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와 훔침②] 희귀서적, 어떻게 장물이 되나?
[아시아엔=김중겸 치안발전포럼 이사장, 전 경찰청 수사국장, 일본주재관] 첫 번째: 시작은 미약했다. 서적상이 운 뗐다. “형! 1644년 나온 지도책 Blaeu Atlas 있잖아요. 그것 좀 며칠 반출해 주세요. 복사하게.”
사서가 답했다. “카피만 한다고? 뭐 문제될 거 있겠나. 내가 담당자인데···.” 게다가 용돈도 두둑이 쥐어주지 않는가.
두 번째: “그 지도 모두 276장이잖아요. 몇 장 없어진다고 누가 알겠어요? 우선 중간 중간에서 석 장만 떼어냅시다.”
그러면서 조각칼(X-ACTO) 내밀었다. “알았어.” 그런 식으로 해서 결국 전부 잘라냈다. 표지는 소각했다.
세 번째: “죠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있던데, 1351년 이탈이아어판 말구 1620년 영어초판. 내다 팝시다.” “그러세.” 죽 잘 맞았다.
아이작 뉴턴의 1687년 작 <자연철학의 철학적 원리>도 훔쳐냈다. 90만달러 상당. 점차 창대해져 갔다.
발각
1992년 개설한 희귀서적 열람실 Oliver Room. 그 이후 25년 동안 재고조사 하지 않았다. 맘 놓고 훔쳐냈다.
2016년 고서적 연구하는 서지학자書誌學者 사이에서 야릇한 소문 나돌았다. 석사논문 쓰던 때는 있었는데 박사논문 쓰려고 갔더니 없더라는 것이다.
풍문의 주인공은 바로 <북아메리카 인디언부족 역사>(History of the Indian Tribes of North America)라는 자료였다.
손으로 만든 천연색 석판화(lithograph, 石版畵)였다. 1836년부터 1844년에 걸쳐 120매가 제작됐다. 단 하나도 없다니! 경영진 귀에도 전해졌다.
부랴부랴 감사하기로 했다. 그러고도 6개월 허비. 2017년 4월 3일 외부 전문가 투입됐다. 개문읍도開門揖盜, 문 열어놓고 도둑 모시는 처사다.
가격
25년간 300개 물건에 800만달러. 장물로 파는 자는 이 가격의 20% 받는다. 그 세계의 룰이다.
160만달러 수취. 둘이 했으니까 1인당 80만달러. 1년에 1인당 3만2000달러 벌이다. 용돈으로는 풍족한 액수이기는 하다.
그래도 이건 실失 많은 장사다. 직장 잃고 교도소 가지, 변상해야지, 인생 파산. 쪽박 찬다.
도서관은 어떤가. 명예 실추 외에도 손해막심. 예컨대 그들이 내다판 1615년판 성경의 경우 FBI 수사결과 네덜란드 박물관에 있는 것을 알았다.
“얼마에 구입했소?” “1200달러요.” 장물업계 관례대로 20% 어치의 가격이다. “도둑물건인 걸 알았소?” “이걸 보시오. 장물같이 보이쇼?”
카네기 도서관에 되돌려 주기로 했다. “공짜로는 곤란하오.” 2000달러 지불하고 Oliver Room에 안착했다.
도둑들
사서는 피츠버그 토박이. 183cm 훤칠한 키에 콧수염도 일품, 목소리는 낭랑, 직업적 명성도 있었다. 가정도 화목했다.
중고서적상은 피츠버그 출신으로 부지런하고 사교적. 고객 모여들었다. 미국고서적협회 동부지구 임원으로 고서적 감정사로 유명했다.
어찌해서 20대에 책 도둑 길로 들어섰는지는 미지수. 주위사람들은 시저가 치명타 찌르는 브루투스 보며 느꼈던 배신감 맛 봤다 한다. 너 마저!
그렇다면 회수되지 않는 고가의 장물은 누구 손에 들어갔는가. 더 큰 도둑, 소유한 자가 차지한다.
소유한 자들은 훔친 문화적 재산 숨어서 본다. 히죽거리며 즐긴다. 품위 유지방법의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