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숨겨진 매력 ‘공감각’···”커피 한모금이 모든 관능 자극”

<사진=박영순>

[아시아엔=박세영 CIA플레이버마스터, 단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커피학과 외래교수] 한 잔의 커피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즐거움이란 무엇일까? 아몬드를 굽는 듯한 고소한 향, 잘 익은 패션푸르츠를 머금은 것 같은 화사한 산미, 아니면 밀크 초콜릿의 질감과 부드러운 쓴맛···.

계속 말을 지어간다고 해도 이런 식이라면 결국 코와 입, 그리고 피부가 누리는 행복뿐이다. 한 모금의 커피가 보듬는 부위가 우리의 후각, 미각, 촉각기관이다 보니 당연한 결과이겠다. 그런데 뭔가 빠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사실 향기는 코에만, 커피 물은 혀에만 각각 작용하는 게 아니다. 후각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전기신호와 미각에서 생기는 비슷한 유형의 신호가 어우러져 빚어내는 감각적 결과물이 플레이버(flavor)다. 뇌는 한 자리를 차고 앉아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전기신호를 조합해 정보를 해석한다. 시각인지, 청각인지, 후각인지 구별하지 않는다. 뇌에게는 단지 전기신호이다. 그것은 마치 조선시대 한양 목멱산에 지펴진 봉화와 같다. 같은 불길을 보고 함경도 회령에 오랑캐가 들어온 것인지, 부산 다대포로 왜군이 침입한 것인지 구별할 수 있는 것은 그 신호가 온 방향을 알 수 있는 덕분이다. 비유하자면, 이런 방식으로 뇌는 다섯 가지 감각을 구별해 처리한다. 그러나 공간적으로 떨어져 설치된 봉화대와 달리 미세한 전기신호들은 종종 겹쳐서 뇌에 도달하기도 한다.

바실리 칸딘스키가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을 감상하면서 다양한 색과 형태들이 떠오르는 경험을 했다. 소리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깨닫게 된 칸딘스키는 이후 화가의 길을 택하는데, 1911년 쇤베르크의 피아노 소곡을 듣고 ‘인상 Ⅲ’이라는 작품을 완성했다. 음악을 들으며 그림이 떠오르는 현상은 청각의 전기신호가 시각의 정보처리 경로와 중첩되면서 발생하는 ‘공감각’(synesthesia) 현상으로 풀이된다.

하나의 감각이 다른 영역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공감각에 대해선 노벨상 수상자인 리처드 파인만도 특기를 가졌다. 그는 알파벳 N을 푸른빛이 도는 보라색, J를 어두운 갈색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복잡한 물리학 방정식을 잘 기억해낼 수 있었다. 작가이자 곤충학자였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단어나 숫자를 색상과 연계해 인지했는데, 특히 많은 단어들이 그에게는 그 뜻과는 상관없는 별도 이미지를 떠오르게 했다. ‘사람들’을 뜻하는 프랑스어 ‘On’을 보면 작은 유리잔에 술이 넘칠 듯 말 듯한 모습이 떠오르는 식이었다.

가공과정에 들어 가기전에 생두 상태를 향으로 가늠하고 있는 박영순 커피테이스터.

커피는 감춰져 있는 우리의 공감각을 자극한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묘사한 이른바 ‘프루스트 효과’(Proust Effect) 같은 방식이다. 주인공은 홍차에 적신 마들렌 조각을 입에 넣는 순간, 새까맣게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환상을 경험한다. 커피의 향미는 기억을 깨우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보다 중요한 것은 정서(emotion)를 만들어 낸다는 데 있다.

한 잔의 커피가 오감을 뛰어넘어 감성을 생성하고 기억을 되살려내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공감각의 능력이란 어쩌면 우주의 진리를 깨우치고자 끊임없이 사유하는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른다. 한 모금이 인간의 모든 관능을 자극해 입체적으로 진실에 접근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은 적어도 디오니소스적인 와인은 아닌 것 같다. 그것은 단연 아폴론적인 커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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