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 ‘치킨게임’으로 치달아···베트남 등 ‘어부지리’, 한국시장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시아엔=이정철 기자] 지난해 7월 6일 관세 부과와 보복관세 부과, 협상과 결렬을 거듭해 온 미국과 중국은 각각 340억달러 규모의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면서 무역 전쟁에 본격 돌입했다. 당시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미중 무역전쟁의 전면화는 전 세계적인 파장을 불러올 것”이라며, “그 여파로 세계 무역량 감소가 2조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대중국 무역적자가 3750억달러에 이르기 때문에 미국이 무역전쟁에서 이기는 건 별 문제가 안 된다”고 공언했다. 2018년 기준 중국의 대미 수입은 1203억달러(143조원)인 반면 미국의 대중수입은 5385억 달러(641조원)다.

이에 트럼프는 무역전쟁을 시작하면서 두 가지를 얻고자 했다. 첫째는 미국의 전체적인 무역적자를 줄이는 것인데, 그중 핵심은 대중국 무역적자 축소다. 둘째는 좀 더 근본적인 것으로 중국의 경제발전, 이를테면 하이테크산업의 발전을 저지함으로써 미래의 경제전쟁에서 우위를 확보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도 ‘중국제조 2025’ 계획에서 밝힌 것처럼 하이테크산업 육성을 포기할 수 없다. 2015년부터 시진핑 정부가 적극 추진하고 있는 ‘중국제조 2025’는 제조업의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거듭나기 위해 추진 중인 10대 핵심산업 육성 프로젝트다. 여기에는 정보기술(IT), 우주항공, 로봇 등이 포함돼 있다.

양국 무역전쟁이 시작된 후 11차례 이어 온 미중 무역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고 양국간 관세폭탄이 이어지면서 초기 전문가 및 관련 기관들의 예상이 현실화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중국 협상단은 미국을 방문해 지난 5월 9~10일 11차 무역협상을 벌였지만, 협상은 결국 ‘노딜’로 마무리됐다. 협상을 마치고 류허 부총리는 “양국은 견해차가 있는데 그 차이가 중대한 원칙 문제”라면서 “우리는 이런 원칙 문제에 대해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대로 미 무역대표부는 30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인상 절차에 돌입했다.

한치 양보 없는 G2의 자본전쟁

상대도 양보는 없었다. 중국 정부는 13일 “6월 1일부터 600억달러(약 71조원)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대해 기존 5~10%에서 최대 25%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미국은 같은 날 추가 관세를 부과할 325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 목록을 공개했다. 15일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화웨이와 ZTE를 사실상 겨낭한 해외기업의 미국 기술 위협에 대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뿐 아니라 같은 날 로스 상무장관은 화웨이와 계열사를 거래재한 기업으로 지정한다고 발표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5월 20일 구글, 인텔, 퀄컴 등을 필두로 IT기업들이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칩 공급 중단에 나섰다. 구글은 나아가 공개된 오픈 소스를 제외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기술 이전이 수반되는 거래 일체를 중단했다. 이에 따라 화웨이는 구글의 지도, 검색 서비스, 지메일 등을 사용하지 못하게 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사진=신화사/뉴시스>

보호무역 회기, 배후엔 패권전쟁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당선된 트럼프는 미국의 경제적 쇠퇴가 과거 정부의 잘못된 자유무역정책에서 비롯되었다고 비판하면서 보호무역에 가까운 무역정책을 채택해 왔다. 트럼프는 다른 국가들의 불공정무역 때문에 미국의 전통적인 굴뚝산업에서 일자리가 줄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중국은 오히려 자국에 대한 미국의 강압적인 무역정책이 불공정하다고 맞섰다. 미국의 보복관세에 시진핑 주석은 “서양에선 누군가가 왼쪽 뺨을 때리면 오른쪽 뺨을 내주는 문화지만 우리는 되돌려주는 문화”라고 응수했다.

미국은 대중국 보복조치들을 정부가 앞장서 독자적으로 추진했다. 예컨대 안보에 위협을 주는 수입품에 대해 보복조치를 허용하는 무역확장법 232조와 무역법 301조 등을 활용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보복 대상으로 선정한 중국수입품들에 중국정부가 경제적 우위를 확보할 목적으로 추진하는 ‘중국제조 2025’의 핵심사업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트럼프정부가 주도하는 보복 조치는 양국간 경제 우위를 확보하려는 경제 패권을 다투는 성격이 강하다. 미래 하이테크산업의 발전을 통한 중국의 경쟁력 확보를 방지할 목적에서 비롯됐다. 따라서 미국정부가 앞장서 주도하고 있는 무역정책은 보호무역의 성격을 띤다.

중국정부도 마찬가지다. 2015년부터 시진핑 중국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중국제조 2025’는 하이테크 수입상품을 자국산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세계 최고의 경제역량 확보가 목적이라는 점에서 자유무역과는 거리가 있다. 더욱이 시진핑 정부가 제조산업의 세계패권을 추구하며 강력히 지원하고 있는 ‘중국제조 2025’ 전략은 중국정부가 직접 기획하고 보조금을 포함한 다양한 조세·재정정책을 통해 주도한다는 점에서 자유무역정책보다는 중상주의적 성격이 크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미중 무역전쟁 초기 중국을 향한 비판 원인 중 하나인 불법보조금에 해당된다. 중국정부가 자국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원을 통해 외국자본, 특히 미국기업의 경쟁력 약화를 주도한 것과 관련해 중국 공산당의 경제개입 중지를 요구했다.

