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리뷰] ‘서찰을 전하는 아이’···”아이야, 네 소리에 약이 들어있구나”

<사진 출처 대학로아르코예술극장, ©Aejin Kwoun> 

[문화비평=류재국 문화평론가, 칼럼니스트, 한국문화예술산업진흥회 인문예술연구소 소장]  2021년 12월 12~19일 대학로예술극장에서 <서찰을 전하는 아이>(연출 한윤섭, 예술감독 김도훈)가 공연되었다. 이 작품은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난 시기에 보부상인 아버지를 따라 장터를 떠돌던 소년이 아버지의 죽음 이후, 세상을 바꿀 만큼 중요한 서찰을 전하는 임무를 맡게된 여정을 그리고 있다.

원작은 2021년까지 15만 독자의 사랑을 받은 한윤섭 작가의 베스트셀러 역사동화인데, 원작가가 희곡 집필과 연출을 맡았고 코로나19 거리두기 시기인데도 좌석은 연일 매진이었다. 작품 소재는 1894년대 전면에 등장한 일본의 무력침략, 부패한 조선 관리들의 수탈에 조선 농민들이 마주친 민생의 위기를 동학(東學)으로 저항했던 농민혁명 지도자 녹두장군 전봉준의 순국 이야기다.

<사진 출처 대학로아르코예술극장, ©Aejin Kwoun> 


세상 구하고 많은 사람 목숨 구하는 서찰

1894년 당시의 조선 백성들은 ‘이중의 위기’에 노출되어 있었다. 안으로는 삼정문란(三政紊亂)이라 하여 지배층에 억압당하고 왜곡 당하면서 국가체제가 뿌리에서 흔들렸고, 밖으로는 일본의 침략 야욕에 굴복하는 조선의 운명을 맞서야 했던 피지배 민초들의 생명과 생업이 전면적으로 위기에 빠져들었다.

철학자 존 로크는 자연 속에서 자연법칙이 존재하는 한 인간은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하여 정당한 행동을 한다고 했다. 재산이 도난당했을 시에는 도둑에 대한 처벌을 할 수 있는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다는 주장이다.

동학농민들은 도둑들로부터 생명과 권리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 걸고 봉기하는 이른바 ‘민란의 시대’를 주도한다. 민란의 시대를 달리 표현한다면, 민중의식의 성장 곧 역사의 객체로만 취급받아왔던 민중들이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각성함으로써 역사의 주체로 일어선 것이다.

<사진 출처 대학로아르코예술극장, ©Aejin Kwoun> 

<서찰을 전하는 아이>에서 소년은 열세 살이다. 소년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보부상의 아버지를 따라 장터를 떠돌아다닌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중요한 서찰을 전하는 임무를 맡게 되면서 소년은 아버지와 함께 전라도로 떠난다. 아버지는 소년에게 서찰의 내용을 비밀로 한다. 다만 서찰이 세상을 구하고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라는 것만 알려준다.

그렇게 전라도로 향하던 어느 날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게 된다. 고아가 된 소년은 갈 곳이 없어지자 아버지의 서찰을 혼자서 전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런데 서찰 어디에도 수취인이 없고 내용 또한 암호처럼 10자의 한자로 되어 있었다. 소년은 한글은 조금 알지만, 한자는 전혀 모른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서찰의 주인을 찾아 나선다.

<서찰을 전하는 아이> ©Aejin Kwoun

중요한 서찰이라는 아비의 말을 떠올리면서 편지의 글을 조금씩 나누어서 한자를 알 법한 사람들에게 물어보며 전라도길을 따라간다. 수중에는 아비의 장례를 치르고 남은 돈이 조금 있다. 한 달 정도 숙식할 돈이다.

처음에는 길거리 양반이 두 글자를 가르쳐주는데 몇 냥을 받아 챙긴다. 그 글은 감탄사 ‘오호(嗚呼)’이다. 소년은 돈과 바꾼 글자를 잊을까 봐 “오호 오호”를 외치면서 걸어간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년은 보부상의 아들답게 장사 셈을 하는 데, 두 번째 글자를 배울 때부터 가격 흥정을 해서 조금 더 많은 글자를 더 낮은 금액으로 획득한다.

두 번째 글자는 ‘피노리(避老里)’이다. 글자를 알려주는 어른들이 혼자 남은 아이의 주머니까지 털어야 하는 장면에서는 어른들이 야속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는데 연출자의 의도는 그게 아니다. 소년은 돈을 지불하고 배웠기 때문에 글자를 잊지 않는다는 것이. ‘오호 피노리, 오호 피노리’

‘오호피노리경천매녹두(嗚呼避老里敬天賣綠豆)’

극 중에서는 소년은 아버지를 따라 전국 장터에서 익힌 ‘춘천 샘밭 타령’, ‘문경 박달나무 타령’, ‘예산 새우젓 타령’, ‘장타령’, ‘뱃노래’, ‘새야 새야 파랑새야’ 등의 민요를 신명나게 때로는 구성지게 부른다. 마치 마법처럼 어느 순간부터 아이가 부르는 노래에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거짓말처럼 말끔히 낫는다.

