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산 김일훈 60] 함양 삼봉산 살구쟁이의 ‘김함배기’

삼봉산. 인산은 이곳으로 옮겨 함지박을 만들어 생계를 이으며 찾아와 간청하는 환자들을 치료하곤 했다. 

애초에 인산이 함양으로 간 데에는 운둔하고자 하는 뜻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함태영 부통령과 김병로 대법원장을 중간에 내세워 이기붕을 차기 부통령으로 해서 자신이 4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도록 협조해 줄 것을 인산에게 부탁해 왔었다. 결국 독립운동을 했던 선배들의 강권에 못 이겨 끝까지 거절하지 못하고 이승만 정권의 튼튼한 지지세력의 역할을 하게 될 ‘삼일정신선양회’의 전국 도 단위 조직을 얽어매 놓고는 슬며시 몸을 빼서 스며든 곳이 함양이었다. 오죽하면 최영호 선생과도 당분간 연락이 닿지 않기를 바랐던가 말이다. 그만치 부질없는 인간관계가 가져다주는 부담이 싫었다. 더욱이 정치라는 진흙탕이 얼마나 더럽고 몰상식한지 잘 알고 있는 인산으로서는 더 이상 그런 일에 손을 거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은둔지로 택한 함양에서조차 본의 아니게 차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입장이 되자 은근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자신의 행방이 중앙에 알려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판단한 인산은 함양 읍내를 벗어나 보다 깊숙한 산골로 들어갈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외출했다가 집으로 돌아와 아내가 서럽게 울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함양 떠날 결심을 하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리도 슬피 우는 게요?”
영문을 모르는 인산은 아내의 등을 토닥거리며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아내는 얼른 대답을 하는 대신 더욱 서럽게 울기만 하였다.
“참으로 답답하구려. 얘기를 해야 알지 울기만 하면 어쩌겠소? 어서 말을 좀 해보구려.”

인산은 아내를 달래면서 우는 까닭이 뭔지 다시 한 번 채근해 물었다.
“이제 사람들이라면 무섭고 지긋지긋해요. 우리 이곳을 떠나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 가서 살아요, 네?”
마침내 입을 연 아내는 뜬금없이 그렇게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리 말하는지 모르겠구려. 그 영문이나 얘기해 보오. 이사를 가더라도 까닭은 알아야 할 것 아니오?”
인산은 눈물에 젖은 아내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훔쳐 주면서 그렇게 말했다.
아내는 여전히 흐느끼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아까 낮에…… 정약국의 며느리가…… 사람을 시켜서…… 간장 한 되를…… 보내왔어요. 그래서……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서…… 우리 집 간장독에 부었지 뭐예요. 제가…… 생각이…… 모자랐던 거예요. 간장독에 붓기 전에…… 미리 맛을 보았어야 하는 건데…… 으레 부잣집 간장이니 맛이 제대로 들었겠거니 하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그 간장을 이미 쏟아 부었는데…… 이상한 냄새가 나지 뭐예요. 아차 싶어서 독 안의 간장을 찍어 맛을 보았더니…… 그건 이미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그 여자가 무슨 마음에서 그랬는지…… 간장에다 오물을 섞어서 보낸 거예요. 기가 막히지 뭐예요. ……우리 집 간장마저도 먹을 수 없게 죄다 버려놓았으니……. 저는 정말이지 사람이 무서워요. 어떻게 그럴 수가……. 우리 어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요. ……화전(火田)이라도 일구며 마음이라도 편하게 살고 싶어요. 여기를 떠나…….”
아내는 말끝을 맺지 못하고 다시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아내의 얘기를 들은 인산은 깊은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 ‘그 여자가 끝내 내게까지도 앙심을 품었구나. 어차피 이곳을 뜰 생각이었는데, 오히려 잘되었다.’

