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주기 혁명가 전봉준과 안중근·윤봉길 그리고 체 게바라
[아시아엔=류재국 문화비평가, 칼럼니스트] 2022년 4월 24일 오전 11시. 동학농민혁명을 이끈 녹두장군 전봉준의 순국 127주기가 종로1가 네거리 장군 동상 앞에서 열렸다.
추모식은 사단법인 전봉준에서 주관하여 1시간 동안 엄숙하게 거행되었다. 초대 이사장으로 추대된 김두관 이사장은 “민족에 대한 애절함과 왜적으로 국권이 침탈당하는 백성의 한을 온몸으로 안고 순국하셨다”며 장군의 숭고한 애민정신과 세상을 보는 넓은 세계관을 포용한 동학농민혁명 사상을 미래세대들에게 전해줄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의리 지키는 혁명의 조건
혁명가 전봉준! 그는 정의를 행동으로 실천한 사람이다. 전봉준이 이끈 동학농민군의 주창 사상은 Δ보국안민 Δ제폭구민 Δ척양척왜로, 깃발을 들고 저항한 당위성은 ‘의리(義理)’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고자 했던 의리는 조선시대 보수 양반 지식인층의 전통적 성리학의 덕목에 기반을 둔 ‘의(義’)와는 개념이 달랐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理)가 첨가된 것이다. 덧붙여 우리는 목숨을 바쳐 의리를 지키는 사람을 혁명가로 부른다.
혁명의 조건은 종래의 잘못된 관습과 제도를 비합법적 방법으로 바로잡는 것이다. 즉 나쁜 상황이 임계점을 넘었을 때 피처럼 끓어오르는 게 혁명이다. 동학농민군이 내세운 혁명 공약은 의리를 지키는 것이다. 나라의 근본인 백성이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 나라와 백성을 위태롭게 하는 자들을 척결하여 공동선을 실천에 옮기는 것, 그래서 나라를 보필하고 인민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더불어 의리는 인민이 주체가 된 평등사회를 지향하는 도리이자, 부패한 세력과 외세에 대한 민중들의 보편적인 저항이데올로기 문제를 실천적으로 제기한 것이다.
추모식 중간에 전봉준 장군의 운명(殞命) 유시가 낭독되었다. “때를 만나서는 천지가 모두 힘을 합치더니, 운이 다하니 영웅도 어쩔 수 없구나. 백성을 사랑하고 의를 세움에 나 또한 잘못이 없건마는, 나라 사랑 붉은 마음을 그 누가 알리” 이 시는 장군의 백성 사랑과 나라 사랑이 애절하게 담긴 절명시다. 여기서도 의를 세우고, 이를 행하기 위한 도리(理)를 실천하고자 행동으로 나아간 장군의 비장한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자유와 평등이라는 시대의 열망을 대변한다. 이 책 첫 문장은 “사람은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다. 그리고 도처에 사슬이 묶여 있다”로 시작된다. 그는 일부만 잘 사는 나라가 아닌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를 꿈꾸었다. 나아가 권력은 폭력으로 변하기 전에 멈추어야 하며, 합법적이고 정당한 것이 아니면 절대로 행사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루소의 주장이다. 이 말은 폭력을 물리치고 어려움에 처한 백성을 구한다는 동학의 제폭구민과 그 뜻을 같이하고 있다.
로크가 말하기를,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 신으로부터 주어진 정당함에 따라 공평함과 동시에 권리를 갖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의 재산과 자유”라고 했다. 로크는 이를 지키기 위한 공적인 기관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사회계약설’을 주장하였다. 즉 국가는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기관이 아니며, 입법부가 정한 법에 의해 행정부에서 통치되는 기관이라는 것이다. 로크의 정치철학은 지도자들이 국정을 보살피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는 동학의 보국안민과 뜻을 같이하고 있다.
정의와 실천 그리고 위국헌신
이날 추모식이 끝나고 오후 1시부터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전봉준, 비전과 과제’라는 학술 발제와 참석자 토론이 있었다. 전봉준 연구소의 김양식 소장은 화두를 ‘정의와 실천’으로 시작했다. 필자는 정의와 실천을 듣는 순간, 행동하는 의리를 생각했고, 떠오르는 인물들이 있었다. 안중근, 윤봉길 그리고 체 게바라. 이들은 의리를 행동으로 실천한 혁명가들이다.
