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평양과기대 박찬모 명예총장 “대북제재·코로나 풀려 조속히 정상화되길”

평양과학기술대 정문과 캠퍼스. 평양시 승리동 100만㎡ 부지에 연구개발센터 등 17개 동을 갖추고 있다. 평양과기대는 북한식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이다. <사진 박찬모 총장 제공>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포항공대 총장(2003~07년)을 지낸 박찬모 명예교수는 2010년부터 현재까지 평양과학기술대학(평과대, PUST) 명예총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평양과기대는 2009년 남북화해와 평화를 기원하며 평양에 건립돼 2010년 북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아시아엔은 박찬모 평과대 명예총장 인터뷰를 독자들과 공유한다. <편집자>

기자는 먼저 코로나 팬데믹 이후 평양과기대 상황이 궁금했다.

-코로나19가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 같은데.
“그렇다. 작년 가을학기에는 20개국에서 온 교수 43명이 가르쳐야 할 58개 강의를 전부 사전녹화된 비디오나 스카이프 영상 통화로 대체해야 했다. 구체적으로는 전공 47과목, 외국어 4과목, MOOC 3과목, 특강 4과목 등이 불가피하게 비대면으로 해야 했다.”

코로나 발생 이후 북한 방문을 못한 그는 “현재도 대부분 비대면 수업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미 국무부가 미국시민권자의 방북금지령을 내린 2017년까지만 해도 수업이 있는 학기 중엔 주로 평양에 머물고, 방학 기간엔 미국과 한국을 오가고 있다.

-먼저 설립과정을 설명해 달라.
“2001년 5월 북한 교육성과 한국의 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이 협약을 체결하면서, 북한으로부터 1백만 평방미터 규모의 부지를 양도받았다. 2001년 6월 통일부가 이 계획을 승인하면서, 대학이 무사히 지어질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이 반신반의하며 걱정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학교는 건립됐고, 지금 북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평양과기대의 목표와 비전은 무엇인가?’

“평과대는 북한의 유일한 국제사립 대학이다. 상상을 뛰어넘는 글로벌대학으로 거듭나는 게 목표다. 우리 대학의 사명은 글로벌한 비전을 통해 최고의 교육을 이끄는 것이다. 혁신적인 연구와 정직한 품성 함양 또한 우리가 갈 길이다. 학생들은 스스로 깨달아 알고, 해외 인터넷을 사용하면서 변화를 적극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는 평과대가 일류 교육기관으로 거듭나는 한편 학생과 교수진이 북한과 인류사회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도록 교육하고 있다.”

박찬모 평과대 명예총장은 대학 설립부터 헌신한 사람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그는 남북한과 미국을 오가며 학교와 학생들에게 보탬될 일이라면 적극 나서 관철시켜왔다. 그는 지난 10월 14일 미국 메릴랜드 교민과 미국인들을 상대로 특강을 통해 대북제재 완화와 평양과기대 후원 등을 호소했다. 이미지는 박 명예총장이 세미나 등에서 사용하는 PPT 자료 가운데 하나다. 북한의 묘향산을 찾은 박찬모 명예총장(아래 오른쪽 사진 가운데)이 보인다. 9년전 봄 찍은 사진으로 나타난다. 


-평양과기대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

“2001년 2월 중국 연길에서 남한의 한국어정보학회와 북한 조선사회과학원, 중국 조선어정보학회가 공동으로 한국어정보처리학술회의(International Conference of Computer Processing on Korean Language)를 열었다. 1994년부터 개최돼 왔는데 당시 김진경 연변과기대 설립자가 나에게 자신이 작성한 평양과기대 설립 제안을 수정해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1990년부터 북한에서 IT개발 관련 연구를 꾸준히 해왔다. 특히 연길 학술회의 바로 직전인 2000년 9월 북한 김책공대의 특강 요청을 받아 처음으로 평양에 갔다. 그때 평양정보센터에서도 특강을 하고 포항공대와 공동연구를 진행하기로 했다. 김진경 박사가 그걸 알고 내게 그 역할을 맡긴 것이다. 그 인연으로 2005년 12월 미국 라이스대 말콤 길리스 전 총장과 함께 평양과기대 설립공동위원장이 되었다. 나는 평과대에서 주로 IT분야 교육과정을 개발하는 역할을 맡았다.”

-평양과기대는 어떻게 북한 당국으로부터 허가를 받을 수 있었나? 
“평양과기대 설립은 애초에 북한 당국이 먼저 제시한 아이디어였기 때문에, 허가받는 과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과 다른 점이 많을 것이다.”