인산은 아내의 아픈 마음을 달래주며 약속을 하였다.
“그럽시다. 임자의 말대로 어디 인적 없는 조용한 곳에 가서 살도록 합시다.”
함양읍에서 민족의 영산(靈山) 지리산 쪽으로 방향을 잡아 가다 보면 삼봉산(三峰山)을 마주치게 된다. 그 산 서쪽 기슭의 험한 계곡을 따라 30리쯤 거슬러 올라가면 칠선계곡·한신계곡·백무동 등 수려한 자연 경관이 펼쳐지는 지리산 북쪽 기슭을 보듬고 있는 마천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지나게 된다. 함양과 마천을 잇는 백리 남짓 되는 산길 소로의 중간 지점에 있는 그 고개는, 당시에만 하더라도 숲이 워낙 깊고 길이 험해 인적이 드물었다.

옛날 어느 스님이 구도(求道)의 미로를 헤매다가 그곳에 이르러 모든 번뇌 망상을 벗어버리고 오도(悟道)하였다고 하여 ‘오도재’라고 부르는 그 고개를 앞에 두고 인산의 가족들은 힘겹게 오르막길을 걷고 있었다. 계곡과 울창한 나무 사이를 뚫고 와 어린것들의 뺨에 매서운 기세로 부딪치는 겨울 칼바람을 막기 위해 인산 내외는 두 아이의 얼굴을 감싼 털목도리를 다시 한 번 여며주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여섯 살 난 장남은 걷게 하고 차남은 인산 내외가 번갈아 등에 업으면서 나선 길이었다. 장남 윤우는 춥고 다리도 아프다고 계속 칭얼거렸다.

곧 날이 저물 것이기 때문에 인산은 윤우의 칭얼거림을 못 들은 체하며 앞장서서 걸었다. 그렇게 걷다가 가족들이 뒤처지면 한동안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기다리는 일을 반복했다. 아무래도 오도재를 넘어가기에는 어려울 듯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 양지 바른 쪽으로 비스듬한 비탈에 네댓 가구의 허름한 집들이 이웃하여 자리 잡은 인가가 나타났다. 저녁밥을 짓는지 집집의 굴뚝에서는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추위에 떠는 어린 것들을 생각하노라니 따뜻한 불기운이 유난히 아쉽게 느껴졌다.

‘오늘은 여기에서 신세를 지며 묵어야겠구나. 딱히 갈 곳을 정해 놓은 것도 아니니, 이곳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눌러앉을 만한 곳인지도 알아보기로 하자.’
그 마을-이라고 할 규모도 못 되었지만-은 살구쟁이(杏亭)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인산과 그 가족들은 그중 초입에 있는 어느 집 사립문 앞에 섰다. 인산은 집 안쪽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실례합니다. 안에 누가 계십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방문이 열리면서 그 집 주인인 듯한 남정네가 얼굴을 내밀었다. 방문의 돌쩌귀에서나 집주인의 목 안에서나 동일하게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뉘시오?”
“아, 네……. 함양에서 마천으로 넘어가던 사람인데, 날이 저물 것 같아서……. 어린 것들도 있고 해서 하룻밤 신세를 지고 갈까 합니다. 죄송합니다. 그 이상의 폐는 끼치지 않겠습니다.”
인산은 부탁을 하는 사람으로서 집주인에게 공손히 말했다. 집주인은 그제야 방문턱을 넘어 내려와 검정 고무신을 끌며 문께로 나왔다. 인산의 가족들을 한번 훑어본 그는 혀를 차면서 말했다.
“듣자 하니 우리 집에서 하루 저녁 묵어가기를 원하시는 모양인데…… 거절하는 게 아니라…… 방이라고는 하나뿐인 데다 비좁아서……. 아무튼 안으로 들어갑시다. 아이들이 아주 시퍼렇게 언 것 같으니, 우선 데리고 들어가서 몸이라도 좀 녹이시구려.”