힘없는 조선에서 태어나 부정부패한 탐관오리들과 외세 휘둘리며 살아가는 백성들은 소년의 소리에 위로를 받는다. 그래서 극 중 중간중간에 만난 등장인물들은 “아이야, 네 소리에 약이 들어있구나”를 건넨다.

서찰의 뜻을 알아차리기까지 소년은 보부상 길을 돈 대신 노래를 불러 글값를 치르고, 앓는 이들의 건강 회복을 돕는 신비로운 경험까지 하며 나아간다. 모든 대가를 치르고 ‘경천매녹두(敬天賣綠豆)’를 알아낸 소년은 마침내 수수께끼 같은 서찰의 의미를 밝혀낸다.

그것은 ‘슬프구나, 피노리에서 경천이 녹두를 판다’이다. 지금껏 아이는 녹두장군과 서찰을 연관시키지 못하다가 드디어 깨닫는다. 이 서찰이 녹두장군과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목숨을 걸고 서찰을 전하러 간다. 동학의 우두머리를 잡기 위해 현상금을 내걸고 있다는 절박해진 상황이지만 소년은 깊은 밤을 이용해 장군을 만나러 강을 건넌다.

우금치 전투에서 대패한 동학농민군들의 주검을 목격하며 후퇴한 녹두장군을 찾아 내장산 백양사에 들렀다가 느닷없이 만나게 된다. 소년은 천신만고 끝에 녹두장군에게 김경천의 배신이 적힌 서찰을 전하였지만 오래지 않아 녹두장군은 김경천의 밀고로 붙잡히게 된다.

<서찰을 전하는 아이>는 열세 살 아이가 본 1984년 조선의 모습을 묘사한다. 피범벅인 채로 붙들려 가는 녹두장군에게 소년은 피노리에 오면 안 된다고 서찰을 전하였는데 왜 잡혀 왔느냐고 울면서 항변한다. 소년에게 녹두장군은 “동지를 믿지 않으면 누구를 믿을 것이며, 그렇게 해서 목숨을 구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나”라며 지친 육신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마치 소크라테스가 멜레토스의 모함으로 사형이 구형되었을 때, 배심원들의 방식대로 불의와 타협하여 목숨을 보존하는 것보다 의로운 죽음을 택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마지막 변론이 중첩된다. 종막에서 소년은 장군의 마지막 길을 위해 노래를 부른다. 대극장 무대 전후방에서 시그널 음악이 나오고 “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구성지게 부른다.

소년의 눈과 녹두장군의 눈에 피눈물과 함께 새로운 세상에 대한 깨달음이 객석의 분노와 흐느낌으로 전해진다. 노래가 끝나고 녹두장군이 한양으로 압송되면서 소년에게 말을 던진다. “아이야, 네 소리에 약이 들어있구나”라는 말을 남기고 의로운 연극 <서찰을 전하는 아이>는 막이 내린다.

극 속에서 서찰을 전하고 녹두장군의 죽음 이후 소년은 노래 속에 신비한 능력이 없어진다. 그렇게 아이는 평범한 아이가 되었고 보부상으로 성장한다. 필자는 소년의 신비한 노래 능력은 다 같은 백성들인데 불평등한 대우를 받으며 차별받았던 시대를 ‘보국안민(輔國安民)’에 담아 개혁을 꿈꿨던 녹두장군의 분신이 노래하는 것으로 보았다.

녹두장군의 열망은 오직 나라의 근본인 백성이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 나라와 백성을 위태롭게 하는 자들을 척결하여 공동선을 실천에 옮기는 것, 그래서 나라를 보필하고 인민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었다. <서찰을 전하는 아이>는 그의 열망을 현재의 관객들이 인식하는 자리에서 보부상의 아들인 열세 살 소년이 주도한 것이다.

4 comments

  1. 감동적입니다.
    그 시대에 살고 있는 듯
    그리고 이 공연을 관람하고 있는 듯합니다.
    공연한번 봐야겠네요.

  2. 얼마전에 수운 최제우의 용담유사를 읽었습니다. 단지 서학의 반대개념으로서이 동학이 아니라 모든 사상을 포용하는 의미의 동학을 읽었습니다. 그 사상을 계승했을 녹두장군 전봉준과 그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서찰을 전하는 13세 어린아이의 여정을 그린 극으로 이해를 했습니다. 그 여정을 통해 느껴지는 보국안민의 마음을 느꼈습니다. 어린 소년이 불렀을 노래속에서도 희망을 품고 사는 백성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을 듯 합니다. 직접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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