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택시강도④] “사선을 함께 넘은 소중한 동지”

이 글을 쓴 홍금표 대표는 죽음의 강을 건넌 느낌 그대로였다고 했다. 사진은 황량한 광야.


“‘불안전 지대’. 멕시코에서 예전엔 웬만하면 금전만 갈취하고 위해는 가하지 않았다. 요새는 총부터 쏘고 본다. 교민 한분은 얼굴에 총을 맞아 광대며 치아, 턱 한쪽이 거의 날아가 여전히 엄청 고생 중이다. 얼마 전엔 또 다른 교민이 우리 회사 인근 도로에서 총격을 당해 허벅지를 관통했다고 한다. 다행히 두 사람 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데 거동은 얼마나 불편할 것인가? 20여년 전 필자가 직접 체험한 택시강도사건을 소개한다. 그나마 요즘 상황에 비하면 천만 다행이었다.” 멕시코에서 특수화물운송회사 판트란스를 경영하는 홍금표 대표의 경험담입니다. 1968년 올림픽, 1970년 월드컵을 개최한 나라의 일로 믿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멕시코 역사의 수레바퀴는 뒷걸음질을 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시아엔>은 홍금표 판트란스 대표의 체험적 현지소식을 전합니다. <편집자> 

욕설이 뒤섞인 명령어였다. A사장은 스페인어를 몰랐지만 눈치껏 알아들었다. 조금이라도 머리를 들어 올리면 여기저기서 주먹이 날아왔다. 양 다리 사이에 머리를 최대한 밀어 넣고 미동도 하지 않아야 했다. A사장은 태어나 그런 경험이 처음이었다. 몇 번 폭행사건에 연루되었어도 별로 맞아본 기억이 없었다.

대부분의 상대가 A사장의 선빵에 맥을 못추었고 그 틈을 타서 아주 아작 내면서 늘 손쉬운 승리를 쟁취하고는 했었다. 물론 폭행 합의금으로 수차에 걸쳐 꽤 많은 돈을 물어 주었지만 승리의 댓가로는 대수롭지 않은 금액이었다. 그에게는 주위에 적수가 없는 듯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쩐 일인지 선빵은커녕 몸이 먼저 얼어 붙어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온 몸에 오한이 엄습해 오면서 사시나무 떨듯 와들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된 나를 길바닥에 던지는 걸 슬쩍 훔쳐 본 A사장은 극심한 공포에 오줌까지 지리고 있었다.

저항하지 않는 A사장을 강도들은 굳이 초주검을 만들 이유가 없었다. 이제 한바탕 광풍이 지나갔으므로 강도들도 한숨을 고르면서 천천히 A사장의 소지품을 뒤지기 시작했다.

멕시코 출장이 끝나고 귀국 예정에 있던 A사장의 수중에는 쓰고 남은 출장비로 700여달러가 있었다. 쉬지 않고 강도질을 해도 그런 금액을 단번에 얻을 행운은 거의 없는데도, 조금 전 나에게서 노다지를 건져올린 강도들에게 700여달러는 한참 불만스런 금액이었다.

그들은 내심 A사장에게서도 나한테 털어간 것과 비슷한 금액을 기대하고 있었다. 엎드려 떨고 있는 A사장의 눈에 별안간 불이 번쩍였다. 거구의 강도는 시원한 깍두기 머리를 한 A사장의 넓적한 뒤통수를 사정없이 갈겨 댔다. 좌우 옆자리의 강도들도 기꺼이 합세하였다.

문득 자신의 차례가 왔다고 생각한 A사장은 영어로 살려 달라고 절규하며 펑펑 울기 시작했다. 혹시 풀려나면 다시는 선빵도 날리지 않고 선하게 살고자 하였다. 불교신자인 A사장은 수도 없이 부처님을 찾고 있었다. 불현듯 택시는 어느 어두운 길모퉁이에 정차했고 강도들은 A사장을 개구리 패대기치듯 밖으로 쫒아 버렸다.

최소한 5000달러는 넘었어야 그리 심히 얻어터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하튼 별다른 상처없이 A사장은 저 세상의 경계에서 다시 이쪽 세상으로 발을 옮겨 놓게 되었다.

