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화백 인터뷰] 5.18때 스러져 간 벗들에게 내 그림이 위로될 수 있을까?

김근태 화백과 그의 작품

장애인 화가 김근태 ‘빛속으로’ 사회문제서 예술로 승화···”오준 전 유엔대사, 미술인생의 도반”

[아시아엔=알레산드라 보나노미 <아시아엔> 기자] 아래 글은 예술·장애·외교 그리고 민주주의에 관한 이야기이다. 죄책감이 영혼을 찾기 위한 여정과 얽혀 만들어낸 이야기이며, 광주에서 시작해 뉴욕에서 끝맺은 이야기다. 김근태 화백과 오준 전 UN 대사와의 파트너십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일단 이야기의 시작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김근태 화백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그리는 한국의 예술가다. 자신도 한쪽 귀와 한쪽 눈에 장애를 앓고 있기에, 이런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장애 이상의 것들을 담고 있다. 유년시절부터 대학까지 김근태 화백은 광주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1980년대초 광주에선 민주주의를 향한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격렬한 시위가 있었고 김 화백은 시민군 일원으로 전남도청을 점령하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항거에 가담했다. 시민군들 중에도 사태수습위원을 맡아 상황을 정리하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곧 군대가 시민·학생들을 진압하기 위해 도청을 둘러쌌다. 그는 탈출을 시도해 살아남았지만, 남아있던 많은 친구들은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 죄책감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그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힘든 시간을 겪으며 외국을 포함한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잃어버린 영혼을 되찾고자 했다. 몇 년 뒤, 목포에서 미술을 가르치던 그는 지적 장애아 시설을 방문했다. 아이들의 얼굴에서 그는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김근태 화백은 ‘그들이 인간의 참된 얼굴이다’라고 생각했다. 오랜 시간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나선 방황이 그 자신을 발견하면서 끝이 났다. 이 경험은 오랫동안 그를 괴롭혔던 감정과 죄책감을 다스리게 해주었다.

이후부터 김 화백은 그 아이들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한 그림들을 모아 전시한 그의 첫 전시회를 찾은 관객들은 “이런 좋은 작품을 외국에서도, 특히 유엔 같은 곳에서 전시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이 말 한마디가 김근태 화백과 오준 전 유엔대사와 만남의 시작이었다. 당시 오준은 UN주재 한국대사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의 의장이었다.

김 화백의 작품 사진을 보고, 오 대사는 유엔 전시가 가능하다고 판단하였고, 2015년 12월 3일 ‘세계 장애인의 날’에 뉴욕 UN본부에서 전시회를 잡았다. 전시회는 대성공이었고, 이후 김화백은 베를린.제네바·파리 등 다른 국제도시에서도 작품을 선보였다. 오 대사는 작품들이 세계적으로는 알려졌지만, 많은 한국인들이 그림을 보지 못했으니 한번 더 한국에서 전시회를 할 것을 제안했다.

그렇게 ‘빛 속으로’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서울 인사동에 있는 아트갤러리에서 김근태 화백, 오준 대사 그리고 장애를 가진 3명의 젊은 아티스트 작품을 만났다.

다음은 김근태 화백과의 인터뷰.

-전시회 컨셉은 무엇인가?

“‘빛 속으로’는 그간의 작품들이 2015년 UN 전시 이후에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림의 변화는 나의 눈 상태가 점점 악화돼 3년 전인 그때처럼 명확하게 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시회에서는 오 대사와 세 명의 다른 어린 예술가들 작품도 볼 수 있다. ‘빛 속으로’의 제목을 단 이유는 기독교인으로서 지적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부활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부활의 과정 속에서 그들이 빛을 지나가야 했다고 생각했다.”

-미술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중학교 때에는 미술보다 미술 선생님에게 더 관심이 있었다. 아주 젊고 예쁜 여 선생님이셨는데, 그것이 내가 그림을 시작한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미술동아리에 들어가고,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게 되었다. 나는 현재 주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그리지만, 예술의 주제나 대상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술가가 세상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나는 현실주의적 그림을 그려왔지만 이제는 4차원에서 그리려고 한다. 우리가 볼 수 없는 것들을 포함한 모든 것들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나는 명상을 하면서 보통 때는 볼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지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가끔 그런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거나 이해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기에 그러한 것들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기초적인 원색들을 사용하던데?

