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넘어 #페이미투로 성차별 철폐를···남녀평등 원불교가 ‘롤모델’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페이미투(PayMeToo)’라는 말이 있다. 최근 언론에서는 ‘한국사회 성차별의 지표, 성별임금격차 100대64 해소를 위한 페이미투 운동’ 제하의 기사가 실렸다. 1993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여성에 대한 폭력철폐 선언’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남성과 여성 사이에 존재해 온 불평등한 권력관계의 표지’이며, ‘여성에게 예속적 지위를 강요하는 주요한 사회적 기제 가운데 하나’라고 규정했다.
그런데 아직도 한국사회의 ‘여성과 남성의 불평등한 권력관계의 지표’는 성폭력·가정폭력·성매매 등 젠더에 기반을 둔 여성에 대한 일상화된 폭력과 일터에서의 성별임금격차로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한국사회는 여성의 노동을 ‘가치 없는 것’으로 평가 절하하며 비정규직·저임금이 당연한 자리인 것처럼 여겨온 것이 사실이다.
여성들은 채용 과정에서부터 업무와 상관없는 결혼, 남자친구, 출산계획 등 성차별적 질문을 받는다. 채용상의 성차별도 소위 ‘펜스룰’도 모두가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하는 행위이지만 일터에서는 공공연한 관행으로 작동되고 있다. 남녀고용평등법은 문서상으로 잠자고 있고, 여성들의 노동권은 성차별이라는 단단한 관습에 멍들고 있다.
#미투운동은 이런 성차별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그런데 #페이미투는 가정에서, 일터에서, 사회 곳곳에서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과 독립, 동료시민으로서의 자리를 획득하기 위해 이제는 성별임금격차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다. 100대64! 이제 성별임금격차는 반드시 해소되어야 한다.
이제는 여성다움과 남성다움이 아니라 사회구성원들이 각자의 재능과 특성을 인정·존중받는 사회, 평등한 일터, 일터의 윤리가 작동되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미투와 함께 #페이미투 운동도 펼칠 때가 됐다.
얼마 전, 금감원 조사에서 드러난 KB국민은행과 KEB하나은행의 성차별 채용비리는 시종일관 조직적이고 계획적이었다. 여성 지원자는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채용과정에서 차별을 당해야만 했다. 이같은 비리가 과연 금융권에만 해당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여성들은 고용시장에서 채용 첫번째 과정인 서류전형부터 성차별을 당하고 있다. 채용이 되더라도 승진·임금 등에서 차별을 겪는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성별임금격차를 발표하기 시작한 2000년 이래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말이다.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은 사라진지 오래다.
지금 영국에서는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페이미투’ 운동이 한창이다. 이 캠페인은 임금 불평등 사례를 수집하고 있으며, 임금격차 공개, 격차 해소를 위한 사용자의 계획 마련, 독려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놀라운 것은 여성 하원의원들이 당리당략을 떠나 초당적 모임을 결성하여 앞장서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정부는 기업의 성별임금격차 보고의무화 정책을 도입했다. 그래서 대기업은 임금·보너스 정보 등을 해마다 정부에 신고하게 됐다. 성 평등 선진국인 아이슬란드는 남녀 동일노동·동일임금 인증제 의무화법으로 인하여, 직원 수가 25명 이상이면 동일임금을 지급했다는 인증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남녀평등을 완벽하게 실행하는 종교가 있다. 그 ‘남녀평등의 롤 모델은 바로 원불교’다. 이미 100년 전부터 원불교는 모든 면에서 남녀차별을 철폐했다. ‘페이미투’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원불교의 선견(先見)은 감탄할 만하다.
원불교의 ‘일원주의’는 곧 평등주의, 세계주의, 전 생령(生靈)주의다. 그 중에서도 평등주의 특히 남녀평등에 관한한 세계 모든 종교의 롤 모델이 되고 있다. 아예 <정전>(正典)의 ‘사요’(四要) 가운데 첫째 조목인 ‘자력양성’ 조항은 ‘남녀권리 동일’이다. 남자와 여자가 똑같이 자력을 양성하여 사람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똑같이 하자는 것이다.
이미 1931년 원불교 ‘통치조단 규약’을 제정하여, 남녀동수로 최고 의결기구인 수위단(首位團)을 조직하였다. 그러니까 원불교 성직자인 교무(敎務)에 여성을 임명하여 종교의례를 주관하는 제사권(祭祀權)을 부여하였다. 이것은 여권(女權)이 신장되었다고 하는 서양에서조차, 여성 참정권은 제2차세계대전을 계기로 조금 인정되었을 뿐이다.
지금까지 여성에게 제사권이 부여되지 않는 천주교는 지금도 수녀(修女)가 신부(神父)의 보조역할 밖에 못한다. 비교적 차별이 덜하다는 불교, 개신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조계종 승려의 숫자는 비구(比丘)와 비구니(比丘尼)가 거의 반반이다. 그런데 종회의원 스님 81명 중 비구니는 10명에 불과하다. 특히 전국 교구본사 주지(住持)는 전무하다.
이는 2600년 전 부처님 때로부터 비롯된 “비구니는 비구에 예를 갖춰야 하고, 비구의 잘잘못을 따질 수 없으며, 비구의 지도를 받아 수행해야 한다”는 율장(律藏)에 근거한다. 대부분의 개신교 교단도 “여자는 교회 안에서 잠잠 하라”는 신약성서를 근거로 여성 목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다만 여성목사를 인정하는 기감, 기장, 예장통합 등의 소수의 교단도 남녀차별이 아직도 여전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원불교는 심지어 성직자와 일반 교도(敎徒)들 사이의 차별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공부와 사업의 실력으로 대우할 뿐’이다. 창립공로는 첫째, 정신과 육신을 전무출신(全務出身)함이요, 둘째 물질을 많이 혜시(惠施)함이요, 셋째는 입교한 후 시종이 여일함이요, 넷째는 경전 주해(註解)와 법설(法說) 기록을 많이 함이요, 다섯째는 규약과 계문을 잘 지키는 등 11조목에 의해 평가를 한다.
원불교 교조이신 소태산(少太山) 부처님은 가부장제 종교가 해온 여성사제의 금기를 깨고 여자에게도 남자와 동등한 자격의 교무를 인정하였다. 더 나아가 남녀가 동등하게 교단의 주역으로 참여하도록 하였다. 이미 종교에서도 남녀차별을 철폐했다. 이제 우리나라도 #미투운동을 넘어 #페이미투 시대로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