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KBS 수목드라마 ‘왜 그래 풍상씨’···‘막장’ 유혹 벗고 훈훈한 가족애로 시청률 ‘도전’
[아시아엔=류재국 세계신화연구소 선임연구원, 문화비평가] TV채널이 늘어나면서 대중문화 속 감성이나 정념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 채널이 양적으로 증가했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대중의 신경계를 자극하는 막장드라마가 압도적이다. 막장(working face)은 일의 마지막 단계나 상황을 지칭하는 끝장의 비표준어다. 막장드라마의 규범 표기는 ‘끝장드라마’를 말한다. 여기에 끝장드라마의 시청률에 도전장을 내민 휴먼드라마가 있다.
1월 9일부터 40부작으로 방영된 KBS 2TV 수목드라마 <왜 그래 풍상씨>(연출 진형욱, 극본 문영남)는 평생 바보로 살아온 중년남자 이풍상의 이야기다. 한번도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이 없는 풍상은 동생들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의 등골을 빼먹는 네명의 동생들은 사회에 적응하지도, 화합하지도 못하는 현실이 풍상에게는 벅차기만 하다. 풍상은 간암 선고를 받고 죽음을 기다린다.
막장의 구속력 던져버리는 휴먼드라마 실천
프랑스 철학자 베르그송은 드라마에 대한 견해를 밝힌다. 일반적으로 드라마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쾌락이다. 드라마는 사회와 이성이 우리를 위해 만들어준 평온하고 평범한 생활 아래서 다행히 폭발은 하지 않으나 그 내적 긴장을 느끼게 하는 무언가를 뒤흔들어 놓는다. 때로 드라마는 일직선으로 이 목표에 돌진하며, 자연을 대신해 사회에 복수를 해준다. 무엇이건 날려 보내는 정념(情念)을 속에서 표면으로 불러내는 것이다.
드라마의 근대적 개념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국내 방송사의 막장드라마 시청률 전쟁은 극에 달한다. 그 소재는 △출생의 비밀 △억지스러운 상황설정 △얽히고설킨 인물관계 △불륜 등의 자극적인 소재로 구성된다. 제작진은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궤변으로 보이는 교묘함으로 비정한 인간의 모순을 과장되게 조작하여 현실성 없는 요소들을 곳곳에 배치한다. 마치 우리 삶의 내부에 숨겨져 있는 비정상적인 것들을 마치 정상적인 것으로 둔갑시켜가면서 말이다.
필자는 <왜 그래 풍상씨> 40부작을 통해 ‘타자화된 가족들’의 자아가 무너지는 것을 발견한다. 가족이라는 집단 속에서 이기적인 사회집단과 마주하며 ‘나’ 또한 이질적인 ‘타자’로 변해가는 것이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5남매의 장남인 풍상(유준상)이 18세 나이로 동생 넷을 책임지는 가장이 되면서 타자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즉 비정한 현실 앞에 무너져 내리는 인물들의 비루한 삶이 타자와의 대립관계 속에서 ‘자아’는 거추장스런 것이다.
<왜 그래 풍상씨>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제시한 드라마의 6요소 중 인물의 성격창조가 뛰어나며, 대사 속의 명언이 뛰어나다. 풍상은 도박을 통한 한방 인생을 꿈꾸는 동생 진상에게 세상에 복수하지 말라고 명언을 남긴다. “네 손에 피 묻히지 말고 기다려라. 강가에 앉아 기다리면 시체가 떠내려 온다.” 이 장면에서 풍상의 인간 됨됨이와 동생을 교육시키는 가장의 모습에서 휴먼드라마의 미학적 가치가 엿보인다.
풍상은 간암에 걸려 죽음의 위기에 처해진다. 간을 주지 않으려고 도망치는 동생들과 아내가 벌이는 사투는 눈물겨운 인간애의 처절함을 전해준다. 지나간 오해를 풀고 간 이식수술을 자원한 쌍둥이 여동생 중 화상(이시영)은 혼자서 오빠의 간 이식을 해도 되지만, 쌍둥이 자매로써 혈육의 끈끈함으로 함께 수술을 자원한 정상(전혜빈)의 배려에 빗나간 열등의식과 상대적 박탈감을 신화적 사랑으로 승화시킨다. 정상의 행동에서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의 용기를, 화상의 행동에서 에우리피데스의 이피게네이아의 숭고함을 연상시킨다.