양국의 여론 악화로 지난 5월 9일 시작된 2라운드 무역전쟁은 휴전 이전인 1라운드보다 합의가 더 어렵다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우선 중국의 여론 악화가 가장 큰 걸림돌로 평가된다. 중국에서는 협상 타결을 앞두고 미국측이 이미 합의된 조치를 일방적으로 뒤집고 약속을 번복해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민심 수습차원에서 중국 지도부도 돌연 강경 대응 기조로 선회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대미 강경론도 확산되고 있다.

中 6·25전쟁까지 거론하며 여론전 총력

중국 공산당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의 후시진 총편집인은 웨이보(중국판 트위터)를 통해 “미중 무역전쟁이 갈수록 치열해져 우리에게 조선전쟁(6·25)을 떠올리게 한다”고 주장했다. 후시진 총편집인은 “조선전쟁은 3년 넘게 싸웠고 그 후 2년간 논의했는데 우리의 의지와 성과 때문에 미국은 협상테이블에서 머리를 숙였다”고 했다. 그는 “미국측이 중국의 완전 타협을 유도해 일부 주권을 넘겨받거나 장기전을 통해 중국 발전을 억제하려 한다”면서 “하지만 중국인들은 전혀 두려워하고 있어 워싱턴은 단기전으로 중국을 무너뜨릴 기회를 잃었다”고 주장했다.

애국심을 앞세운 중국정부의 강경대응에도 미중 무역전쟁에서 중국이 사용할 카드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초기부터 미국의 수입이 중국의 대미 수입의 4배에 달해, 미국이 상대적으로 운신 폭이 넓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를 매각할 것이라는 얘기가 있지만, 실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중국은 미국 국채 1조1205억달러어치(5월 15일 기준, 미국 재무부 자료)를 갖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미중 무역전쟁은 서로 얼마나 손해를 감당할 수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치킨게임이 됐다. 잃는 것이 많기는 피차일반이지만 물러서기 힘든 단계에 이른 것이다.

시진핑과 트럼프

무역전쟁 피해 동남아로 향하는 ‘세계공장’

미중이 난타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동남아 국가들이 어부지리 속에 활짝 웃고 있다. 주요 제조업체들이 미국의 관세 폭탄을 피해 베트남 등지로 공장을 옮기고 있다. 납품처가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중국의 인건비 상승이 부담스러웠던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베트남으로 공장을 이전해야 하는 이유가 더 생겨난 셈이다.

<블룸버그> 등 언론들은 연일 “동남아 국가들이 미중 무역전쟁을 틈타 외국인 투자유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소재 미국회사 430곳 중 1/3 이상이 베트남으로 이전하거나 생산라인을 옮길 것으로 전망된다. 애플의 ‘에어팔’ 생산업체로 잘 알려진 고어텍도 무선 이어폰 생산시설을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옮기겠다고 선언했다. 레노버그룹도 베트남 북부 지역에 대규모 공장 부지를 마련하기 위해 협상 중이다. 이곳 생산 제품 대부분은 미국으로 수출될 예정이다. 10년 전 휴대전화 생산 거점을 한국의 구미에서 베트남 북부 박닌성으로 옮긴 삼성전자는 지난해 12월 중국 휴대전화 공장 2곳 중 1곳을 폐쇄했다. 이에 베트남이 ‘제조업의 메카’로 불리는 중국 광둥 지역을 대체할 ‘뉴광둥’(New Guangdong)이 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중국 광둥 지역은 임금 인상과 각종 규제로 매력을 잃은 반면 미중 무역전쟁의 장기화로 글로벌기업의 베트남행이 가속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전쟁은 베트남에 대한 FDI 증가를 가져와 베트남 경제가 호황을 누리고 있다. 2018년 베트남의 경제성장률은 지난 10년간 최고치인 7%에 달했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다드앤푸어스(S&P)는 지난 4월 베트남 국가신용등급을 ‘BB-‘에서 ‘BB’로 상향 조정했다. S&P가 베트남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한 것은 2010년 이후 10년만이다. 또 다른 평가사 피치도 5월 9일 베트남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기존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상향한다고 밝혔다. 피치는 올해 베트남 경제성장률을 6.8%로 전망했다.

미중 양국 시장에 의존도가 높은 한국도 불가피하게 직간접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대중국 수출 의존도가 26.8%(2018년 한국무역협회)에 달하는 한국은 중국 경제가 위축되면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다. 반면 이번 기회가 한국경제에 이득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최양오 현대경제연구원 고문은 SBS ‘직설라이브’에서 “천재일우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다”며 “미중 무역전쟁으로 화웨이의 글로벌시장 입지가 좁아지면서 경쟁사인 삼성에 는 그만큼 문이 더 넓어질 수 있다”고 했다.

애플도 미중 무역전쟁에서 안전하지 않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5월 13일자에서 “애플의 스마트폰 최대 경쟁사인 삼성전자가 반사이익을 노릴 수 있게 됐다”며 “올해 1분기 중국 내 아이폰 판매량이 전년동기 대비 25%포인트 줄었다”고 보도했다. 미국 내 아이폰 판매량도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해 19% 감소했다. 삼성전자는 같은 기간 중국과 미국의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을 늘리며 애플과의 격차를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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