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작가의 ‘죽음의 고찰’을 다시 읽으며

“관이 전기로 속으로 내려가면 고인의 이름 밑에 ‘소각 중’이라는 문자 등이 켜지고, 40분 쯤 지나니까 ‘소각 완료’, 또 10분 쯤 지나니까 ‘냉각 중’이라는 글자가 켜졌다. 10년 쯤 전에는 소각에서 냉각까지 100분 정도 걸렸는데, 이제는 50분으로 줄었다. 기술이 크게 진보했고, 의전 관리하는 절차도 세련되었다.”(본문 가운데) 사진은 벽제장례식장 입구 표지판

참 생각해 보면 오래 살았다. 예전 같으면 ‘고려장’(高麗葬)을 당할 나이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온갖 풍상 다 겪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이만하면 한 생애 잘 살다 가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마침 소설가 김훈 선생의 ‘죽음의 고찰’이라는 글을 읽고 여러모로 공감이 2회에 걸쳐 올린다. 김훈 작가께 깊이 감사드린다.

“팔십을 바라보게 되니까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벗들한테서 소식이 오는데, 죽었다는 소식이다. 살아 있다는 소식은 오지 않으니까, 소식이 없으면 살아 있는 것이다. 지난달에도 형뻘 되는 벗이 죽어서 장사를 치르느라고 화장장에 갔었다. 화장장 정문에서부터 영구차와 버스들이 밀려 있었다.

관이 전기로 속으로 내려가면 고인의 이름 밑에 ‘소각 중’이라는 문자 등이 켜지고, 40분 쯤 지나니까 ‘소각 완료’, 또 10분 쯤 지나니까 ‘냉각 중’이라는 글자가 켜졌다. 10년 쯤 전에는 소각에서 냉각까지 100분 정도 걸렸는데, 이제는 50분으로 줄었다. 기술이 크게 진보했고, 의전 관리하는 절차도 세련되었다.

‘냉각 완료’가 되면 흰 뼛가루가 줄줄이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서 나오는데, 성인, 한 사람 분이 한 되 반 정도였다. 직원이 뼛가루를 봉투에 담아서 유족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유족들은 미리 준비한 옹기에 뼛가루를 담아서 목에 걸고 돌아갔다.

원통하게 비명횡사 한 경우가 아니면, 요즘에는 유족들도 별로 울지 않는다. 부모를 따라서 화장장에 온 청소년들은 대기실에 모여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제 입으로 “우리는 호상입니다”라며 문상객을 맞는 상주도 있었다.

그날 세 살 난 아기가 소각되었다. 종이로 만든 작은 관이 내려갈 때, 젊은 엄마는 돌아서서 울었다. 아기의 뼛가루는 서너 홉쯤 되었을 터이다.​ 뼛가루는 흰 분말에 흐린 기운이 스며서 안개 색깔이었다. 입자가 고와서 먼지처럼 보였다. ​아무런 질량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물체의 먼 흔적이나 그림자였다. ​명사라기보다는 ‘흐린’이라는 형용사에 가까웠다.​ 뼛가루의 침묵은 완강했고, 범접할 수 없는 적막 속에서 세상과 작별하고 있었다.​ 금방 있던 사람이 금방 없어졌는데, 뼛가루는 남은 사람들의 슬픔이나 애도와는 사소한 관련도 없었고,​ 이 언어도단(言語道斷)은 인간 생명의 종말로서 합당하고 편안해 보였다.

죽으면 말길이 끊어져서 죽은 자는 산 자에게 죽음의 내용을 전할 수 없고, 죽은 자는 죽었기 때문에 죽음을 인지할 수 없다.​ 인간은 그저 죽을 뿐, 죽음을 경험할 수는 없다.​ 화장장에 다녀온 날 저녁마다 삶의 무거움과 죽음의 가벼움을 생각했다.​ 죽음이 저토록 가벼우므로 나는 남은 삶의 하중을 버티어낼 수 있다.

뼛가루 한 되 반은 인간 육체의 마지막 잔해로서 많지도 적지도 않고, 적당해 보였다.​ 죽음은 날이 저물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것과 같은 자연현상으로, 애도할 만한 사태가 아니었다.​ 뼛가루를 들여다보니까, 일상생활 하듯이, 세수하고 면도를 하듯이, 그렇게 가볍게 죽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 들이지 말고 죽자,​ 건강보험 재정 축 내지 말고 죽자,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지 말고 가자, 질척거리지 말고 가자,​ 지저분한 것들을 남기지 말고 가자, ​빌려 온 것 있으면 다 갚고 가자,​ 남은 것 있으면 다 주고 가자,​ 입던 옷 깨끗이 빨아 입고 가자, ​관은 중저가가 좋겠지.​ 가면서 사람 불러 모으지 말자,​ 빈소에서는 고스톱을 금한다고 미리 말해두자….

가볍게 죽기 위해서는 미리 정리해 놓을 일이 있다.​ 내 작업실의 서랍과 수납장, 책장을 들여다보았더니 지금까지 지니고 있었던 것의 거의 전부가 쓰레기였다.​ 이 쓰레기 더미 속에서 한 생애가 지나갔다.​ 똥을 백자 항아리에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둔 꼴이었다.

나는 매일 조금씩, 표가 안 나게 이 쓰레기들을 내다버린다. ​드나들 때마다 조금씩 쇼핑백에 넣어서 끌어낸다.​ 나는 이제 높은 산에 오르지 못한다.​ 등산 장비 중에서 쓸 만한 것들은 모두 젊은이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나머지는 버렸다. 책은 버리기 쉬운데, 헌 신발이나 낡은 등산화를 버리기는 슬프다.

뒤축이 닳고 찌그러진 신발은 내 몸뚱이를 싣고 이 세상의 거리를 쏘다닌, 나의 분신이며 동반자이다.​ 헌 신발은 연민 할 수밖에 없는 표정을 지니고 있다.​ 헌 신발은 불쌍하다. 그래도 나는 내다버렸다.

뼛가루에 무슨 연민이 있겠는가.​ 유언 하기는 쑥스럽지만 꼭 해야 한다면 아주 쉽고 일상적인 걸로 하고 싶다.​ ‘딸아, 잘생긴 건달 놈들을 조심해라.​ 아들아, 혀를 너무 빨리 놀리지 마라.’ 이 정도면 어떨까 싶다.”

필자도 유언을 해둔 지 오래다. 김훈 작가처럼 유언은 간략한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그저 “인생을 조금은 바보같이, 무조건 베풀며 세상을 위해 맨발로 뛰어라” 정도로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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