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군 블라디보스톡 입항 뒷얘기···”굳은 믿음이 기적을 낳았다”

세일러복을 선사받는 당시 전남함장 전상중 대령(오른쪽 두번째), 블라디보스토크 1993년 9월. 맨 오른쪽은 통역.

전상중 시인 “25년 전 오늘 한국 함정 최초 러시아 항구 입항···한러관계의 모델”

[아시아엔=전상중 해사 명예교수, 1993년 러시아 방문 당시 전남함(FF-957) 함장] 1993년 9월 27일은 대한민국 해군이 사상 처음으로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을 방문하여 양국 해군 간 연합훈련을 실시하고, 이를 통해 상호 신뢰 구축과 군사교류 증진에 획기적인 성과를 이룩한 날이다.

KAL기 격추 10주년이 되는 해이자 한·러수교(1990년) 후 처음으로 93년 8월 31일 러시아 해군함정 우달로이급 ‘판텔레예프’와 소브레멘니급 ‘비스트리’가 부산을 친선 방문했다. 이에 대한민국 해군은 친선 답방형식으로 꼭 25년 전인 그해 9월 27일 전남함(FF-957)과 울산함(FF-951)이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을 방문했다. 당시 이상우서강대 교수, 최평길 연세대 교수, 강성학 고려대 교수 등 국내 정치외교 분야 학자와 유용원 조선, 김준범 중앙, 이상기 한겨레(현 아시아앤 발행인, 전 기자협회회장) 등 언론인이 대거 동행했다.

“철의 장막을 거두고 오랜 동면에서 깨어나 이제 비상의 몸짓을 펴는 러시아···. 광음 속에 걸어 왔던 지난 발자국은 해인(海人)의 가슴과 바다 빛으로 정결하고 함께 하는 항로로 장도에 오를지니 너 러시아여! 장(帳)을 열고 나아가라”

이 글은 러시아 방문 함대의 기함(旗艦, 함대가 구성될 때 기준이 되며 함대를 지휘하는 사령관이 편승하는 함정)인 전남함 함장으로 대한민국과 러시아간의 국교수교와 우리 해군이 대양해군으로의 발돋움을 기원하면서 필자가 직접 쓴 글이다.

세계의 모든 해군이 바다를 매개로 하여 서로 통하고 복장의 색깔도 백색과 흑색으로 이루어진 공통점이 있어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긴 했지만, 당시 러시아는 공산주의 국가로 무척이나 폐쇄적이고 이질적이었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그들과의 공통분모를 만들어 내느냐 하는 것이 당시 현안이었다.

나는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를 이용하였다. 즉 주어진 상황이 불확실하고 판단하기 어려울 때, 평소 내 스스로에게 주문을 거는 방법이다. 즉 의사가 환자에게 가짜 약을 투여하면서 진짜 약이라고 하면, 환자 스스로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믿음 때문에 병이 낫는 현상을 말한다.

플라시보 효과란 약효가 전혀 없는 가짜약을 특효약인 것처럼 위장하여 환자에게 복용토록 함으로써 병세를 호전시키는 것을 말한다.

병원에서는 정신적인 질병이나 만성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이를 이용하여 커다란 효과를 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어원적으로 살펴보면 플라시보는 ‘마음에 들도록 한다’는 뜻의 라틴어이지만 ‘가짜약’ 이라는 의미도 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배가 아파 울고 있으면 할머니께서 “할머니 손은 약손이다. 할머니 손은 약손이다”라면서 배를 어루만져 주면 언제 아팠냐는 듯이 낫는다. 이 플라시보 효과 덕분이 아니겠는가?

군대에 갔다 온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위생병에 대한 불신이 대단하다고 한다. 물론 위생병 대부분이 의과대학이나 보건대학에서 전문적인 의료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간단한 기초교육만 받고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우스갯소리로 “우리 위생병은 배가 아프다면 배에다 빨간 약을 발라준다. 그리고 약을 주는데 웬 염소똥같이 생긴 것을 같이 주는지 모르겠다”는 말들을 하곤 한다.

그러나 정말 어려운 처지를 당하게 되면 위생병의 말을 곧이듣는 경우도 있게 된다. 이렇게 적용증이 전혀 다른 약으로도 병이 낫기도 하는데 이는 사람의 심리를 이용해서 효과를 보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실제 제2차 세계대전 중 약이 부족할 때 많이 쓰였던 방법이다.

우리나라 해군 역사상 최초의 러시아 방문에도 이러한 플라시보 효과를 적용했다. 우리는 먼저 러시아 해군에 대한 믿음

을 드러내 보였다. 그들의 우리에 대한 믿음과 신뢰 이상의 그것을 보여줌으로써 기적과도 같이 그들의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었다.

을 표출하였고 그들의 우리에 대한 믿음과 신뢰 이상의 그것을 보여 줌으로써 기적과도 같이 그들의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었다.

그들의 최초 계획에는 없었지만 대대적인 영접행사를 통하여 우리를 환영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행사를 통하여 대한민국과 러시아 양국 해군, 나아가 양국 관계개선을 위한 단초를 제공할 수 있었다.

블라디보스톡 졸로토이 로그베이(Zolotoy Log Bay) 항구로 들어가면서 우리가 예포를 발사하자 그들도 답례로 예포를 발사했다. 그리고 이를 시작으로 우리는 러시아 해군과 교포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입항하였다.

방문 기간 동안 러시아 태평양함대사령관 구리노프 상장과 부사령관 흐메리노프 중장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일행는 태평양 함대사령부와 잠수함 교육훈련대, 마카로프 해군사관학교 그리고 러시아 해병대사령부를 차례로 방문하면서 그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인간적인 유대감도 깊이 쌓았다.

이러한 서로간의 유대감을 바탕으로 나 자신은 가장 명예로운 장교에게 해군 수병의 복장을 선사하는 러시아 해군의 전통 풍습에 따라 이를 받는 행운까지 누리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간절한 마음과 굳은 믿음은 기적을 일으킨다는 플라시보 효과의 작은 본보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불신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고 모든 일에 항상 솔직해야 함은 물론, 본인 자신도 굳게 믿고 간절히 바라는 마음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나를 굳게 믿고 플라시보의 기적을 이루게 해준 당시 전우들의 노고와 그들의 깊은 충정을 나는 평생 가슴에 안고 살고 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요한복음 14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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