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화의 말글 톤] 함민복의 ‘긍정적인 밥’에서 “밥 무써요?”까지

밥 한 공기의 힘

[아시아엔=김재화 말글커뮤니케이션 대표, 유머작가] ‘안녕하세요?’ 이상 많이 쓰는 우리네 인사말, 단연 이거다. “식사하셨어요?”

큰 부자들이나 삼시세끼 자기 먹고 싶은 대로 먹고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밥 한 그릇 제대로 먹는 게 특별한 일인 시절에 생겨난 인사였을 거다.

예전에 이하원이라는 개그맨이 있었는데, 그가 했던 어떤 유행어가 한동안 인기를 끌었다. 영남 억양으로 한 “밥 무써요?”였다. 방송사 간부의 말투를 흉내 낸 것이 전국에 퍼진 신조어가 됐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네 말은 ‘밥’만 가지고도 한 문장의 의미를 알아듣기 쉽게 비유를 할 수 있다.

우선 어른은 아이에게 ‘밥 먹었니?’라 하고 아이들은 어른에게 ‘진지 드셨어요’라 묻는 것이 아주 예의범절에 딱 맞는 인사다.

고맙거나 반가울 때 “나중에 밥 한번 먹자”라고 한다. 좋은 아내 평가기준이 ‘밥은 꼭꼭 잘 차려 주는 것’이다. 인심 좋은 사람 칭할 때 ‘밥 잘 사는 이’라 하고 최고의 힘은 ‘밥심’이라고 한다.

밥 먹다 친해진 사이를 두고 ‘밥정 들었다’고 말하는 어른들도 봤다.

부정적인 감정표현 때도 밥을 들먹인다. “너 오늘 국물(밥)도 없을 줄 알아!” 하면 크게 혼내는 것이고, 누군가의 인간성을 마구 비난할 때는 “저 사람 정말 밥맛없더라!”라 한다.

한심할 때도 “이래서 밥이나 벌어먹겠냐?!”라고 하며, 잘 하라는 센 충고가 “밥값은 해야 한다!”이다.

안 좋은 사이일 때 “그 사람 하고 밥 먹으면 뭐가 올라올 것 같아” 아주 나쁜 짓(범죄)을 하면 혀를 차며 말한다. “ㅉㅉ 콩밥 먹고 싶단 거야?”

멍청하다고 흉볼 때(욕할 때) “어우! 이 밥탱아!”라고 하고, “목구멍에 밥이 넘어 가냐?”는 아주 심각한 상황임에도 넋 놓고 있는 사람에게 하는 질책이다.

부모가 자식이 하는 일을 말리고 싶으면 “그게 밥 먹여 주냐?”라 하고, 최고로 비정한 표현은 “밥맛 떨어져”이다.

“밥만 잘 쳐먹더라”하면 둔감한 사람을 비꼬는 말이 되고 ‘다된 밥에 재 뿌리는 놈’은 상당히 못된 놈을 칭하는 거다.

힘을 보탠 것도 없는데, 성과를 나누려고 끼어드는 얄미운 사람에게는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슬쩍 얹더라”라고 한다.

연예인이 서로 같은 소속사의 일원이면 기자들은 “한솥밥 먹는다”고 쓴다. 잘 지내는지 궁금해 안부를 묻는 말 또한 “밥은 먹고 지내냐?”이다.

주유소를 경영하는 친구가 있는데, 남들이 그의 직업을 물으면 ‘기름밥 먹는다’고 한다. 작가인 필자는 ‘글밥’을 먹고 사는 걸까?

그야말로 청렴하게 사는 함민복 시인이 ‘긍정적인 밥’이란 시를 썼다.

“시 한편에 삼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권에 삼천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도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권 팔리면 내게 삼백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긍정적인 밥’ 이 시는 참 희한한 것이 처음엔 스산한 마음으로 슬프다가도 이내 웃음이 배시시 나오고 기운이 생긴다.

저 세상 울 엄니 살아생전, 중학생 때부터 당신과 따로 살았던 내게 늘 “밥은 꼭 챙겨 묵어라잉” 하셨는데, 그 말씀 떠올릴 때와 시(詩) ‘긍정적인 밥’을 대하는 느낌이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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