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김영란 전 대법관②] “미투운동, 청탁금지법 등 중대한 사회변화 예고”

[아시아엔=박수진 <서울대총동창신문> 기자] 2012년 김영란 전 대법관이 국민권익위원장 시절 발의한 ‘부정청탁금지법’은 사회 풍토를 크게 바꿔놨다. 2016년 이 법이 시행된 이후 그의 의도대로 흘러온 부분도, 아닌 부분도 있었다. 정착되기까지 우리 사회 각계에서 불편하다는 목소리가 많이 들렸던 것도 사실이다.

그는 “그러니까 더 잘 된 것”이라며 “청탁금지법의 핵심은 공무원들이 처음부터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도록 훈련시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도 죄송하단 얘기 많이 하고 다녔다”고도 했다.

청탁금지법 시행과 함께 개헌, 미투운동, 남북관계 개선 등으로 대한민국이 새로운 변혁기에 들어섰다. 김 전 대법관은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바라볼까. 개헌에 대한 생각부터 물었다.

“87년 체제까지만 해도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루는 게 목표였다. 대통령직선제가 그 중 하나였다. 지금은 기존의 대의민주주의, 간접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의문이 생겼다. 투표권을 가진 우리의 민의를 반영해주지 않는다면 민주주의가 어떻게 민주주의일 수 있느냐는 거다.”

계속되는 그의 설명이다. “우리나라처럼 사람들이 학력 수준도 높고 정치에 민감한 나라가 흔치 않다. 더 이상 나보다 많이 배운 사람, 돈 많은 사람들의 일방적인 결정에 따르는 시민으로 남지 않겠다는 생각이 많아졌다. 경제적인 것뿐만 아니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정치를 해달라는 요구가 대두하고 있다. 개헌 논의에서 중요한 건 그런 민의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종전의 근대법적인 사고를 뛰어넘는 결과가 나올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개헌논쟁을 봐야하지 않을까.”

-한국사회의 격변기 같다. ‘미투운동’이나 각종 사건들도 그 일환이 아닌가 한다.

“우리 사회의 중요한 변화를 예고하는 흐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예스면 예스, 노면 노라고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여러 모습 중 하나다. 경제적인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서 우리 사회 다른 분야들도 계속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의 변화가 어떤 사람에겐 불편하고 불안할 수 있다. 변화의 방향이 우리가 가야 할 미래와 일치하는지,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바라보면서 수용할 건 해야 한다. 미투의 경우도 근시안적인 남녀 대결 구도로 싸우는 방식은 전혀 우리 사회에 도움이 안 된다고 본다.”

-2010년부터 서강대에서 강의하고 계신데.

“‘판례실무 연구’란 이름으로 대법원 전원합의 판결을 해설하는 강의다. 로스쿨 학생들은 변호사시험 준비하느라 치열하게 논쟁 중인 판결들을 자세하게 읽을 여유가 없을 것 같아서 만들었다.”

-사람들과 자주 모이는 편인가.

“친한 친구 두셋 만나고, 책 읽는 모임 정도다. 대부분은 혼자서 내 시간을 즐기는 편이다. 대법관 마치고 재판연구관 했던 분들과 자주 모이는 분들도 계시던데 나는 그런 모임이 아예 없다. 같이 일했던 판사들도 ‘아이, 우리 부장님은 저런 거 싫어하시니까’ 한다. 인간미 없어 보일 순 있다. 젊은 후배들에게 한번씩 전화하고 만나서 어려움도 들어주면 좋은데 상대에겐 그게 또 부담될 수 있지 않나? 오랜만에 얼굴 보자고 연락 오면 거절하진 않는다.”

-친구가 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성향이 비슷해야 하는 것 같다. 읽고 있는 책, 좋아하는 영화, 음악에 공통점이 있거나 말이다. 얘기할 거리가 풍부한 사람들과 친해지는 거라고 본다.”

-저서 <책 읽기의 쓸모>에서 유일한 도락(道樂)이 전공과 무관한 책 읽기라고 말씀했더라. 요즘 읽는 책은?

“티베트 불교에 관한 책과 레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도 재밌게 읽었다. 전자책(E-book)도 쓰는데 여행 갈 때 좋더라. 여러 권 들어가고 불을 켜지 않고도 읽을 수 있고. 아프리카에 캠핑여행을 갔을 때 텐트 안에서 편하게 읽었다.”

-여행 좋아하나.

“소설 좋아하는 것과 비슷하다. 일종의 ‘래빗 홀’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토끼를 따라 구멍으로 들어갔더니 전혀 다른 세상이 나온 것처럼 여행도 그렇다. 여행에서 자기자신을 찾는다고들 하는데 나는 오히려 자신을 잊어버리기 위해서 가는 것 같다. 최근엔 두 딸, 남편과 넷이서 차를 빌려 조용하게 다녔던 여행이 좋았다.”

-독서가는 TV를 멀리하는 경우가 많은데 드라마도 즐겨 보신다고 들었다.

“요즘에 재밌게 본 건 없고, 예능 중에 ‘효리네 민박’ 재밌게 봤다. 경치가 너무 좋아서. 큰 집은 필요 없지만 저런 그림 같은 전원 속에 들어가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하는데 과연 실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파트에 너무 길들여져서.”

-부군인 강지원 변호사가 청소년 상담 전문가다. 아내의 고민 상담도 잘 해주는 편인가?

“시원시원하게 얘기해주니까 도움이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문제는 나 혼자 해결한다. 말만 하면 풀리는 문제는 딸들 하고 툴툴거리면서 풀어버린다.”

-꿈꾸는 노년이 있다면.

“경쟁이 심한 사회니까 어쩔 순 없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늦게 출발해서 너무 일찍 끝난다. 짧은 시간 죽어라 일하고 갑자기 노년을 맞는다. 누구나한테 이삼십년이 남는데, 나한테도 그건 숙제다. 그 동안 공무원으로 계속 창의적이지 않은 삶을 살았기에 좀더 창의적이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삶은 어떨까 하고 자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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