인산은 주인이 안내하는 대로 가족과 함께 방 안으로 들어섰다. 아직 날이 저물기 전이었으므로 들창으로 희미한 빛이 비쳐들고 있었고, 방바닥은 그런 대로 미지근한 기운을 지니고 있었다. 그 사이에 아궁이에서 불을 때고 있던 안주인이 나타났고, 아랫목을 차지하고 있던 열댓 살 가량의 총각 녀석은 굼실거리는 몸짓으로 한쪽 구석으로 비켜 앉았다. 암만 내 사정이 급하기로서니 그 방에서 함께 재워줄 것을 청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인산이 주인에게 말했다.

“방금 전에 들어오면서 보니까 헛간이 있던데, 거기에 마른 짚단 좀 깔면 그런 대로 밤을 지낼 만 할 겁니다. 저희는 그곳에서 묵겠습니다.”
주인은 극구 만류하며 방 안에서 함께 잘 것을 권하였지만, 인산은 가족들을 데리고 헛간으로 갔다. 아닌 게 아니라 입구에 가마니를 치고 바닥에 짚을 까니, 헛간이라고는 해도 바람막이는 어느 정도 되었다.
“내 집에 든 손님이시니…… 저녁 대접을 해야 할 텐데…….”
주인 내외의 걱정에 인산 내외는 손사래를 치면서 사절하였다.
“무슨 말씀을……. 저희가 길을 떠나면서 준비한 주먹밥이 몇 덩이 있으니, 조금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자꾸 그러시면 저희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인산 내외는 보퉁이에서 주먹밥을 꺼내 장남에게 먹이고, 차남에게는 젖을 물렸다. 시나브로 어두워져 가는 속에서 지친 가족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인산의 마음은 꺼멓게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그때 집 주인 내외가 다시 나타났다. 남자는 벌겋게 이글거리는 불을 담은 질화로를 안고 있었고, 그 아내는 따듯한 숭늉 대접을 쟁반에 받쳐 들고 있었다.
“이것이라도 있으면 밤을 나기가 좀 나을 것 같아서…….”
“저 머슴아 목메겠네. 어서 이 숭늉이라도 마시면서 먹어라.”
그들 내외는 깊은 산골의 투박한 삶을 살고 있지만 후덕한 인심만은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 같았다.
이후로 3년여 동안 인산과 그 가족들이 묻혀 살게 되는 살구쟁이에서의 첫날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삼봉산 산촌 살구쟁이 마을에 

함양군 삼봉산의 속살 깊이 파묻혀 있는 듯한 살구쟁이 마을은 전형적인 산촌으로서 주민들은 협소한 화전을 일구거나 산나물을 채취하는 것으로 생업을 삼았다. 인산이 처음 찾아 들어간 동네 외에도 인근 골짜기 갈피마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인가가 도합 30여호는 되었다. ‘법 없이도 산다’는 정형화된 말이 있지만, 그들에게는 사회의 모든 제도나 법규 등을 적용시킬 여지가 없을 만큼 아주 자연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남의 것을 탐낼 줄도 모르고 성내는 일도 없이 오직 우직하고 평화스럽게 자신들의 생명을 발하며 살 뿐이었다.

인산은 동네 사람들이 가리키는 비어 있는 집에 들어가 가족들과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다. 나무 둥치를 베어다가 생긴 그대로 기둥을 삼고 흙과 풀을 이겨 벽을 발라 지은 그 집은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퇴락했지만, 인산이 며칠을 두고 손을 보아 비바람을 가리고 조석을 끓일 수 있는 정도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산 위에 올라가 밤을 지새며 성운(星運)을 관찰하다가 날이 밝은 후에 귀가하던 인산의 귀에 어디선가 ‘탁, 탁, 탁-’ 하고 나무를 찍어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때는 바야흐로 초여름으로 접어들 무렵의 싱그러운 아침이었다. 이끌리듯 소리 나는 쪽으로 가 보니, 체구가 자그마한 중노인 한 사람이 한자 반 길이로 토막을 낸 아름드리 통나무를 자귀로 찍어 다듬고 있었다. 노인의 주변에는 토막 난 통나무들과 톱과 망치·끌 같은 연장들이 널려 있었고, 그 한쪽으로는 노인의 작업 결과물인 듯한 그릇 형태의 기물(器物)이 눈부시게 뽀얀 나무의 속살 빛을 드러낸 채 놓여 있었다. 인산이 다가가자 노인은 일하던 손을 멈추고 인산을 바라보더니 먼저 말을 건네 왔다.