“그렇다. 원색들을 사용하는 이유는 아이들의 내면이 가장 잘 표현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색들로 아이들의 영혼을 어루만질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전시회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세 명의 어린 미술가들은 내 제자들이다. 나는 그들이 매우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을 키우기 위해서 그들의 예술품도 전시하기로 마음먹었다.”

-미술이 장애인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장애인 중에서도 지적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대개 사회에서 설 자리를 찾기 힘들다. 그래서 장애의 여러 사례들을 묘사하고 장애인들 또한 생각과 감정이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선입견을 없애길 희망한다. 나는 우리 모두가 편견에 젖어 있다고 생각한다. 편견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감정, 생각 그리고 인간 본성과 관련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편견을 없애는 것은 힘들겠지만, 줄일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젊은 사람들이 기성세대보다 이러한 문제에서 좀더 열린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다(웃음). 대체로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보다 열린 사고를 한다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왜 사람들이 장애를 가지고 있고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는 지에 대해서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이 보인다. 그러니까 미래는 좀 더 밝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과 외국에서 모두 전시를 했는데, 관람객들 사이에서 다른 반응이 있었는지?

“유교적 교육관으로 인해 한국인들은 직접적으로 자신에 대한 표현을 하거나 질문을 많이 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유럽이나 미국 등 외국의 경우 열린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내게 많은 질문을 했고 감정을 좀 더 직접적으로 전달했다.”

-김화백이 생각하는 주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한국에서 실행돼야 하는 것은 어떤 게 있을까?

“정부와 사회 모두 장애인 권리 증진에 앞장서야 한다. 장애인을 위한 시설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주어야 한다. 가령 장애인 시설이나 요양원은 대부분 비싼 임대료 등을 감당하기 어려워 교외에 위치해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새로운 미술 관련 프로젝트를 케냐와 베냉을 중심으로 아프리카에서 진행하고 싶다. 아프리카 사람들을 만나면 인간의 순수한 본성을 느낄 수 있다. 나는 그러한 분야에 관심이 많다.”

다음은 오준 전 대사 인터뷰. 퇴임 후 장애인 인권 등 시민사회 활동에 많은 시간을 사용하고 있는 오 전 대사는 지난 7월 세이브더칠드런 이사장을 맡았다.

-대한민국에서 장애인 차별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지?

“그렇다. 어떤 차별은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TV방송은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방송이나 수화를 포함하지 않고 있다. 그러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것도 일종의 구조적 차별이다. 고의적인 차별은 아니지만 여전히 차별은 차별이다. 더불어 인식의 결여로 인한 차별도 존재한다. 님비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서울 교외에 정부가 장애아를 위한 학교를 지으려고 하자 주민들이 자기가 사는 동네에는 안 된다고 반대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왜 그렇다고 보시는지?

“사람들의 사회적 인식이 충분하지 않아 비롯된 사고방식의 차별이다. 장애인 자신과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정부를 향해 동등한 접근성을 가진 시설 설립을 위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정부나 사회의 ‘자선’이 아닌 장애인들의 당연한 ‘권리’다. 화장실을 지을 때 남녀 모두를 고려해 짓는 것과 마찬가지다. 건물주가 ‘이 건물 고객의 대부분은 남성이니까 여자 화장실을 지을 필요가 없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듯이, 장애인 화장실도 마련되어 공평한 접근성을 가져야 한다. 한국과 유럽 그리고 북미 지역들을 비교해보면, 한국이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느낀다. 한국은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장애인 복지에 앞서 있는 편이나, 유럽이나 북미 국가들과 비교해 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한국만의 문제인가?

“특히 한국이 아직도 장애인의 권리보다는 보호와 복지 측면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는 정부와 사회가 장애인들을 위한 도움을 직접적으로 주는 이외에 사회적 인식을 높이거나 동등한 접근성을 확보하려는 등의 노력은 부족하다는 뜻이다. 예를 들자면 장애인들이 좋은 휠체어를 구입할 수 있게 도와 주지만, 막상 휠체어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아서 접근성은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좀더 사회적 접근방식을 취해야 한다.”

-정부가 이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고 있다고 보는지?

“한국의 현 정부는 진보성향의 정부다. 진보 정부는 대개 사회문제들에 대한 해결을 우선순위를 두고 방안을 제시하며 그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현 정부는 장애인 문제가 해결되고 발전하도록 계속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복지적 접근을 넘어서 사회적 접근방식을 취해야 한다는 문제점은 현재에도 남아있다. <번역 김소현 기자 조일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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