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커피 ‘F1 하이브리드’···”유전자 조작은 없다”

지구온난화에 따라 병충해가 기승을 부림에 따라 커피산지에서는 품종 개량이 활발하다하와이 코나에 있는 그린웰 커피농장에서 향미가 좋은 품종을 만들기 위해 접붙이기를 하는 모습.

[아시아엔=박세영 CIA플레이버마스터, CCA인스트럭터] 지구온난화로 인해 30년쯤 후에는 커피 생산지가 지금의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경고가 거듭되고 있다. 동남아시아는 보다 심한 영향을 받아 2050년엔 커피 재배 가능 지역의 70% 정도가 줄어들 것으로 국제커피기구(ICO)는 내다봤다.

산지 기온이 커피 생산에 영향을 주는 메커니즘은 대략 다음과 같다. “기온이 오르면 강우량과 일조량이 격변하고, 이러한 요소들은 다시 커피의 수확 시기를 불안하게 만들어 생산량은 줄어든다. 더불어 병충해 급증으로 인해 커피나무들이 살 수 있는 지역이 기온이 낮은 산 위쪽으로 밀려 올라가면서 재배면적의 감소에 가속도가 붙는다.”

기온은 인간의 의지대로 조절할 수 없다. 온난화 와중에 커피 생산량을 유지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 병충해와 기온변화에 견딜 수 있는 품종 개발이다. 많은 농작물들에게 닥친 위험이지만, 커피이기 때문에 더욱 힘든 것이 살아남으면서도 음료로서 맛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커피가 세계인의 음료가 된 상황에서 생산 불안과 그에 따른 가격의 급등은 산지뿐 아니라 소비지의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에 대한 근본적이면서도 혁신적인 대책마련을 위해 2012년 기대 속에서 출범한 단체가 비영리 공동연구기관인 월드커피리서치(World Coffee Research, WCR)다.

WCR은 ‘커피의 미래를 위해’(Ensuring the future of coffee)를 모토로 삼고 세계 각 재배지에서 진행되는 품종개량을 지원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품종이 희망’인 것을 콜롬비아가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5년간 연속적으로 이어진 강우량 증가와 녹병 창궐로 인해 콜롬비아는 2008년 생산량이 30% 넘게 감소했으나, 총 재배면적의 45%를 당시 신품종인 카스띠요(Castillo)로 교체해 5년만인 2013년 정상 수준을 회복했다. 카스띠요는 티모르하이브리드와 카투라의 교배종으로서 녹병에 강하면서도 향미의 품질을 유지했다.

하지만 교배종의 형질은 영원한 게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약화되고, 반면 병충해는 변종을 통해 더욱 강해지고 있다. 재배자들로서는 강하면서도 향미 좋은 교배종의 발견 주기를 빨리 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더 이상 자연교배에만 의지할 수 없는 형편이다 보니 인위적 교배를 통한 F1 하이브리드(Hybrid, 교배종)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마침내 올해부터 국내 테이스팅 현장에도 낯선 커피 품종들이 오르기 시작했다.

센트로아메리카노(Centroamericano)는 프랑스연구소와 코스타리카커피유전자은행 등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에 의해 탄생한 F1 하이브리드이다. 녹병에 강해 중앙아메리카의 표준 품종보다 생산량을 최대 47%까지 높여주었다. 에바루나(Ealuna, EC18) 역시 같은 컨소시엄이 카티모르와 에티오피아 토착종의 교배를 통해 개발했다.

고지대에서 생산성과 음료품질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이와 함께 밀레니오(Milenio, H10), 문도 마야(Mundo Maya, EC16), 나야리타(Nayarita, EC19), 카시오페아(Casiopea) 등 신품종이 커피애호가들의 귓전을 울리고 있다.

새로운 유전자형의 개발이라는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고, 자칫 천형(天刑)을 부를 수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기도 하다. 나무를 섞어 키우거나 인위적으로 수정을 한다고 해서 신품종이 쉽게 탄생하는 게 아니다. 설령 병충해에 강한 형질을 얻었다고 해도 다음 세대에서 사라지기 일쑤다.

따라서 7세대까지 형질이 유지되는 것만이 F1 하이브리드로서 이름을 부여 받게 된다. 그 이전까지는 씨앗으로 번식하지 못하고 묘목으로만 형질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가격은 비싸고, 보급속도는 더디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스타마야(Starmaya) 종은 씨앗으로 번식에 성공한 최초의 F1 교배종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한계를 넘고자 하는 커피 연구자들의 도전에는 금기가 있다. “유전자 조작은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사태가 경고하는 것처럼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유전자 배열을 지닌 커피 품종의 등장은 상상할 수 없는 비극을 초래하는 판도라의 상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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