아내 간분실(신동미)은 남편의 치료비를 위하여 친정아버지 간보구(박인환)의 집문서를 몰래 훔쳐 대출했다가 들킨다. 친정아버지도 처음에도 진노하지만 간암으로 투병하면서도 가족을 챙기는 사위의 인간적 양심에 동화된다. 동네에서 함께 자라온 이웃의 전칠복(최대철)과 그의 어머니 전달자(이상숙)는 맛깔 나는 충청도 사투리로 눈치 없이 입바른 소리를 하며 약간은 과장되지만, 인간성이 메말라가는 현실에 온정과 우정이라는 것에 기댈 수 있는 희망을 코믹하게 안겨준다. 그러나 5남매를 버린 노양심(이보희)의 언행은 ‘인간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표상시키는 인물로서 시청자들을 흥분하게 만든다.
진정한 휴먼드라마는 과연?
휴먼드라마의 모티브는 대개 주인공의 시련과 고난을 대전제로 하여 이를 극복으로 매듭짓는 극형식을 취한다. 그 결말은 주인공의 죽음이나 피해를 통해 허구적이지만 참된 세상을 창조하고자 하는 탐색과 화합으로 끝난다. 더욱이 그 탐색이 도전적이어서 힘이 들수록 휴먼드라마의 미학적 의미는 더욱 크게 다가온다.
<왜 그래 풍상씨>는 비극과 희극을 넘나드는 연극적 표현법을 발견한다. 드라마로 분류하면 희극과 비극의 중간인 희비극에 해당될 것이다. 희비극은 기원전 2세기 로마의 희극작가 플라우투스가 <암피트리온>에서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이후 르네상스 시대에는 희비극이 주로 희극적인 극에 비극적 요소를 가미한 연극 양식이 되었다. 특히 신고전주의에 맞서 영국에서 번성하였는데, 셰익스피어의 시대부터 19세기에 걸친 드라마는 해피엔딩과 휴머니즘을 수반한 모든 연극을 의미한다.
<왜 그래 풍상씨>의 매혹적인 요소는 주요 배우들의 리얼한 연기다. 특히 풍상의 역을 맡은 유준상의 연기는 정말 아픈 사람 같다. 극 속에서의 풍상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시련과 고통을 극복하며 가족들을 구해내는 헤라클레스다. 그리스신화에서의 헤라클레스는 ‘헤라(Hara)’와 ‘클레오스(Kleos)’가 합성된 이름으로 “헤라 여신을 통해서 명성을 얻는 자”로 풀이된다. 풍상은 계모 헤라여신에게 미움 받아 여신이 가하는 시련과 고통을 극복하면서 명성을 획득하는 주체적 영웅이다.
이 드라마는 시그널음악이 감동을 더해준다. 곡명은 조용필의 ‘꿈’이다. 험난한 무명가수 시절을 회상하며, 그가 해외공연 가는 비행기 안에서 쓴 곡이다. ‘꿈’은 드라마 속에서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아주 느리게를 반복하면서 인물들의 복잡한 심정을 대변해준다. ‘꿈’은 태생적으로 화려하고 스펙터클을 지향하는 음악이지만, 극 속의 장면 전환과 인물들의 갈등과 번뇌를 확대하면서 플롯구조의 개연성을 풍부하게 덧붙이는데 큰 몫을 한다.
필자는 애써 시청률을 알아보지 않았다. <왜 그래 풍상씨>의 지향점은 시청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형제간의 갈등과 시련 모티브에 근간을 두고 있다. 풍상 역의 유준상은 촬영하는 내내 울었다고 한다. 그는 동생들 때문에 울고, 부모 때문에 억울해서 울고, 처자식 때문에 걱정되어서 운다. 웃음과 눈물이 묘하게 섞인 이 드라마는 막장드라마의 그 흔한 이중구조나 복수플롯도 안 보인다. 열린 구조와 단일한 갈등으로 전개되는 것 같지만 배역 속에 철저하게 드러난 인간의 삶에 대한 끈질긴 생명력은 봄과 함께 그것을 넘어서고 있다.
<왜 그래 풍상씨>에는 그 흔한 막장 플롯이 보이지 않는다. 인물들이 쏟아내는 명대사는 삶의 리듬의 불안에서 나타나는 현상학적 조건이 된다. 풍상과 동생들이 가족을 안식처로 생각하는 것은 혈연에서 맺어지는 관계의 특수성 때문일 것이다. 이 관계는 경제적 공동체이자 윤리적 관계이며, 정신적 애착관계 등의 특성이 부여된다. 마지막 회에 아내에게 전하는 풍상의 대사에서 그 관계성을 빛나는 여정으로 귀환시킨다. “동생들이 짐인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나의 힘 이었어!”, “당신 덕분에 여기까지 왔어, 고마워 여보!” 하며 끝을 맺는다.
<왜 그래 풍상씨>는 TV드라마 소재의 다양한 대체 세계를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일반적 드라마가 경험적 현실에 대한 단순한 모사에 한정하는 인식체계를 넘어서서 휴먼드라마의 일상의 미학적 성찰의 가능성을 만들어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