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신앙 영역’의 다양한 ‘신비적 현상’에 대하여
*히브리서 1-3장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히 1:14)
신앙에는 신비적 차원이 있습니다. 환상을 보거나, 방언으로 기도하거나, 기도를 통해 병이 낫거나 하는 등의 초자연적 현상들입니다. 이와 같은 신비한 현상을 맛보는 건 상당히 특별한 경험입니다. 그러나 신비한 현상에 잘못 길들여지면 내 신앙이 다른 사람들의 신앙보다 더 특별한 것 같은 생각이 들곤 합니다. 신비체험이 모종의 우월감을 선물한다는 것입니다. 신비체험이 없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영적인 열등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유대교에는 카발라라고 불리는 신비주의가 있습니다. 이 카발라 전통의 대표적인 예가 천사숭배입니다. 카톨릭에는 성경에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무수한 천사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대부분이 유대교의 카발라 전통으로부터 흘러나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뿐만 아니라 신약 성경의 기자들은 당시 성도들 사이에서 횡행했던 천사 숭배에 대해 우려스러운 목소리를 냅니다. 물론 천사의 존재나 그들의 역할에 대해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천상적 존재에 대한 동경이 지나쳐서 자칫 숭배까지 이어지는 것을 조심하라는 것이죠.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골로새서 2장18절)
천사라는 존재에 과하게 몰입한 나머지 예수님을 섬기는 것인지, 천사를 숭배하는 것인지 분간이 안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편지의 서두에서부터 확실하게 선을 긋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들 가운데서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또,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히 1:5, 새번역)
이 시대에도 신앙의 영역 안에서는 다양한 신비적 현상들이 목격됩니다. 성경에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은 무언가를 더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만 알고 있는 것보다 더 특별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식이든 체험이든 우리의 관심을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돌려놓는다면 그것도 우상숭배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