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산 김일훈 41] “강한 정신력을 가지면 독을 마셔도 중독되지 않는다”
1942년 무렵 운룡은 충재 김두운, 강재 문창수(康齋 文昌洙) 등의 주도하에 추진되던 총독부 습격사건 계획에 참여, 활동해오던 터였다.
그 즈음 운룡은 우연한 기회에 평안북도 구성군 천마면에 사는 인동(仁同) 장씨(張氏) 집안과 인연이 닿아 산에서 내려와 일을 보게 될 때에는 그 집에 들르고는 했다. 그러니까 그 이태 전이었던가, 한낮의 태양이 대지를 뜨겁게 달구던 8월 무렵이었다. 길을 가던 운룡이 잠시 쉬어 갈 참으로 길옆에 흐르는 시냇가의 버드나무 그늘 아래 앉아 있을 때였다.
어느덧 30세가 된 운룡의 풍채는 비범하기 이를 데 없어 보는 이에 따라서는 저절로 우러르는 마음이 들게 할 정도였다. 옷차림새야 허름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옥골선풍(玉骨仙風)으로 타고난 그의 풍모가 훼손될 리는 없었다. 물론 경찰의 눈에 닿으면 안 된다는 긴장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기이한 광채를 뿜어내는 그의 눈빛은 앉아서 쉬는 동안에도 풀잎 끝을 스쳐가는 바람결조차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 그때 마침 운룡에게로 다가오는 인기척이 있었다.
장영봉(張永奉)은 그 마을에 사는 청년으로서 도학(道學)에 관심을 갖고 그 방면 공부로 수련을 쌓아온 사람이었는데, 먼발치에서 운룡의 풍모를 바라보고 한눈에 예사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운룡에게로 다가갔던 것이다.
“처음 뵙갔습네다. 저는 이 마을에 사는 장영봉이라고 합네다. 노중(路中)에 쉬고 계시는 모양인데, 잠깐 실례 좀 하갔습네다.”
장영봉은 강한 평안도 억양으로 말을 건네며 운룡의 곁에 앉았다.
“아마도 이 근처 분은 아니신 것 같은데, 어드메에서 어드메까지 가시는 길손이신지요?”
피신해 다니는 운룡으로서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자신의 거처와 행선지를 밝히기를 꺼리는 습관이 들어온 지가 이미 오래였다. 하지만 사람 좋아 보이는 장영봉의 서글서글한 눈매가 운룡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기 때문에 운룡도 간단한 말로 응대하였다.
“아, 저 천마산 절집에 잠시 볼일이 있어서 가는 길이외다. 복중(伏中)이라고는 하지만 날씨가 어지간히 무덥소이다.”
“기렇습네다. 그런데 점심은 자셨는가요? 아직 식전이라면 저희 집에 가셔서 보리밥이라도 좀 대접하고 싶은데…….”
장영봉은 그렇게 말하더니 노골적으로 운룡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운룡과는 뭔가 인연을 맺어두는 것이 자신의 삶에 보탬이 된다는 생각에 강력히 이끌린 사람의 몸짓이었다. 운룡은 마지못한 듯이 그를 따라 일어났다. 낯선 객지에서 생각지도 않은 점심 한 끼를 얻어먹는다면 남은 갈 길이 한결 수월할 듯도 싶었다. 장영봉의 집에 도착하자 그 가족들은 운룡을 정중히 맞아들였다. 특히 장영봉의 부친이 운룡을 기쁜 낯빛으로 대했다.
“이맘때 저희 집에 귀인이 오실 줄 알고 기다려 왔는데, 그것이 헛되지 않아 금일에 귀한 손님을 이렇게 뵙게 되니 다시없을 광영(光榮)으로 생각됩니다.”
몇 해 전에 환갑의 나이를 넘긴 장영봉의 부친은 자식뻘인 운룡을 깍듯한 경어와 삼가는 태도로써 대했다. 그 집 부엌에서는 갑작스럽게 방문한 손님을 위해 있는 재료 없는 재료를 총동원하여 음식을 만드느라 법석이 일었다. 운룡은 오랜만에 밥상다운 밥상을 받고 포만감이 들 정도로 푸진 점심을 얻어먹은 연후에 그 집 문을 나섰다.
“금일에는 가실 길이 바쁘시다니 더는 붙잡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언제라도 이 근처를 지나가실 일이 있으면 꼭 다시 들러주십시오.”
장영봉의 부친은 하얗게 센 수염을 쓰다듬으며 운룡에게 재차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하였다. 간곡한 진심이 엿보이는 표정이었다.
“초면에 염치없이 대접만 받고 떠납니다. 후일에 꼭 다시 들러 어르신께 여러 가지 가르침의 말씀을 듣기로 하겠습니다.”
