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선’ 이태백 고향이 키르기스스탄?
키르기스스탄 ‘토크마크’ vs 중국 ‘장여우’와 ‘안루’
이백 고향이라 주장하며 치열한 관광 홍보전
牀前明月光(상전명월광)
疑是地上霜(의시지상상)
擧頭望明月(거두망명월)
低頭思故鄕(저두사고향)
침상 머리에 밝은 달빛
땅 위에 내린 서리런가.
머리 들어 밝은 달 바라보다
고개 숙여 고향을 생각한다.
당나라 때 이백은 시선(詩仙)으로 통했다.
그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썼다.
제목은 정야사(靜夜思). ‘고요한 밤에 생각하다’라는 뜻이다.
객지의 숙소에서 맞이한 밤, 침상 머리로 달빛이 비치고, 달빛은 땅 위에 서리가 하얗게 깔린 듯하다. 문득 고개 들어 밝은 달을 바라보던 시인은 고향의 달에 생각이 미친다. 객지로 멀리 떠나와 돌아갈 수 없는 고향 생각에 절로 머리가 수그러진다.
4구절 20자의 지극히 평범한 언어로 고향을 그리는 나그네의 마음을 빼어나게 그렸다. 천고에 회자되는 명시가 아닐 수 없다.
명월광(明月光)이 간월광(看月光), 망명월(望明月)이 망산월(望山月)로 표기되기도 한다. 2009년 10월 29일 주중 키르기스스탄 대사관 관계자가 후베이성 안루를 방문했다.
그 방문 목적이 참 희한하고 이례적이었다. 당의 대표 시인 이백의 고향이 ‘키르기스스탄 토크마크’라고 못 박기 위해서였다. “두 도시가 이백의 문화유산을 함께 홍보하고 경제적으로 협력하자”는 제안도 했다.
2010년 3월 간쑤성 출신 학자 레이다가 이백의 고향은 간쑤성 톈수이시라고 했다. 현지 주민들은 서명운동까지 벌였다. 이백은 당의 서역 영토였던 안서도호부 수이예청에서 태어난 것으로 기록돼 있다.
4살 때 쓰촨 장여우로 와 자랐으며, 천하를 주유하며 안루에도 머물렀다고 한다. 장여우와 안루는 ‘이백’을 내세워 관광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했다. 당시 두 두시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처지였다.
장여우는 ‘이백의 고향, 시의 도시’로 오래 전부터 홍보했다. 이백의 옛집, 이백기념관 등 관광패키지 상품도 개발해 왔다. 2003년에 ‘이백의 고향’이라는 상표등록까지 마쳤다. 7억 위안 이상을 투자하며 이백 상품화에 공을 들였다.
이백의 시에서 “안루에 은거해 술을 마시며 10년을 보냈다”는 구절이 나온다. 후베이 안루 역시 2002년부터 당시 공원, 시의 숲 등에 8000만 위안 넘게 투자했다. 정야사를 노래한 이백의 고향을 둘러싸고 중국 도시들과 토크마크까지 신경전을 벌였다.
안루가 2009년 8월 CCTV에 “이백의 고향 안루가 당신의 방문을 환영한다”는 홍보광고를 대대적으로 내보낸 게 도화선이었다. 장여우시가 방송국과 안루시 정부에 항의편지를 보냈다. “장여우야말로 이백의 유일한 고향이며, 해당 광고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중국 정부는 “안루가 장여우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키르기스스탄 토크마크 역시 중국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이태백 마케팅에 열을 올린다. 이백은 서역인 중 최고의 문장가라고 여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