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눈보라 치는 겨울 숲에서’ 박노해
눈보라 치는 겨울 숲에서
나는 울었다
내가 이룬 것들은 눈처럼 흩날리고
내가 이룰 것들은 앞이 보이지 않고
눈보라 치는 겨울 숲에서
벌거벗은 나무처럼 나는 울었다
가릴 것도 기댈 것도 없는
가난한 처음 자리에
내가 가진 하나의 희망은
벌거벗은 힘으로 살아있는 거라고
겨울나무의 뿌리처럼 눈에 띄지 않아도
어둠 속에서 내가 할 일을 해나가는 거라고
눈보라 치는 겨울 숲에서
나는 울었다
벌거벗은 힘 하나로
나는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