안중근은 자신이 죽을 걸 알면서도 일본 헌병들 앞에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는 군인의 본분을 “나라를 위해 몸 바치는 것(爲國獻身)”이라 하여 조국의 분노를 침묵으로 일관하지 않고 몸소 실천한 혁명가이다. 윤봉길은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개인의 삶의 행복을 죽음으로라도 지키려 했다. 그는 자신의 주체적 삶을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넘어 세계시민연대까지 추구하려고 했다.
체 게바라는 게릴라 활동 중에도 인간과 정의에 대한 사랑의 끈을 놓지 않고 조직의 밀고와 배신 속에서도 쿠바혁명의 소용돌이에 몸을 던졌다. 1967년 10월 7일 손발이 묶인 채 숨을 거둘 때까지 “신을 믿느냐?”는 심문에 “인간을 믿고 사랑할 뿐”이라는 말을 남긴다. 그는 “단 한 사람이라도 불행한 사람이 있다면 그 누구도 편안하게 잠 잘 권리가 없다”고 외친 쿠바혁명의 아버지 호세 마르티의 혁명정신을 의리로 이어받았다.
정의를 실천하는 의리란 무엇인가? 공리주의자들의 시각으로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며, 자유주의자들의 시각으로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위에서 거론한 혁명가들의 입장은 공리주의와 자유주의자들과 조금 다르다. 혁명가들은 인간의 존엄성이나 생명 가치를 우선해야 의리가 실현된다고 보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꼭 지켜야 하는 가치를 침묵이 아닌 정의와 실천으로 나아갔다. 일반적으로 정의는 침묵한 사람들의 몫으로 돌려졌고, 분노하는 마음을 실천한 사람들은 고통과 죽음만이 그들의 몫이었다. 이런 점에서 전봉준, 안중근, 윤봉길, 체 게바라는 의리의 혁명가로 단정할 수 있다.
전봉준 장군이 죽음을 무릅쓰고 주창한 의리는 인간 존엄, 위국헌신, 인간 사랑이다. 장군이 보았을 때 옳지 못한 일을 보고 침묵하는 것보다 더 비겁한 일은 없는 것이다. 계몽주의 철학자 칸트는 ‘도덕법칙’을 통해 선과 악을 구분하였다. 칸트의 도덕법칙에서 말하는 선과 악의 구분은 해야만 하는 일을 내가 손해를 입을지라도 행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을 선(善)이라 하였고, 자신의 이익에 따라 해야만 하는 일을 알고 있음에도 하지 않거나 자기에게 이익이 되도록 행동하는 경우를 악(惡)이라 했다. 전봉준 장군의 인본주의 사상과 칸트의 도덕법칙이 일치된다.
필자는 추모식 도중에 전봉준 장군의 동상을 보면서 잠시 생각이 깊어진다. 재판장으로 향하는 장군의 형형한 눈빛에서 삶을 체념한 비참함보다는 남아 있는 백성을 걱정하는 의리가 느껴질 뿐이다. 압송되는 과정에서도 “내 죄는 인간 평등 실천에 관계되니 죽게 되면 죽을 뿐이다. 나는 육신이 죽을 뿐 정신은 죽지 않는다”는 기개가 느껴진다. 한 나라의 진정한 혁명가이자 지도자의 모습이다.
자유, 민권, 평등, 자주를 표방한 동학 지도자의 의리는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오늘날 한국사회 지도층에서 만연하는 편법증여, 탈세의혹, 위장전입, 부정입학, 자녀 군복무 특혜 등을 보고 장군이 살아있다면 뭐라고 했을까? “내가 저들을 지키자고 목숨 걸고 혁명했던가?”
이 시대 모든 지도자들도 이러한 의리를 가졌길 기대합니다. 하지만 이때까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 의리를 주도했던 건 민중이었지 않나 생각됩니다. 보국안민의 수운선생의 동학의 정신이 떠오르는 하루네요. 언제나 들려주시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공평함과 평등함을 위한 전봉준의 저항의이데올로기 평등앞에서 주저하지않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전봉준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글인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이 나라는 민중의 아픔을 몸소 실천하고
계몽하신 위대한 혁명가들이 많으십니다.
전봉준장군님 민족사랑을 널리 알리는
계기되길 기원드립니다.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
과거는 늘 현재에 많은 메세지를 던져주곤 하지요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