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과기대 창립총장 김진경의 꿈이 없었다면…

김진경 평양과기대 설립총장. 그가 꿈을 품지 않았다면 2000년대 중반 조선인민민주의공화국 평양시 낙랑구역 승리동 평양과학기술대는 신기루에 불과했을 터다

당신은 바람입니다. 어느 곳이든 당신의 숨결이 새겨지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당신이 지나간 곳엔 향기 듬뿍 꽃이 활짝 피어있습니다. 당신은 샘물입니다. 목마른 사람들은 누구든 당신한테 달려갑니다. 당신이 서계신 그 자리엔 시원한 물줄기가 피어오릅니다. 당신은 꿈입니다. 당신은 꿈꾸는 사람이라야 꿈을 실현시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중국 평양식 낙랑구역 평양과학기술대 김진경 설립총장. 그는 나그네다. 아침에 서울에서 만난 그는 점심은 북경에서 들고 잠자리는 평양에다 펼친다. 어제 연길인가 싶은데, 오늘은 미국 내일은 서울이다. 종횡무진.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남·북한과 미국·중국을 무비자로 출입국이 가능한 사나이는 오직 후학 양성과 선교를 위해 하늘을 훨훨 날아다닌 김진경 청년.

그는 꿈을 먹고 사는 청년이다. 그가 꿈을 꾸지 않았다면 1990년대초 허허벌판이던 중국 길림성 연길시 북산가 야트막한 대지에 연변과학기술대학은 상상도 못할 헛꿈이었을 터다. 그가 꿈을 품지 않았다면 2000년대 중반 조선인민민주의공화국 평양시 낙랑구역 승리동 평양과학기술대는 신기루에 불과했을 터다.

김진경 평양과기대 설립총장이 꿈을 간직하지 않았다면 김정일 위원장은 그를 평양과학기술대 설립총장으로 인사권·운영권은 물론, 설립인가조차 안 내주었을 게 자명하다.

그는 꿈을 파는 청년이다. 그의 꿈은 꿈으로만 그치는 적이 결코 없다. 김진경의 꿈은 꿈인 듯하는 사이, 어느 새 현실이 된다. 2001년 북한 당국의 허가를 받아 이듬해 6월 첫 삽을 뜬 지 5년여만에 마무리된 평양과학기술대학 건설공사. 누가 평양 한복판에 ‘북한 엘리트 교육의 산실’을 만들 생각이나 했겠는가?

김진경은 연변과 평양을 수십 차례도 더 드나들었다. 꿈이 그걸 가능케 했다. 문화가 달라 갈등도 없지 않았지만 민족 장래가 거기에 달려있다는 생각이 그의 꿈을 북돋웠다고 했다. 평양시 낙랑구역 승리동 33만평 일대, 건평 2만4천평 규모로 들어서는 평양과기대는 대학원 중심대학이다. 정보통신·농업·식품·MBA·보건의료 등 4개 분야에서 한 학년 300명이 배출되는 꿈, 그 꿈이 김진경으로 하여금 이 일을 시작하게 했다. 1990년대 후반 평양의 차디찬 감옥에 갇혀서도 꿈을 버리지 않았기에 10년 뒤 첫삽을 뜨는 상상할 수 없는 현실이 실현된다.

그가 꿈을 간직하지 않았다면 김정일 위원장은 그를 평양과학기술대 설립총장으로 인사권·운영권은 물론, 설립인가조차 안 내주었을 게 자명하다.

김진경 평양과기대 설립총장이  꿈을 꾸지 않았다면 북한의 엘리트 청년들이 포항공대·카이스트·하바드 등 한국을 비롯한 프랑스 영국 독일 미국 등 전세계 유수의 수재급 교수들 교육을 받는 것은 애당초 있지 않은 꿈이었으리라

그가 2006년 4월 개교 문턱에서 또 무산된 설립 꿈을 막판 다시 접었다면 평양과학기술대는 ‘조감도’로만 이땅에 남았을 게 분명하다. 만일 그가 꿈을 접었다면 대학원생 600명·학부생 2000명 규모의 평양과기대. 설립 공동위원장을 맡은 맬컴 길리스 미국 라이스대 전 총장, 박찬모 포항공대 총장 등 전세계 석학 수십명의 평양과기대는 단지 꿈에 불과했을 터다. 그가 꿈을 갖지 않았다면 2002년 착공 이후 남한과 중국 미국 호주 등 해외에서 5천여명의 개인과 기업이 십시일반으로 성금을 보내 벽돌 한 장 한장 정성이 채곡채곡 쌓여 마침내 평양과학기술대학을 이땅에 꽃피우는 꿈을 누구도 맛보지 못했을 터다.

그가 꿈을 꾸지 않았다면 북한의 엘리트 청년들이 포항공대·카이스트·하바드 등 한국을 비롯한 프랑스 영국 독일 미국 등 전세계 유수의 수재급 교수들 교육을 받는 것은 애당초 있지 않은 꿈이었으리라. 김진경의 꿈은 오늘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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