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지선 전망대 D-66] 참여민주주의로 가는 지름길 지방자치
지방자치는 “지역의 문제를, 그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뽑은 대표들이, 그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낸 세금으로, 다른 지역이나 중앙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그 지역에 사는 주민들의 뜻에 따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민이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공동체적인 삶을 스스로 계획하고 꾸려나가는 것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합니다.
지방자치가 참여민주주의 정착에 유용하다고 주장한 사람은 프랑스대혁명기의 정치인 알렉시스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입니다. 그는 지방자치가 중앙정부로의 권력집중을 억제할 뿐만 아니라 민주적 자유를 유지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미국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지방분권은 미래의 정치질서”라고 주장했습니다.
더 나아가 영국 정치가 제임스 브라이스(James Bryce)는 지방자치를 “누구도 꺾지 않고 우리 모두가 정성 들여 가꾸어야 할 장미”라고 비유했습니다. 아무리 예쁜 장미꽃이라도 물도 주지 않고 관심을 갖지 않으면 말라 비틀어지고 말 겁니다. 30년간 중단되었다가 부활된 지 다시 30년이 지난 우리의 지방자치는 과연 장미꽃일까요?
지방자치 30년의 평가는 긍정과 부정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긍정적 결과로는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눈치보다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정책의 최우선순위로 삼기 시작했다는 것, 공무원의 친절도 향상 등 행정서비스의 질이 개선되었다는 것, 사회의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고, 주민들의 정치의식 수준이 향상되었다는 점들이 꼽힙니다.
지방자치의 부정적 결과로는 지역이기주의가 더 심해졌고, 다음 선거를 의식한 무분별한 행사와 사업으로 재원을 낭비하는 경향이 커졌고, 재정자립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환경을 파괴하는 개발사업이 늘어났다는 점들이 꼽힙니다. 교육자치도 미비했고, 지방분권에 대해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집단과 세력들 사이의 갈등과 집단적 저항도 지적됩니다.
낮은 투표율도 문제입니다. 월드컵 4강진출로 뜨거웠던 2002년 ‘붉은 6월’에 치러진 제3회 동시지방선거 투표율은 48.9%로 주민의 절반이 주권을 포기한 셈입니다. 물론 다른 나라들도 지방선거는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선거보다 투표율이 낮게 나옵니다. 낮은 투표율의 가장 큰 원인은 주민들이 지방자치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겁니다.
주민이 느끼는 편익이 적은, 다시 말하면 지방자치가 삶의 질을 높이는데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보는 겁니다. 지방선거 때마다 많은 공약이 제시되지만 당선에 도움이 될 가시적 홍보효과가 큰 사업이 중심이고, 어려운 지역주민의 삶을 돌보고 살피는 일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것입니다. 자질 없는 지방정치인들의 부정과 비리도 주민을 실망시켰습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소추를 당했습니다. 노 대통령은 직무정치를 당했고, 정국은 요동을 쳤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의 삶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지방자치의 진가가 드러난 것입니다. 중앙정치는 탄핵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지만 주민들이 직접 뽑은 지방정치인들은 지방행정을 꿋꿋이 끌어나갔기 때문입니다.
단체장이 임명직이었다면 자신의 임면권을 쥐고 있는 인사권자의 정치적 운명에 따라 자신의 처지도 달라질 것이기에 지방행정은 팽개치고 중앙정치만 바라봤을 겁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지방자치는 다시 한 번 빛이 났습니다. 팬데믹 위기에 맞서 지방정부들이 선제적이고 창의적인 노력으로 방역에 기여했던 것입니다.
중앙집권적 국가 중심의 구조가 지역중심으로 바뀌었기에 중앙정부가 흔들려도 지역이 거기에 휩쓸리지 않고 안정되게 행정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지방자치는 주민의 삶의 질 문제를 정치·행정과정에 끌어들이며 요구형 민주주의·수익자 민주주의·정부의존형 민주주의를 참가형 민주주의로 바꾸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