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혈액암 환자와 가족 90명은 왜 인권위에 갔나?
백혈병·혈액암 환자와 환자가족 90명이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성분채혈혈소판 부족 문제 단기간 해결 방안’ 시행을 통한 비인권적인 지정헌혈 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하는 진정을 냈다.
진정인은 한국백혈병환우회와 항암치료·조혈모세포이식을 현재 받고 있거나 과거에 받았던 백혈병·혈액암 환자 등 90명이다.
피진정인은 헌법과 혈액관리법에 따른 혈액 공급 의무를 가진 보건복지부 장관과 현재 핼액원을 개설해 성분채혈혈소판을 포함해 혈액관리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대한적십자사 총재, 대한산업보건협회 회장이다.
한국백혈병환우회는 15일 서울 중구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혈액을 사고파는 것이 법으로 금지된 상황에서 지인들이나 주변인들의 증여로만 피를 구해야 하는 백혈병·혈액암 환자들의 고통을 멈춰야 한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급성골수성백혈병 환자 장연호(20)씨는 “백혈병 환자들은 수혈을 받지 못하면 생존이 불가능한데, 살고 싶으면 피를 직접 구해오라고 하는 것은 너무 잔혹하다”고 말했다.장씨는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받고 항암치료와 조혈모세포이식을 받고 꼭 1년이 지났다. 그는 이날 혈소판 지정헌혈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국가인권위원회 진정과 기자회견을 위해 전주에서 아침에 상경했다.
박웅희 변호사는 “국가가 혈액 공급 의무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아 국민들의 평등권이 침해받고 있다”며 “인맥이나 유명세가 있는 환자는 혈소판 지정헌혈자를 쉽게 구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환자는 지정헌혈자를 구하지 못해 치료받을 권리를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는 차별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한국백혈병환우회 안기종 대표는 지정헌혈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성분채혈혈소판 채혈장비가 없는 곳에 신규 설치 △성분채혈혈소판 채혈장비가 있는 헌혈의집·헌혈카페의 평일 운영시간 연장 △헌혈의집△헌혈카페의 토요일·공휴일 운동 시간 연장 등을 제안했다.
안 대표는 “인권위는 환자들이 수혈 받을 혈소판을 직접 구하는 비인권적인 지정헌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장연호씨와 한국백혈병환우회 관계자들은 인권위 민원실을 찾아 진정을 접수했다.
다음은 기자회견 전문.
국가인권위원회는 백혈병·혈액암 환자들이 치료에 필수적인 수혈받을 혈소판을 직접 구하는 비인권적인 지정헌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조치들을 보건복지부 장관과 대한적십자사 총재와 대한산업보건협회 회장이 신속히 취하도록 권고할 것을 촉구한다.
? 한국백혈병환우회는 오늘(15일) 오전 11시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백혈병·혈액암 환자 치료에 필수적인 혈소판을 환자나 환자가족이 직접 구하는 지정헌혈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관련한 기자회견을 개최한 후 백혈병·혈액암 환자와 환자가족들과 함께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했다.
? 진정인은 한국백혈병환우회와 항암치료·조혈모세포이식을 현재 받고 있거나 과거 받았던 백혈병·혈액암 환자와 그 가족으로서 한국백혈병환우회 회원인 장연호 외 89명이다. 피진정인은 헌법과 혈액관리법에 따른 혈액 공급 의무를 부담하고 있는 보건복지부 장관과 현재 혈액원을 개설해 성분채혈혈소판을 포함해 혈액을 채혈하고 공급하는 등의 혈액관리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대한적십자사 총재와 대한산업보건협회 회장이다.
? 진정인들은, 피진정인들이 항암치료와 조혈모세포이식을 받는 백혈병·혈액암 환자의 치료에 필수적인 성분채혈혈소판을 헌혈자로부터 채혈해 의료기관에 공급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인권침해와 차별행위를 당한 피해자인 환자로서 그리고 그 피해자인 환자의 가족과 이들 환자와 환자가족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단체로서, 국가인권위원회에 <성분채혈혈소판 부족 문제 단기간 해결 방안> 시행을 통한 비인권적인 지정헌혈 문제 해결을 권고해 달라고 요청하는 진정을 했다.
? “지정헌혈(directed donation)”이란 의료기관이 환자 또는 환자가족에게 수술·항암치료·이식에 필요한 혈액을 구해오라고 요청할 때 환자 또는 환자가족이 직접 헌혈지원자를 구해서 환자와 의료기관을 지정 의뢰한 후 헌혈지원자가 혈액원에 가서 헌혈하면 그 혈액을 지정된 의료기관으로 이송해 환자가 수혈을 받도록 하는 헌혈을 말한다. 지정헌혈 사례는 2015년(2,511건)부터 증가하기 시작해 2016년(19,316건), 2017년(2만0859건), 2018년(1만9344건), 2019년(4만5557건), 2020년(7만7334건)을 거치면서 계속 증가하다가 2021년에는 총 헌혈 건수 260만4427건 중에서 5.4%에 해당하는 14만2355건으로 급증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 특히, 백혈병·혈액암 환자에게는 생명줄과 같은 성분채혈혈소판은 2021년 한 해 동안 총 헌혈 건수 26만2450건 중에서 11.7%에 해당하는 3만711건이 지정헌혈로 환자나 환자가족이 헌혈자를 직접 구한 것이다. 성분채혈혈소판 지정헌혈의 경우 2015년 924건에서 2021년 3만711건으로 6년간 33배 이상 증가할 정도로 백혈병·혈액암 환자와 환자가족에게 큰 고통을 주고 있다.
? 혈액은 인공 생산이 불가능하고 ‘사람’의 헌혈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다. 사람의 헌혈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는 혈소판은 백혈병·혈액암 환자들이 항암치료와 조혈모세포이식을 받으면 혈소판 수치가 2만 μL 이하로 떨어져 심각한 출혈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때 신속히 혈소판 수혈이 이루어져야 출혈을 방지할 수 있으므로 혈소판은 백혈병·혈액암 환자에게는 생명과 직결된 의약품와 다름없다.
? 진정인들은 백혈병·림프종·골수형성이상증후군·다발성골수종·재생불량성빈혈 등 혈액암 환자들로서 진단을 받으면 무균실에 입원해 수차례의 항암치료를 받은 후 조혈모세포이식을 받는다. 항암치료와 조혈모세포이식을 받으면 혈소판 수치가 급격히 떨어져 심각한 장기 출혈로 이어지는데, 이때 긴급히 혈소판 수혈을 받지 못하면 환자의 생명이 위험해진다. 따라서 진정인들은 혈소판 수혈을 제때 받지 못하면 생명을 잃을 수 있는 백혈병·혈액암 환자들이다.
? 백혈병·혈액암을 처음 진단받은 환자들이 갑작스럽게 입원해 병을 받아들이기도 힘든 패닉 상태에 지정헌혈자를 구해야 한다는 의료진의 안내를 받고 병실에서 스마트폰으로 지인이나 친구들에게 연락해 백혈병·혈액암에 걸린 사실을 알리고 헌혈을 부탁하며 피를 구해야 하는 상황은 너무 가혹하다. 의료진이 알려준 기한 안에 지정헌혈자를 구하지 못한 환자나 환자가족은 위급상황이 발생할까 불안과 공포에 떨어야 한다. 백혈병·혈액암 환자들은 “환자들에게 살려면 피를 구해오라고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합니다. 환자와 환자가족은 피를 구하는 고통에서 벗어나 투병과 간병에만 전념하고 싶습니다.”라고 호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