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시인 故이선관 “위선·비리 정치인 솎아낼 애국자 없소?” 외치는듯

이선관의 시 ‘국제화 세계화 일류화 되기 전에’ 전문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1980년대 마산에는 영혼이 아름다운 한 시인이 참으로 고결한 삶을 살고 계셨다. 뇌성마비 2급2호 중증장애인으로 맑고 순정한 시를 써서 시집도 발간하고 많은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지난날 함석헌 선생이 발간하던 <씨알의 소리>(1971년 10월호) 시 란에는 매우 이채로운 시 한편이 발표되었는데 그것은 이선관(1942~2005)이 쓴 ‘애국자’라는 풍자시였다.

이른 새벽 잠결에 시인은 골목에서 크게 “동포여”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는다. 비몽사몽 속에서 시인은 “웬 선각자의 웅변적 외침인가” 하고 돌아눕는데 다시 그 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온다.

정신을 차리고 들어보니 원 세상에~~그 소리는 새벽 골목을 다니며 “똥 퍼여”라고 고함치는 인분 청소원의 외침이었다. 연암 식으로 말하자면 ‘예덕선생’(穢德先生).

70년대 초반 격동의 세월 속에서 민주주의 발전과 퇴보의 기로에 처한 당시 일그러진 현실과 세태를 풍자한 작품이다.

입만 열면 국민과 민주주의를 들먹이며 권력의 이익과 독점을 저지르던 정치인들의 비리와 위선을 시원히 풍자한 것이다. 지금의 세태도 그때와 전혀 다를 바 없다.

한국어의 묘미를 재치있게 활용한 시인의 솜씨가 돋보인다. 얼마 전 어린 시절에 살던 동네를 찾았다가 대문 옆에 붙은 푸세식 화장실, 거기 가득 찬 인분을 퍼내던 구멍을 발견하고 문득 이선관의 이 시가 떠올랐다.

작품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빛이 어둠을
사르는
이른 새벽이었다.
문틈에선가,
창틈에선가,
벽틈에선가,
나의 침실 깊숙이 파고드는
동포여!
하는 소리에 매력을 느끼다가
다시 한번 귀 기울여 들어보니
똥 퍼여!
하는 소리라
나는 두 번째 깊은 잠에 취해버렸다

-이선관의 시 ‘애국자’ 전문

이선관 시인 손글씨

어느 날 스크랩북을 뒤적이다 보니 이선관 시인의 구불구불한 친필엽서가 하나 보인다. 반가워서 꺼내 다시 읽으니 앞면은 당신의 시작품이 실려있다.

오염과 파괴로 원형을 현저히 잃고 있는 대자연의 고통과 우리네 삶에 대한 풍자시다. 뒷면에는 내가 보내드린 시집에 대한 감사의 답장으로 여겨진다. 무슨 책을 보냈던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는 생전에 이선관 시인을 몇 차례 뵌 적이 있다. 당신은 멀리서 나를 발견하시고 뒤뚱거리며 달려와 온몸을 비틀며 만면의 미소로 반가움을 표시했다. 그런 시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문단에서는 몸이 불편한 그를 장애인이라 무시 경멸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그러한 족속들보다 영혼이 천 배 만 배나 깨끗하고 결벽했던 한 시인의 처연하고 쓸쓸했던 삶을 생각해본다.

골목에서 들리던 인분청소원의 “똥퍼여~” 외치는 소리가 ‘동포여~’로 들리는 새벽 시간이다. 저승에서는 이제 육신의 고통이 없으리라.

시인의 사후 마산에는 그의 시비가 세워졌다. 삼가 정성을 모아 시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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