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제외한 ‘오커스’···역사적 배경과 역학관계

미·영·호주의 새 안보동맹 ‘오커스’ <사진합성·일러스트 연합뉴스 박은주>

유럽연합(EU)가 오커스(AUKUS)에 프랑스가 제외된 데에 항의했다. 프랑스의 EU 내에서의 위상은 대부분의 국가가 미국과 영국에 대한 항의에 동참하고 있는 데서 확인되고 있다. 오커스는 인도태평양에서 안보협력 강화와 정보기술 공유 심화를 목표로 한 미국·영국·호주 3자간 안보동맹이다.

EU는 1951년 드골과 아데나워기 주축이 되어 만든 철강 공동체에서 출발한다. 이는 1957년 EEC로 발전했다. 영국은 참가를 신청했으나 프랑스는 줄기차게 영국의 참여를 막아 1973년에야 겨우 가입했다. 고립되어 있던 영국은 EEC, 나중의 EU를 통하여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았다.

1994년 영국이 해저터널로 대륙과 연결되었다. 해외 이민이 줄기차게 증가했다. 인도, 파키스탄과 공산권 해체 후 동유럽으로부터 유입됐다. 2016년 영국이 EU에서 나가려는 브렉시트(Britain Exit)가 52대48의 근소한 표차로 국민투표를 통과했다. 국민투표는 의회민주주의 국가인 영국에서 특이한 방법이었다. 주로 대통령제에서 시행되는 방법으로 과거 한국과 인도네시아 등 후진국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낮게 평가되고 있었다.

전통적으로 유럽에게 영국은 타인이었다. 무어라 해도 유럽에서는 프랑스와 독일이 강대국이었다. EU 성립 이래 많은 나라가 가입하고 특히 냉전 종식 후 동유럽 국가들이 참여했지만, 유럽을 독일과 프랑스가 주도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이들에게는 영국과 대서양 건너의 미국은 남이었다. 이것은 한국과 일본이 일의대수(一衣帶水)인 쓰시마해협을 건너 전혀 남인 것과 같다.

반면 영국의 대외정책은 영미관계, 유럽과의 연대, 옛 식민지국가와의 영연방의 세 부문으로 되어 있다. 영연방은 영국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옛 식민지를 포함해 모두 52개국이다. 수장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다.

따라서 국제정치상 영국의 영향력은 아직도 막강하다. 영국이 나토와 따로 미국, 호주와 별도의 연합이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독일은 원자력잠수함이 없다. 19세기 말부터 영국과의 건함경쟁이 치열했고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전이 미국의 1차대전 참전을 이끌었다. 나토에서도 독일군은 소련 지상군을 막는 것이 주요 임무였다. 북해는 영국 해군이 담당했기 때문에 독일 해군은 별도로 강화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니 원자력잠수함은 건조되지 않았다. 단, HDB 잠수함 등 재래식 잠수함은 앞서 있다.

호주 국립대학은 옥스퍼드, 캠브리지와 같은 수준의 명문대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아시아와 연결되는데 또한 한국, 일본, 싱가포르 등과도 연결된다. 그 중요성은 21세기에 더하다. 영국이 세계에 영광의 고립을 지키던 19세기 말 1873년 줄 베르느의 <80일간의 세계일주>는 오늘날 ‘80시간’, 아니 그 절반인 ‘40시간의 세계일주’가 되고 있다.

프랑스 중심의 유럽은 더 넓은 세계와 동행해야 한다. 한국, 일본은 이제 모든 지표에서 유럽과 같은 차원의 선진국이 되었다. 교통요금과 편리함에서 한국은 유럽이 따라오지 못할 만큼 선진국이다. 코로나19에 대한 대응 등 어느 부분에서는 앞서기도 한다.

EU의 장래에 대해서 1980년대 대처의 생각은 아직도 음미할 가치가 있다. 대처는 외무부장관을 비롯하여 많은 동료들의 생각과는 달리 유럽이 개별국가들의 연합을 넘어 연방국가로 가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간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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