-교수진 가운데는 미국인과 기독교 신자들이 많은 것으로 아는데, 이 점 때문에 당국과 학교 사이에서 운영에 차질이 혹시 없진 않았나?
“북한 당국은 자국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교수진에게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또 무척 신뢰하고 있다. 학생들도 잦은 정전과 물 부족과 같은 매우 어려운 환경에서도 그들을 가르치고 사랑을 아끼지 않는 교수들에게 매우 감사하고 있다. 교수들이 기독교인인 점이 사랑을 실천하는 바탕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외부에선 그런 긍정적인 측면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면을 좀더 소개해달라.
“현재 북한에서 평양과기대는 말 그대로 일류대학에 속한다. 많은 학생들이 공부하고 싶은 대학이란 얘기다. 그건 초기부터 이 대학의 활동을 보면 알 수 있다. 설립 1년 후인 2011년 10월 평과대는 첫 PUST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우리는 2003년 노벨상수상자인 존스홉킨스 의대 피터 아그레 교수에게 기조연설을 맡겼다. 2016년 4월 김일성종합대학 설립 70주년 행사에 노벨상 과학부문 수상자 3명 즉 영국의 리처드 로버츠 박사, 노르웨이의 핀 키들랜드 교수, 이스라엘의 아론 치에하노베르 박사 등이 북한을 방문했다. 이들은 김일성종합대학은 물론 김책공업종합대학과 우리 평과대에서만 특별강연을 했다.”

평과대생들이 학교를 방문한 노벨상 수상자인 피터 아그레의 강의를 듣고 있다. <사진 박찬모 총장 제공>


-평과대 학생들의 수업 방식이 궁금하다.

“수업은 모두 영어로 진행된다. 평과대에 합격한 학부생들은 입학 초기 기술영어를 1년 동안 배워야 한다. 평과대 출신 외에 다른 대학 출신 대학원생도 6개월간 영어를 배워야 한다. 사회학 관련 과목을 제외하고, 모든 강의는 외국인 교수들이 담당하고 있다.”

-학부는 어떻게 구성돼 있나?
“문리대(Division of Arts and Sciences)와 의대(Division of Medical Sciences) 등 2개 학부로 이루어져 있다. 문리대에는 △공학 △경영학 △농업 △외국어(영어, 중국어, 독일어) 학과가 있다. 의대에는 현재 치의학과와 의학과 등 2개 학과만 개설돼 있다. 공중보건학, 약학, 간호학 등 3개 학과는 추후 개설될 예정이다. 유럽 및 미국 대학에서 가르치는 것과 비슷한 강좌들도 있다. 예를 들어 시장경제, 컴퓨터그래픽, 생물정보 등의 전공과목이 있다.”

-몇년 전 사이버 테러가 발생했을 때 평과대가 의심받기도 했는데.
“평과대에선 군사무기나 사이버공격과 관련된 강의를 절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학생은 몇명 정도 되나?
“매년 학부생 약 120명과 대학원생 40명이 들어온다. 현재 평양과기대 캠퍼스에는 총 500여명의 학부생과 대학원생 100여명이 재학 중이다.”

-평과대 학생들은 북한 엘리트층 출신이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내가 논문지도를 맡고 있는 학생 몇몇은 부모가 발전소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도 있고 고등학교 수학선생님도 있다. 우리 대학은 가족환경보다는 학력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대학 졸업률은 어느 정도인가?
“졸업률은 100% 가까이로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몇몇 학생들은 건강 문제로 졸업하지 못한 사실도 있다. 나는 나중에야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졸업생들은 어떤 진로를 선택하는지, 그리고 졸업생들은 주로 무슨 직업을 갖나?
“졸업생들의 직업 및 진로를 보여주는 정식 통계자료는 아직 없다. 하지만 학사학위를 받은 졸업생의 35~40%는 대학원 석사과정에 진학하거나 교육 및 연구기관에 취업한다. 또 북한이나 중국, 말레이시아 등 해외기업에서 일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 학부 졸업생 40여명이 해외에서 유학중이거나 유학을 마쳤다. 영국 웨스트민스터나 캠브리지대, 스웨덴 웁살라대, 브라질 상파울루대, 그리고 중국의 유수 대학들로 떠났다. 특히 컴퓨터과학과 대학원 졸업생 2명은 스위스의 취리히응용과학대학(Zurich University of Applied Sciences)의 클라우드컴퓨팅연구소 인턴십에 참여하기도 했다. 일부 석사학위를 받은 학생들은 김일성종합대학이나 평양정보센터 또는 북한 중앙은행 등에 취업했다.”

평과대 해외유학생들. <사진 박찬모 총장 제공>


-대북 제재로 이 대학에 대한 해외 지원도 어려워졌을 것 같다.
“재정지원과 실험기기 등 지원이 거의 불가능해지고 미국인 교수들의 북한 방문이 중단됐다. 더욱이 북한 당국이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국경을 봉쇄하여 어려운 상황이 더욱 심해졌다. 예를 들어 2016년 봄 시작된 의학대학 건물공사가 아직도 끝나지 못하고 있다. 학생과 교수진의 식량용 재정도 예전의 절반으로 줄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치의학과 및 의학과 학생들은 몽골과 중국으로 가서 평과대 외국 교수들 강의를 듣도록 하고 있다.”