“첨 뵙는 분인 걸로 봐서 이 근처에 사시는 분은 아닌 것 같은데, 어디서 오신 뉘신겨?”
“아, 예…… 저는 저 지난 겨울부터 저 아래 살구쟁이에 들어와 사는 김이라는 사람입니다. 산 위에 올라갔다가 영감님이 일하시는 소리에 이끌려 예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만들고 계신 것이 뭡니까? 무슨 그릇 같기는 한데…….”
인산은 자신을 소개한 끝에 이미 완성된 기물을 눈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아, 이거예? 이건 함배기(함지박)라 카는 깁니더. 집 안에서 음식물을 씻거나 버무릴 때 쓰기도 하고, 또 뭘 담아 보관하는 데도 쓰는 기라예.”

함지박은 우리의 전통 주방 목기(木器) 중에서는 가장 널리 쓰이는 기물 중의 하나로서, 국내에서는 운봉·함양·무주 등지가 대표적인 산지이다. 하지만 그 지방에 내려와 산 기간이 짧았던 인산은 함지박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인지를 몰랐던 것이다.

인산은 노인의 양해를 구하고 완성된 함지박을 들어 그것의 요모조모를 자세히 살펴봤다. 노인이 자귀와 끌을 사용하여 깎아낸 솜씨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통나무를 파내어 그렇게 완성하려면 손품이 적잖이 들어갈 것이라는 것도 짐작이 갔다.
“이걸 함배기라고 하셨죠? 영감님께서 이렇게 만드시면 하루에 몇 개나 만드실 수 있습니까?”

                                                                       함지박


함지박 노인 만나…익숙한 손기술로 ‘쓱쓱’ 

인산의 질문에 노인은 눈을 가늘게 떠 보이며 자랑이라도 하는 말투로 말했다.
“뭐, 하기 나름 아니겠십니꺼? 단풍나무 맨키로 단단한 나무로는 하루에 다섯 개를 깎기가 빠듯하지만, 소나무로 깎으면 일곱 개까지도 깎을 수 있십니더.”
“그러면 영감님께서는 이걸 만들어서 장에 내다 파시는가요?”
인산이 다시 물었다.
“하모요. 함양 장이고 마천 장이고 이 신당골에 사는 함양 박가가 깎아가 내가는 함배기는 읎어서 못 팔 정도라예. 내사 이걸 깎아 먹고 사는 게 벌써 30년이 넘었다 아닙니꺼?”
장인(匠人)으로서의 드높은 자부심을 드러내 보이는 노인은 자못 신바람이 난다는 투였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이 함배기 정도면 가격을 얼마나 받을 수 있습니까?”
내친김에 궁금한 것은 모두 알고 싶었다. 살구쟁이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필요할 때에 대비하여 약초를 채취하는 일 말고는 딱히 정해 놓고 하는 일이 없었던 인산으로서는 모처럼 눈에 띄는 일거리를 찾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방금도 말했지만 내 물건은 읎어서 못 팔 정도라서…… 부르는 게 값이긴 하지만……. 이 정도 크기라면 백미 서 말은 충분히 받을 수 있다 아닙니꺼?”
인산은 거기에 두어 시간 머물며 박 노인이 비상한 손놀림으로 하나의 함지박을 만드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그러고 나서 일단 집으로 돌아가 점심을 챙겨 먹은 후, 부지런히 박 노인이 일하고 있는 장소로 다시 갔다. 박 노인은 그때 막 싸가지고 온 점심을 먹고 나서 담배를 한 대를 피우며 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쉬고 있던 참이었다.
“우째 다시 오셨능교?”

