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일동 명창의 렌즈 판소리-날과 씨①] 새해 날줄과 씨줄의 근간 튼실하길
연초가 되면 언제나 생각나는게 날과 씨다. 새로운 날에다 새로운 씨를 어떻게 뿌려 결실을 맺어야 하는가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산에서 공부할 때 가장 어려웠던 것이 개념 정리였다. 개념들이 가지고 있는 정의와 물리적운동 이치가 어떻게 맞아 떨어지는가가 깨쳐가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화두였다.
그중에 하나가 날과 씨였다. 날과 씨의 개념을 파악하지 못하면 판소리 호흡과 발성과 장단의 원리를 깨칠 수가 없었다. 옛 선지식들은 날과 씨에 대해서 여기 저기서 많이 언급해 놓았지만, 그 조리를 분명하게 이야기 해놓은 것을 미처 보지 못했다. 그래서 스스로 깨치기가 매우 어려웠다. 날과 씨의 개념은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이는 천문운동과 인문질서의 대강(大綱)이고 핵심 벼리가 되는 개념이다. 날과 씨에 대해서 알려면 날도(-度)와 씨도(-度)에 대해서 깨쳐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국어사전에서는 날도(-度)의 정의를 “지구 위의 위치를 나타내는 좌표축 중에서 세로로 된 것. 한 지점의 경도는 그 지점을 지나는 자오선과 런던의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본초 자오선이 이루는 각도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또 씨도(-度)는 “지구 위의 위치를 나타내는 좌표축 중에서 가로로 된 것. 적도를 중심으로 하여 남북으로 평행하게 그은 선이다. 적도를 0도로 하여 남북으로 각 90도로 나누는데 북쪽의 것을 북위, 남쪽의 것을 남위라고 한다. 각도를 나타내는 단위는 도, 분, 초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날도는 남북 세로 수직으로 이어진 경도(經度)를 말하고, 씨도는 동서 좌우 가로 수평으로 이어진 위도(緯度)를 말한다. 날과 씨를 이렇게 사전에서 말하는 기본적인 개념으로만 정의해버리면 본래의 깊은 이치를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옛사람들은 날을 지구 내핵에서 발원하여 남극으로 나와서 북극으로 들어가는 자기장의 에너지선으로 보았고, 씨는 태양과 달이 지구의 동서좌우로 오고가면서 비추는 빛에너지선으로 보았다. 그래서 해와 달의 씨를 옛사람들은 천지일월음양이라고 규정했다.
날을 세우고 살아가는 지구의 모든 생명체들은 하늘의 두 씨인 해와 달의 빛을 머금고 생성작용을 한다고 보았다. 햇빛에너지는 성질이 굳세고(剛) 달빛에너지는 부드럽다(柔)고 했다. 이 두 음양강유의 에너지가 지구 땅에서 밤낮으로 교접하여 만물이 생성작용을 한다고 했던 것이다.
“날이 밝아졌다(明)”고 말하는 것은 하늘에 일월(日月)의 작용으로 해가 승(勝)하면 날이 밝아(明)졌다고 했고, 밤이 되어 달이 승(勝)하면 “날이 어두워졌다(暗)”라고 말한 것이다. 이렇게 지구의 날은 하늘의 두 씨인 해와 달의 작용으로 주야명암이 생겨난다고 보았다.
이러한 우주작용을 본떠 사람도 생겨나는 것이 하늘에 일월음양과 같은 아버지씨(日, 陽, +, 剛)와 엄마씨(月, 陰, -, 柔)가 지구의 땅(土)과 같은 역할을 하는 자궁(子宮)에서 만나 새로운 열매(씨)가 생겨난다고 보았다. 자궁은 엄마가 지니고 있지만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돼 새로운 씨를 길러내는 날이고, 엄마의 난자와 아버지의 정자는 새론 씨를 생성하는 종자인 씨와 같은 것이다. 날은 만물의 음양씨가 만나 생성작용을 하는 밭인 셈이다.
날은 길고 씨는 짧다. 영어에서도 남북 경도선을 longitude라 하고, 동서 좌우 위도선을 latitude라고 한다. 길이와 넓이 즉 상하수직 길이와 좌우 넓이의 뜻을 지닌 long과 lati(latus)가 어두에 들어간 것을 보면 무언가 연결성이 있지않나 싶다. 베틀에서 새로운 베를 짜내려면 길게 날을 세운 날줄에다 씨줄이 좌우동서로 짧게 교차하면서 베가 짜여진다.
지구의 날씨도 여기서 나온 말이라고 본다. 남북으로 운동하는 지구 자기장의 에너지인 날줄에다 좌우로 비치는 하늘의 두 씨인 해와 달의 빛이 교차하면서 춥고 덥고 눈오고 비오는 그 날 그 날의 날씨가 형성되는 것이다. 또 짜우뚱거리며 돌아가는 팽이처럼 지구도 날이 23.5도 기울어져 태양과 달빛의 두 씨를 받아들이는 것에 따라 짜우뚱거리는 날도에서 사계절의 변화가 생겨난 것이다.
이 모두가 날과 씨의 작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