-평양과기대는 원래 목표를 지금까지도 지켜내고 있나, 아니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바뀌었다고 보나?
“의학대학이 평양과기대에 신설되면서 원래 목표를 좀 더 확장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고 북한이 국경을 열지 못하면, 더 많은 문제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백신 접종으로 상황이 호전되길 기다리고 있다.”

연변과기대와 평양과기대는 설립 이전부터 지원과 교류를 통해 상호발전을 이뤄가고 있다. 남북한과 중국을 연결하는 허브로 이들 역할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두 대학 교직원 및 학생들 기념사진(아래 왼쪽)과 토론회 장면(아래 오른쪽) <사진 박찬모 총장 제공>


-평양과기대와 연변과기대는 어떤 관계인가.

“평양과기대와 연변과기대는 아주 돈독한 관계다. 나의 오랜 친구인 김진경 박사는 두 대학의 초대 총장을 지냈다. 연변과기대 졸업생들이 석사학위를 받고 중국어 교사나 직원으로 일하기 위해 본교로 온다.”

-세계의 다른 대학들과 교환학생이나 학문연계 프로그램을 진행하나?
“물론이다. 평양과기대는 유럽연합의 에라스무스프로그램(Erasmus program) 회원으로 등록되어 있어서, 대학원생 다수가 스웨덴 웁살라대학에 가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한다. 또 2년에 한번씩 세계 각국 과학자와 공학자들이 모이는 국제회의를 주최해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고 있다. 한국에선 서울대, 카이스트, 포스텍 등 20여곳이 평양과기대와 자매관계를 맺었다.”

롤라스케이트를 즐기던 북한 아이들이 평과대 외국 교수와 카메라 앞에 섰다. 2013년 3월 22일 오후 3시24분 찍은 것으로 보인다. <사진 박찬모 총장 제공>


-현재 평양과기대가 직면해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

“코로나19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점과, 미국 국무부가 모든 미국시민의 북한 입국을 금지시킨 점이다. 이와 함께 국제적인 연구에 매진하는 교수진 채용이 매우 힘든 것도 있다.”

-향후 5~10년 동안 평양과기대의 행보는 어떨 거라고 보시나.
“우리는 공중보건학, 약학, 간호학과 건물을 준공할 것이며, 대학원 과정에서 박사학위 학생들을 많이 양성할 계획이다. 특히 선진 연구와 견문을 넓히기 위해 더 많은 학생을 해외로 보내 ‘북한의 세계화’에도 기여하게 될 거다.”

-평양과기대 설립 과정에서 한국 기독교 역할이 컸다고 들었다.
“설립 당시부터 곽선희 소망교회 목사님이 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기독교 신자들께서 평양과기대 캠퍼스를 짓는 데 필요한 4천만달러 상당의 기부금을 보내줬다. 평양과기대 교수진들은 봉급을 받지 않는 자원봉사자들이며, 대부분 기독교 신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학생들에게 전문적인 과목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윤리와 도덕, 신뢰와 감사, 인내심, 사랑, 헌신, 봉사정신 등을 심어준다.”

-2011년 재미교포 소설가 수키 김이 평양과기대에서 한 학기 학생들을 가르친 후 2014년 <평양의 영어 선생님: 북한 고위층 아들들과 보낸 아주 특별한 북한 체류기>를 출판했다. 
“이 책에 대해 북한 당국은 매우 불쾌하다는 입장을 밝혔고, 내용에 사실과 다른 게 많아 김진경 총장이 큰 어려움을 겪었다. 저자 수키 김은 ‘명색이 과기대인데도 정작 과학기술 관련 강의나 교수들은 전혀 없었다’고 서술했는데, 이건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그녀가 평양과기대에 방문했을 당시, 이미 본교에는 과학자와 공학자들이 많이 근무하고 있었다. 당시 학생들은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듣기 위한 ‘기술영어’ 강의만 받고 있었다.”

-그 책 출판으로 인해 또 다른 변화나 영향은 없었나?
“우리는 평과대 신임 교수와 관련한 약정서에 그녀의 서명을 받지 못해 이런 사태가 일어났다고 보고, 그 사건 이후로 새로 부임하는 모든 교직원으로부터 서명을 받도록 하고 있다.”

기자는 박찬모 명예총장을 2006년 처음 만난 이후 그가 한국에 머물 때마다 만나왔다. 기자는 그로부터 들은 평과대 이야기를 메모해 두었다가 추가로 질문하곤 했는데, 이번 인터뷰 역시 이런 과정을 거쳐 나온 것임을 밝혀둔다. 기자는 23일 오전 10시(한국시간) 인터뷰 초고를 그에게 보내 잘못된 부분과 최근 상황을 아시는대로 업데이트 시켜달라고 했다. 그리고 14시간 뒤인 이날 자정께 수정 및 보완된 원고가 도착했다. 단어 및 숫자 40여곳이 고쳐지고 문맥상 불필요한 3곳은 삭제됐다. 

평양과학기술대 박찬모 명예총장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