박 노인은 다시 나타난 인산을 의아해 하는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저도 저 함배기라는 걸 한번 만들어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죄송하지만 영감님의 연장 좀 빌려 써도 괜찮겠습니까?”
인산이 그렇게 말하자, 박 노인은 빙긋이 웃어 보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오호라, 궂은일이라꼬는 손에 잡아본 적도 읎는 서생(書生) 양반인 줄로만 알았더니만……. 내가 일하는 것을 보니 수월해 보였던 모양이오. 어디 한번 해보슈, 그게 보는 것과는 다를 끼지만…….”

박 노인은 옥같이 흰 피부에 귀골(貴骨)로 생긴 인산의 얼굴을 보고는 연장이나 제대로 다룰까 싶은 마음이 들어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박 노인의 착각일 뿐이었다. 40년간 산판의 벌목에서부터 탄광에서의 채탄 작업과 토목 일, 철로 침목(枕木) 깎는 일, 발전소 건축 공사장 일, 사금 채취, 부두에서의 가대기질 등 험한 노동일치고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로 인산은 육체노동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함지박을 만드는 일은 특별한 기술을 요하는 일로서 단순한 육체노동과는 또 달랐으니, 박 노인이 그렇게 지레짐작을 하는 것이 아주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

아무튼 인산이 자청하여 함지박을 깎아보겠다고 나선 데에는 웬만큼은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산은 만에 하나 정말로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달리 박 노인의 일을 방해하고 함지박 재료 하나를 못 쓰게 만드는 결과를 낳으면, 함지박 만들 나무를 베어다가 드리겠노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자귀를 집어 들었다. 박 노인이 완성해 놓은 함지박을 힐끗힐끗 쳐다보며 눈어림으로 통나무 위에 그은 가상의 선을 따라 자귀의 날을 박아 함지박의 외형(外形)을 깎아 나갔다. 일정한 간격으로 박자를 맞추어 자귀질을 하는 인산의 솜씨는 그 일을 처음 해보는 서툰 솜씨가 결코 아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박 노인이 차츰 놀라는 눈빛을 띠기 시작했다.

박 노인 자신이 함지박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거나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도시에 살다가 내려온 책상물림같이 곱게 생긴 손을 지닌 사람이 힘도 별로 들이지 않고 툭툭 나무를 깎아 나가는 모습이 영 예사롭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박 노인은 오후의 작업을 시작할 생각을 잊은 듯, 넋을 놓고 인산의 손놀림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인산은 외형을 갖춘 함지박의 속을 파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 양반 솜씨가 보통이 아니구마……. 아무리 눈썰미가 좋다꼬 해도 단 한 번만 보고 함배기를 만들다니…….’
이렇게 생각한 박 노인은 어느새 이마에서 뚝뚝 떨어지는 땀을 손등으로 닦아내는 인산에게 물었다.
“참말로 함배기를 첨 깎아보능교? ……이기(이게)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선상께서는 참말로 수월케 잘도 깎으시느마.”
“다른 일은 이것저것 조금씩 해봤습니다만, 함배기를 깎는 일은 정말 처음입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지는 않는 것 같군요.”

인산은 박 노인이 밝힌 시세로 함지박을 팔 수 있다면 생계유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인산은 이튿날, 동네 사람들에게 함지박을 만드는 데 필요한 연장들을 빌려가지고 산으로 들어가 함지박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 한 개를 만들 때보다 두 개째를 만들 때 손놀림이 보다 능숙해졌고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짧아졌다. 세 개, 네 개, 다섯 개째를 만들 때에는 이미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은 모양의 함지박을 만들 것이 아니라 원목의 종류나 모양, 나뭇결 등에 따라 다른 형태의 함지박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을 때에는 사용자가 용도에 따라 골라 쓸 수 있도록 창안된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함지박들이 인산의 손끝에서 완성되어 갔다.