운룡도 정중히 인사치레를 하고 그 집 가족들과 작별을 하였다.
그게 첫 인연이 되어 운룡은 산에서 내려와 충재 선생 댁에 가거나 그 밖의 볼일을 보러 갈 때는 일부러 길을 약간 에두르는 한이 있더라도 장씨 댁에 들렀다 가고는 하였다. 그럴 때마다 장영봉은 미리 준비라도 해두었던 것처럼 갖가지 질문을 해댔다. 그 질문의 분야는 서(書)ㆍ경(經)ㆍ도(道)ㆍ불법(佛法)ㆍ사(史)ㆍ의(醫) 등 다방면에 걸친 것들이었고, 운룡은 그때마다 장영봉의 질문에 소상한 대답을 해주었다. 장영봉으로서는 운룡의 엄청난 지식과, 그 지식을 뛰어넘는 무한한 능력을 가늠할 길이 없어 사뭇 감탄만을 연발하였다.
연치(年齒)는 서로 두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건만 아는 것과 세상을 보고 느끼는 것, 그리고 그것들을 아우르는 능력에 있어서 자신과 어마어마한 차이를 보이는 운룡을 장영봉은 점점 더 우러러보게 되었다. 장영봉의 모친도 운룡이 집에 와 남편과 아들과 권커니 자커니 이야기꽃을 피우면 한 마디라도 놓치기 싫은 듯 주안상머리에 붙어앉아 있었다. 60세쯤 된 장영봉의 모친이 어렸을 적부터 앓아온 홍역 이질로 인해 30분 간격으로 화장실을 들락거리자 운룡이 왜 그러시냐 물어 지금까지 고생하는 까닭을 말해주었다.
대답을 듣자마자 운룡이 “지구상에 어떤 인물이 와 앞에 앉아있는지도 모르니 정말 답답하십니다. 염라대왕이 잡아간대도 붙들어올 만한 힘이 있는 사람을 놔두고 그깟 이질을 못 고치고 고생하십니까?”라고 하며 들기름을 듬뿍 넣어 비빈 메밀국수를 먹으면 깨끗이 낫는다고 일러 주었다. 운룡이 시킨대로 메밀국수를 눌러 들기름을 듬뿍 쳐 비벼 먹기를 몇 번 하자 수십년 고생한 이질이 감쪽같이 나았다. 그 후 장영봉의 어머니까지 운룡을 귀인으로 여겨 어떡하든지 운룡과 인척관계를 맺고 싶어 안달했다.
어느 날 장씨 집안 식구 16명 중 14명이 임오(1942)년 늦봄부터 돌기 시작한 장질부사(장티푸스)에 걸려 사경(死境)을 헤매 가족이 떼죽음당할 뻔 한적이 있었다. 장영봉의 동생 장영옥도 생사의 기로에 있었고 장영복까지 고열에 시달리다 3일동안 방안에서 똥오줌을 싸며 사경을 헤멨는데 그 때 마침 운룡이 그 집을 들렀다.
전염병에 걸린 환자의 방에 들어갈 때는 왼발을 먼저 들여놓고 낼숨은 한참 내쉬고 들숨을 들이쉬고, 방문 열고 환기한 다음에 들어가면 감염 병균수가 적어진다. 감염 병균수가 적어지면 쉽사리 감염되지 않는다. 그러나 장영봉의 아버지가 저승 사자 앞에서 옥황상제를 만난 듯 정신없이 방에 들어오라고 재촉하자 운룡은 오직 환자들을 구할 단 한 생각에만 정신을 몰두하여 병균이 가득찬 방안으로 방문을 열자마자 들어섰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다. 운룡의 영력이 운룡의 육신주위에 철통같은 방어선을 펼치고 있어 무시무시한 전염병균도 운룡의 몸을 털끝만치도 감염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만약 운룡이 눈꼽만치라도 감염될지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되었더라면 마음이 뚫린 그 순간 병균이 침입해 운룡도 꼼짝없이 생명을 잃게 되었으리라. 막강한 영력은 이 세상의 어떤 독도 물리칠 힘이 있다. 그 누구도 극강한 정신력을 갖게 되면 독을 마셔도 중독되지 않는다.
운룡은 급히 인근지역에 나는 수영 풀을 뜯어다 엿을 고아 먹게 함으로써 병세가 호전되어 한 달 만에 모두 거뜬하게 나은 일이 있었다. 장영봉의 누이 장영옥도 이 때 운룡에 의해 생명을 건졌다. 이런 저런 일들로 인해 장씨 집안의 사람들은 운룡을 신(神)처럼 떠받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