A사장은 호텔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짐을 꾸려 허겁지겁 공항으로 떠났다. LA행 비행기 출발시간은 아직 많이도 남아 있었지만 그 전에 떠나는 항공편이 있다면 어떻게든 잡아타고 멕시코를 떠나고자 하였다. A사장은 반쯤 얼이 나가 있었다.

나는 여전히 길가에 버려져 있었다. 간간이 지나는 차량들은 위태위태하게 내 바로 옆을 스치듯 지나가고 있었다. 빽빽한 어둠에 운전자들의 시야가 제한돼 있었고 나 또한 주행선을 침범해 널부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택시는 서행하며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고는 바로 갈 길을 재촉하였다.

피로 도배되어 길바닥에 버려진 나는, 그들 눈에는 이미 시체였고 잘못하면 그들도 위험에 빠지리라는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제3자로부터 구조의 손길을 기대하기는 아주 어려워 보였다. 나는 살아 있기도 하고, 죽어 있기도 하였다.

단순히 조금 남아있는 미세한 기운이 아직 나의 흔적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얼마를 더 누워 있었을까?

별안간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조밀한 어둠의 입자들이 허둥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무형의 진공청소기에 빨려가듯 항거할 수 없는 가속도를 타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미세한 빛으로 충전되기 시작했고 이윽고는 세포 분열하듯 하나의 완연한 의식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정신에 의식이 있듯이 육체에도 그런 것이 있는가 보았다. 육체의 기운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목 아래로는 전신이 마비된 듯 그렇게 또 한참을 더 있었다. 새벽이 점차 끝나 가는지 차량의 통행이 빈번해 졌다. 그래도 사방은 여전히 어둡고 몹시 추웠다.

택시가 한대 멈추어 섰다. 간신히 어떤 물체를 발견하고 급정거한 택시는 그렇게 한 1분여를 미동도 않고 있었다. 사람을 칠 뻔했다는 십년 감수의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한편 돈이 될까 하는 판단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운전자는 택시에서 내려 나를 유심히 관찰하다가 뒤돌아섰다. 털 것도 없을 것이었고 살 가망도 없으니 별 영양가 없는 물체에 불과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의 신음소리는 그를 불러 세웠다.

그의 택시에 실려 나는 몇몇 병원을 전전했으나 퇴짜를 맞았고 다행히 어느 허름한 사립병원에서 받아 주었다. 그만큼 강도를 당한 나의 외형이 끔찍하였을 것이고 병원들도 돈 안 되는 시체 수준의 응급환자는 별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결국 나는 그 택시운전자의 도움으로 살아났다. 나중에 그는 나를 구해준 댓가를 금전으로 요구했다. 나는 씁쓸한 마음으로 소정의 현찰을 전달함으로써 그에 대한 고마운 마음의 빚을 깔끔히 정리할 수 있었다.

그 후에도 A사장은 한동안 나에게 원단을 공급했다. 그를 볼 때면 늘 복잡한 감정이 교차하였다. 그에 의하면 우리는 ‘사선을 함께 넘은 동지’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 생각에, 그는 사선을 넘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훨씬 너머 ‘사신死神’까지 보고 왔으니 그의 ‘무탈’은 나의 ‘유탈’에의 편승이요 거의 무임승차라는 것이었다.

나는 참 지엽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동조가 없었기에 나만 작살이 났다며 늘 그에 대한 불편한 시각이 있었다. 그러나 만일 그가 합세하였다고 가정하면, 거구의 강도는 권총을 그 고유의 용도로 사용했을 것이며 우리 둘은 멕시코시티 어느 길바닥에서 틀림없이 피살체로 발견되었을 것이다.

‘사선’을 훨씬 넘어 ‘사신’을 따라 어디론가 열심히 끌려가고 있었을 것이다. A사장의 허세는 결론적으로, 우리가 함께 사선만을 넘게 해준 탁월한 처신이었다. A사장은 나와 ‘사선을 함께 넘은 소중한 동지’가 맞는 모양이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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