드디어 마천 장날이 되었다. 인산은 그동안 만든 함지박들을 지게에 지고 마천 장터로 갔다. 살구쟁이에서 마천까지는 오도재를 넘어가는 70리 길이었다. 30리 길 함양 장에는 자신을 알아보는 눈들이 있을 것 같아서 우선은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인산이 장터에 펼쳐놓은 함지박들은 짧은 시간 안에 모두 팔려 나갔다. 무슨 일이든 허투루 하는 법이 없는 인산이 만든 것이 다른 사람들이 만든 것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좋았기 때문에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아내 영옥도 가녀린 몸에 함배기를 등에 지고 인근 마을집에 가 함배기를 팔아 양식거리로 바꿔오곤 했다.

살구쟁이에 살게 되면서 우연치 않게 손에 익히게 된 ‘함배기 깎기’는 인산에게 ‘김함배기’라는 별명을 남길 정도가 되었다. 인산은 장이 서는 날이면 함지박을 잔뜩 지고 나가 저녁 무렵이면 빈 지게에 식량과 생필품을 사서 지고 귀가하고는 하였다. 물론 그런 때마다 장거리 막걸리로 암탁한 세상에 대한 분노와 시름을 잊고 잔뜩 취한 채 지안재 가파른 산길을 넘기 일쑤였다.

인산이 어떤 사람이던가. 태어났을 때는 지구촌 모든 인류에게 병마를 없애주겠다는 거대한 자신감으로 우주를 조망하며 의학의 이치를 깨치고 약성의 비밀을 하나하나 밝혀 7세 소년의 몸으로 온갖 난치병을 통쾌히 쓸어버리지지 않았던가. 그러나 세상의 무지와 인간의 어리석음이 하늘 아래 하나뿐인 전무후무 인류역사에 다시 없을 의학의 성자, 지구촌의 의황을 몰라보니 조그만 한국땅 궁벽한 산골구석에 쳐박혀 노동으로 하루하루 끼니를 이어가는 자신의 처지가 하도 우습고 허망하여 술로 머릿속의 태양보다 찬란한 지혜를 덮어버려야 했던 것이다.

인산이 살구쟁이에 살던 그 시기에도 소문을 듣고 그곳에까지 찾아오는 환자들과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있었다. 몸속에 깊이 자리 잡은 병을 고쳐보려고 용하다는 데는 모두 찾아다니며 갖은 수단을 다 써 본 환자들이 어느새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처참한 몰골로 인산을 찾아왔다가 아무 댓가 없이 무료로 써 준 기적같은 처방을 받아들고 생명을 구한 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생계를 위하여 손바닥이 온통 굳은살로 덮이도록 함지박을 파고, 마천 장까지 70리 먼 길을 옆집 드나들듯 다니던 인산이었지만, 병을 고쳐주고는 아무런 물질적 대가를 받지 않았다. 환자들 가운데에는 병구완을 하느라 이미 경제적으로 밑바닥에 도달한 사람들이 많았기에 대가를 치를 형편도 안 되기도 했으나, 그보다는 인산의 머릿속에는 사람의 목숨을 구해주는 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 추호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침의 종류


20년 중병 앓던 김해 김씨의 처를 고치다

마천면 도마리에 사는 김해 김씨 중에 인산과 친구 사이로 트고 지내는 사람이 있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뙈기가 제법 넓어 농촌 살림치고는 제법 윤기 있게 살아가는 사람이었는데, 한 가지 해결하지 못할 걱정거리가 있었다. 바로 자신의 아내가 속병이 들어 20년 가까이 고생을 하다가 마침내 몸져누운 지 1년 반이 되었던 것이다. 서울의 큰 병원에도 찾아가 봤었고, 좋다는 약이라는 약은 귀에 잡히는 대로 지어다가 먹게도 하였다. 그러나 김씨 아내의 속병은 낫지를 않았다.
그러던 차에 김씨는 마천 장에서 함지박을 팔고 있는 인산과 사귀게 되었고, 그가 단순히 함지박을 만들어 팔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못 고치는 병이 없을 만큼 훌륭한 의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사람아, 내가 자네를 진작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 지금 당장 우리 집으로 가서 내 집사람 좀 봐주게나. 모르긴 몰라도 위(胃)나 장(腸) 중에 제대로 기능을 하는 건 하나도 없을 걸세.”

