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위안스카이’ 보며, ’21세기 중국 속셈’ 읽다

원세개. <연합뉴스>는 2019년 10월 24일자 기사에서 원세개를 ‘조선의 마지막 자주 개혁 기회를 앗아간 사나이’라고 했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청의 원세개(袁世凱, 위안스카이)는 1915년 일본의 굴욕적 21개조 요구에 굴복했다. 그는 중국사에서 욕을 먹는 송宋의 진회秦檜같은 자였다. 그는 1911년 손문孫文이 세운 중화민국을 뒤엎고 황제가 되려했다가 실패하자 분통이 터져 죽은 엉뚱한 자였다.

원세개는 1882년 임오군란을 진압하러온 청군의 요직으로 와서 조선을 노략질했다. 청군이 조선에 온 것은 민비 등이 불렀기 때문이다. 민비는 결국 왜적에 찔려 광화문에서 불 살려 졌지만 결과적으로는 조선을 망쳤다.

원세개는 흥선대원군을 붙잡아 청에 보냈고 한양의 요지에 진을 쳤다. 중화민국이 한일합방 전에도 중국 대사관과 명동의 요지를 차지하게 된 것은 이때부터다. 1992년 한중수교 후 중화인민공화국이 이를 승계하였다.

1884년 천오백의 청군을 끌고 2백의 일본군을 제압하여 갑신정변이 무너지게 하였다. 조선은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등 천금 같은 개화의 지사들을 잃었다. 1886년 원세개는 조선이 청 외교관을 따를 것을 요구하는 준칙3단을 고종에 요구하여 관철시켰다. 일본에 외교권을 박탈당한 1895년 을사보호조약 이전부터, 조선 외교권을 빼앗았다.

대한민국은 1943년 카이로회담에서 조선 독립을 주장한 장개석蔣介石의 중화민국에 빚이 있다. 이것은 그냥 된 것이 아니다. 윤봉길 의사의 상해 의거가 중국의 백만 대군이 못한 일을 한 해치워 중국인의 항일의지를 북돋았기 때문이다.

1949년 10월 중국이 건국하고 이듬해 6.25가 터졌는데 김일성은 스탈린에 따라 모택동의 동의를 받았으며, 중국 공산당은 1950년 9월 유엔군의 반공이 시작하자 바로 준비에 착수하여 10월 초 침공을 개시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 일각에서 미국이 밉다고 하여 중국에 붙는 것은 참으로 분별없는 행태다. 미국에서 오래 생활한 이승만은 지정학과 외교를 절묘하게 결합한 지도자였다. 이승만은 미국이 미소공동위원회에 정신 팔려 있는 동안에 대한민국을 세웠고 6.25전쟁에서 유엔군에 힘입어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나라를 지켰다.

수천 년을 인접한 중국 및 일본과 투쟁해온 한국은 2차대전 후 요행하게도 미국과 한편이 되었다. 6.25전쟁으로 동맹까지 되었다.

그런데 중국이 시대착오적인 내정간섭을 한다. 자위권 행사인 사드 배치에 반대한다. 박근혜 정부가 허점을 보인 것이 근본원인이다. 주한 중국대사가 야당 대선주자에게 중국에 어긋나는 짓을 하지 말라고 한다.

중국에 정신 팔려 있는 사람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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