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살아있네!···노브랜드배 고교동창야구 출전, 포기 몰라”

이만수 대구야구

9월 3일 대구에서 ‘제1회 노브랜드배 고교동창 야구대회’가 열린다고 해 이른 아침에 인천에서 대구로 내려갔다. 대구에서 예선 두 경기를 이겨야만 16강전에 오를 수 있다.

이른 새벽에 대구로 출발하려는 나에게 아내는 며칠 전부터 이어진 당부를 또 반복한다. 이제 나이를 생각해서 제발 무리하게 경기에 출전하지 말고 그냥 총감독으로서 가만히 덕아웃을 지키는 역할만 하라는 것이다.

사실 2014년 프로야구 현장을 떠나 지금까지 사회인 야구 경기나 친구 또는 선수들과 함께 직접 경기를 하지 않고 재능기부를 통해 코칭을 해 온 것이 내 신체 움직임의 전부였다.

왼쪽부터 양일환 감독, 필자 이만수 선수, 양준혁 선수, 김승관 현 대구상원고 감독, 안지만 선수, 김정수 선수

이번 대회에 출전 부탁을 받았을 때 솔직히 참가하지 않으려고 생각했다. 나이뿐만 아니라 야구 경기를 위한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오히려 민폐가 될 것 같은 걱정 때문이었다. 거기다가 양쪽 눈에 백내장이 왔고 오른쪽 눈을 수술한 상태이며, 노안이 심해져서 포수로서 공을 잘 포구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에 선뜻 대회 참가 의사를 밝히기가 주저되었다.

그러나 오랜 고민 끝에 선수가 아닌 그저 벤치에서 후배들을 격려하고 야구 명문 학교라는 모교의 명예를 후배들과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에 이번 대회에 참가를 결정하게 되었다. 후배들은 이번 대회에 선수로서 출전하지 않더라도 대회에 참석해서 자리를 빛내주어야 한다며 유니폼까지 맞춰서 집으로 보내주었다. 참 고마운 일이다.

양준혁과 이만수

유니폼을 챙겨 대구 경기장에 도착해서 혹시나 모를 출전에 대비해서 준비 운동을 하는 내 곁에 이번 대회 모교의 감독을 맡은 양일환 후배가 다가와 인사말을 건넨다. 그리고 “선배님. 오늘 대타 나갈 테니 준비해 주세요”라는 출전 명령을 전해 주었다. 예전 프로선수로 경기에 출전할 때처럼 갑자기 긴장감이 밀려왔다. 현장을 떠난 후 8년 동안 제대로 된 야구 경기를 하지 않았고 이번 대회 준비를 위해 모교 팀원들과 합동 훈련도 하지 못한 터라 혹시나 팀에 피해가 될까 걱정 반, 긴장 반이다.

초조하게 경기를 관전하고 있는데 갑자기 양일환 감독의 경기 출전을 위한 호명이 들린다. “이만수 대타입니다.” 허겁지겁 헬맷을 쓰고 야구장갑을 끼고 긴장된 마음으로 타석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전광판을 통해 대타로 출전한 이만수의 이름을 확인한 관중들의 환호가 들린다. “이만수!! 이만수!!” 오랜만에 들어보는 야구장에서의 환호가 낯설기도 하지만 마음이 설레기도 한다.

짧은 이 순간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가장 먼저 내 자신에게 주어진 이 과제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 간다. 비록 나이가 들고 운동을 많이 하지 못했지만 내가 가진 능력을 보여주고 싶다는 간절함이 생겼다. 나이가 들어 신체적으로 운동 능력이 많이 낮아지고 그만큼 야구 실력도 녹슬었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내 존재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샘 솟았다.

아마도 아내가 걱정한 부분이 이런 것일 것이다. 아내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너무나 잘 알기에 며칠 전부터 계속해서 따라다니며 당부를 했던 것이다. 막상 경기에 임하면 나이를 잊고 무모할 만큼 경기에 최선을 다하는 나를 아내는 정확하게 알고 있다.

경북고 출신 성준 투수와 이만수 감독

투수가 던진 초구. 시력이 떨어져 정확하게 볼 수는 없지만 50년 야구 인생의 감각을 믿고 힘껏 돌린 야구 배트에 공이 정확하게 맞았다. 몸쪽으로 제구된 직구였다. 물론 프로야구에서 보는 빠른 공은 아니었지만 제대로 받아친 느낌이었다. 배트를 떠난 볼이 시원하게 날아가 아쉽게 좌측 폴대 바깥쪽에 떨어졌다. 파울 홈런이었다. 관중석과 양 팀의 벤치에서 놀라워하는 비명이 들린다. 아마도 내 나이에서 나오기 힘든 강하고 빠른 스윙에 많이 놀라는 눈치였다. 한 번도 ‘대충’ 뭔가를 하는 것을 죽도록 싫어하는 내 성격 탓에 늘 걱정하는 아내의 모습은 순간 잊어버리고 타석에서 집중하고 또 집중한다.

두 번째 공은 슬라이드였다. 이번도 마찬가지로 최선을 다해 풀 스윙했다. 역시 파울볼이었다. 투 스트라이크 이후 투수가 던진 공은 바깥쪽 유인구였다. 불리한 볼 카운트에 바짝 긴장하며 기다린 네 번째 공은 투수의 손에서 공이 빠져 내 몸으로 향했다. 급히 몸을 돌려 공을 피했지만 등에 공을 맞았다. 그런데 순간 몸이 경직되면서 담에 걸렸다. 운동 부족이 결국 이러한 상황을 가져오지 않았나 싶다. 첫 경기는 경신고에 11:4로 승리했다. 사구(死球)의 통증을 보상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두 번째 경기는 2시간의 휴식 후 마산고등학교와 대결이었다. 첫 타석에서의 강렬함 때문인지 양일환 감독이 대타 준비를 또 지시하였다. 나이를 잊고 30대 선수처럼 풀 스윙하는 나를 많은 사람이 참 놀라워한다. 나 또한 어떤 일이든 집중하고 대충 대충하지 않으려는 내 스타일이 고칠 수 없는 고질병임을 다시 느낀다.

두 번째 경기에서는 더 준비할 틈도 없이 만루 상황에서 갑자기 출전이 이뤄졌다. 몸을 풀 시간도 없었고 제대로 된 연습 스윙도 없이 맞이한 타석에서 초구 바깥쪽 직구를 받아쳐 우익수를 넘기는 싹쓸이 3타점 2루타를 만들었다. 오랜만에 느껴 보는 짜릿한 손맛이었다.

현역으로 되돌아가 마치 결승타점을 기록한 상황처럼 관중들과 덕아웃의 모든 선수가 일제히 이만수를 연호하고 있다. 두 번째 경기에서는 마산고등학교를 20 : 3이라는 큰 점수 차로 이겼다. 오늘 경기를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고, 또 이제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했던 내 몸속 구석구석 야구 감각들이 아직은 잘 살아있음을 느꼈다. 이만수는 죽지 않았다. 여기저기에서 이런 말들이 들린다.

“이만수 ~ 사롸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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