김씨는 왠지 인산에게 자기의 아내를 보이면 그녀의 오랜 고질병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어 인산을 잡아끌었다. 그리하여 인산은 김씨의 집 안방에 누워 있는 환자를 마주하게 되었다. 환자에게서는 벌써 혀가 마르는 증세마저 나타나고 있어서 기존의 의서에서 이르는 방법으로는 그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살릴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산은 환자의 옷을 풀어헤쳐 가슴 아래에서 배꼽에 이르는 부위를 드러나게 하였다. 환자의 숨은 목젖까지 차올라 가쁘게 이어지고 있었고, 앙상하게 드러난 갈비뼈의 윤곽은 환자가 오랜 병으로 제대로 먹거나 소화를 시키지 못하여 극도의 영양 결핍 상태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몇 마디 말을 건네 보니, 가까스로 대답하는 그녀의 입에서는 역한 악취가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자네는 내가 어떤 치료 방법을 쓰더라도 나를 믿고 자네 아내의 목숨을 내게 맡길 수 있겠는가?”
인산은 먼저 환자의 보호자인 김씨에게 그렇게 물었다. 김씨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인산을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부가 있겠나? 내 자네의 명성은 자네를 친구로 알기 오래 전에서부터 이미 들어왔다네. 이제 자네를 내 친구로 삼아 지내게 되었고, 내 집사람의 고질병을 자네에게 맡겨 치료케 되었는데, 믿고 말고 할 게 무엇이겠나? 그저 이 사람을 자네의 식구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서 살려만 주게.”

인산은 김씨의 말을 듣자마자 조금도 주저하는 기색 없이 환자의 명치 아래 복부를 꾹꾹 힘주어 누르기 시작했다. 환자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지만, 인산은 아랑곳하지 않고 서너 차례 같은 동작을 반복하였다.
이윽고 혼자의 생각에 따라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인 인산은 침통에서 대침(大鍼) 하나를 뽑아 환자의 중완(中腕-임맥에 속하는 혈로서 배꼽 위 네 치쯤 되는 곳으로, 위가 있는 부위에 있음)에다 깊숙이 찔러 박았다. 환자는 고통을 참느라 ‘끙’ 하는 소리를 내며 어금니를 사려 물었다. 대침의 침두(鍼頭)만 남겨놓고 4촌(寸) 길이의 침 거의 전부를 환자의 몸 속으로 찔러 넣은 인산은 잠시 호흡을 고르더니 재빠른 동작으로 침을 뽑아 올렸다. 그와 동시에 침 자리에서 피고름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미처 받아 내거나 닦을 새도 없이 뿜어져 나오는 피고름의 양이 어마어마했으며, 그 뿜어져 나오는 기세 또한 어찌나 세차던지 인산과 김씨가 그 피고름을 함빡 뒤집어쓸 정도였다. 앙상하게 말라붙은 것 같던 환자의 복강(腹腔) 그 어디에 그렇게 많은 양의 피고름이 들어 있었는지 환자의 남편 김씨로서는 정녕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속이 이렇게 시원할 수가 없어요. 마치 뱃속에 들어앉아 있던 바윗덩이가 쑥 빠져나간 것 같아요. 이제 좀 살 것 같아요.”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는 환자는 모처럼 활기를 되찾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인산과 김씨는 피고름을 뒤집어쓴 몰골이었지만 환자의 그런 모습을 보며 서로 마주보고 밝게 웃었다.
“이렇게 단박에 죽어 가던 사람을 살려낼 줄은 미처 몰랐네그려. 정말 고마우이, 친구…….”

