐하면 단 한 번도 야구를 그만둘 생각을 한 적이 없고 야구 이외에 다른 생각을 한 적이 없었으며, 야구를 하는 것이 너무 행복했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선수로서 퇴출의 임박함을 느끼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야구 그 자체가 너무 하고 싶고 좋아서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아마도 야구와 나는 깊은 인연으로 맺어졌거나 야구의 매력이 이미 내 몸속에 깊이 체화되었을 수도 있다. 그랬기에 아마 지금도 우리네 삶 속에서 야구가 얼마나 좋은 스포츠인지 많은 곳을 다니며 전도하고 있는 것 같다.

야구와 관련된 세상 이야기들이 참 많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야구는 9회 2아웃부터다” 등등. 나는 야구를 내 인생에 빗대어 이렇게 생각을 한다. 1회부터 3회까지 청소년기, 4회부터 6회까지는 청년기, 7회부터 9회까지는 경기(인생)를 꽃피우고 마감하는 성인기로 인생의 성숙함을 배우는 때라고 생각한다. 물론 치열했던 9회가 끝났을 때 동점이 되면 연장전에 들어가야 한다.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는 연장전. 힘들게 쫓아온 팀도, 그것을 힘겹게 지키려고 안간힘 섰던 팀도 새로운 경기를 시작해야 한다.

나는 지금 9회를 마치고 연장전에 들어섰다. 제2의 야구 인생을 시작하고 있다. 야구 불모지 라오스와 베트남을 시작으로 인도차이나 반도의 수많은 청년에게 야구를 통해 인생을 개척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고 싶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대로 나는 환갑을 훌쩍 넘긴 60대 후반의 물리적 나이에도 20대, 30대 젊은 열정으로 야구만을 생각하고 있다. 야구만 생각하면 아직도 온몸에 전율을 느낀다. 힘이 솟아나고 마음이 설렌다.

문득 자다가도 내가 꿈꾸고 생각했던 동남아시아 야구의 생각이 뇌리를 스치면 갑자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벌떡 눈을 뜨게 된다. 잘 모르겠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움직이게 하는지, 아내한테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이 땅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하늘나라로 갈 때 평생 내가 좋아하고 사랑했던 야구 유니폼을 입혀 달라고 부탁했다.

야구 현장을 떠날 때 인생의 또 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할 만한 달콤한 유혹과 섭외들이 여러 군데에서 있었다. 어떤 용기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단칼에 거절했다. 나는 야구인이다. 야구를 떠나서 살 수 없고 야구를 위해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내 고집불통 철칙을 죽을 때까지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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