김씨는 흥분과 감격에 겨워 말끝을 맺지 못했다. 인산은 김씨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말했다.
“자네가 나를 믿고 아주머니의 치료를 맡겼기 때문에 얻은 결과일세. 이제 아주머니의 병세의 십중팔구는 잡혔지만, 앞으로 첩약으로 나머지 치료를 완전하게 해야 하네.”
인산은 환자의 나머지 치병(治病)에 필요한 처방을 적어 주었고, 환자는 그로부터 보름도 되지 않아 20년 가까이 앓아오던 고질병으로부터 해방되어 건강한 삶을 살게 되었다.

“맙소사. 애도 살았어. 애 엄마도 살았어.”

어느 날 한밤중에 곤히 잠든 인산을 깨우는 소동이 일어났다. 옆집 이씨가 헐레벌떡 달려온 것이다. 이유인즉슨 이웃 마을 새댁이 출산 중에 애기가 가로 서서(橫産) 아기는 뱃속에서 나오지 못해 죽고 엄마는 애쓰다가 기진맥진해서 실신했다는 것이다.
“당신 비밀 지키는 건 다 좋은데, 너무 모르는 체 하는 것도 안되지 않소? 한꺼번에 사람 둘이 죽었는데 저걸 살릴 힘은 당신 밖에 없는데, 이 산속에 저걸, 죽어 나가면 어떻게 하겠소! 제발 좀 살려주게나. 제발 지금 좀 같이 가주기나 하세.”
이씨는 인산이 가기만 하면 살릴 거라 믿고 사정사정했다. 인산은 이 세상에 뜻을 펼칠 수 없음을 알게 되자 술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처지였다. 이미 손도 머리도 굳어가던 때라 살구쟁이에 들어와서 침통을 손에서 놓은지 한참되었다. 그러나 죄 없는 두 생명이 죽어간다니 따라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뱃속에 든 아기는 죽었거나 살았거나 무조건 나와야 한다.

인산은 비릿한 땀냄새가 물씬 풍기는 골방으로 들어서서 침통에서 침을 꺼냈다. 그리고는 온몸의 기를 손 끝에 끌어 모아 침을 꽂아 당겼다. 산모의 늘어진 신경이 강렬한 기운을 받아 마비가 풀리자 산모의 정신을 깨우더니 뱃속에서 숨이 고여 질식한 아기도 아직 숨이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던지 제자리로 돌면서 쑤욱 자궁밖으로 밀려나왔다.

“살아 있어! 살아 있어! 애가 살았어!”
곁에서 숨 죽여 지켜보던 산파가 아기를 받아 안으며 소리쳤다.
“맙소사. 애도 살았어. 애 엄마도 살았어.”
초상집같이 무겁던 살구쟁이 깊은 산속 외딴 집이 다시 활기를 얻어 분주해졌다.
그렇게 삼봉산 오도재 살구쟁이 깊은 곳에 은거하던 그 무렵에도 인산이 뿜어내던 활인(活人)의 빛은 사그러들줄 몰랐다. 뒷날 인산의 신침(神針)을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그 때 그 일을 인산은 이렇게 설명했다.

“애 엄마 사는 건, 애 엄마가 죽어도 내가 애 엄마 혼줄을 연속시키면 살아나는 법이 또 있어요. 그거 순 신(神) 힘이니까. 그걸 지금 왜 못 가르치느냐? 이 신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이면 배울 필요 없어요, 다 돼요. 그렇지 못한 사람은 배울 수 있나? 무당 같은 것도 아무나 하기 어려운데, 세상에 어려운 신법이 어떻게 마음대로 되나? 그래서 난 젊어서는 침을 들고 있지 않아도 내 손끝엔 신의 조화를, 신이 와서 도와주니까 돼. 불치병이 없어, 내 손끝에선.”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