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울산 반구대 암각화①] 더 늦기 전에 보존 대책 나와야?
[아시아엔=김현원 연세대의대 교수,?<뉴패러다임 과학과 의학> <머리에서 가슴으로> 등 저자] 필자는 2016년 7월 문화재청장을 지낸 고려대 변영섭 교수, 반구대 암각화가 발견된 이후부터 매년 암각화의 사진을 찍어온 수묵화가 김호석 교수 등 다양한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바이칼호수와 알타이의 칼박타시 지방의 암각화를 탐사했다.
칼박타시 지방은 전체가 수천개의 암각화로 이루어진 박물관이었다. 수도 없이 이어지는 암각화들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동시에 한편으로 가슴이 뿌듯해지는 것을 느꼈다. 바로 수년 전에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직접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칼박타시의 어느 암각화도 반구대 암각화와 같은 문화·역사·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지는 않았다.
칼박타시의 암각화들을 보고 감동하면서 반구대 암각화를 새긴 분들의 시대를 초월한 예술성을 오히려 확인한 셈이다.
다음은 인터넷 불교방송인 유나방송(www.una.or.kr)에서 필자가 반구대 암각화와 지하수에 대해서 방송한 내용을 중심으로 다시 구성한 것이다.
“안녕하세요. 제가 최근 큰 물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작은 물에 관한 연구가 개인의 건강에 도움이 되고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물에 관한 연구라고 한다면 큰 물은 전체적으로 양질의 미네랄이 풍부한 물을 국민들이 마실 수 있도록 대량으로 공급하는 그런 연구를 말합니다. 아픈 딸아이 때문에 제가 작은 물연구를 시작했지요. 제가 큰 물에 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입니다. 울산에 반구대라는 지역이 있습니다. 먼저 반구대 암각화에 대해서 백과사전에 표현된 글들을 읽어 보겠습니다.
“반구대 암각화는 1995년 6월 23일 국보 제 285호로 지정되었다. 울산으로 흐르는 태화강 상류 반구대 일대의 인공호 서쪽 기슭의 북쪽으로 향한 암벽에 새겨져 있다. 하류에 있는 사연댐으로 인해 평상시에는 수면에 있다가 물이 마르면 그 모습을 보인다. 그 크기는 가로 8m, 세로 약 2m 이고 조각은 암벽 밑에서부터 부분적으로 퍼지고 있으며, 밑에서부터 암각화 상단선까지 높이는 3.7m 쯤 된다. 반반하고 매끈거리는 병풍 같은 바위 면에 고래, 개, 늑대, 호랑이, 사슴, 멧돼지, 곰, 토끼, 여우, 거북, 물고기, 사람 등의 형상과 고래잡이 모습, 배와 어부의 모습, 사냥하는 관경 등을 쪼아서 표현하였다. 여기에 표현된 동물들은 주로 사냥 동물 대상이고 이들 동물 중에는 교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과 배가 불룩하여 새끼를 가진 것으로 보이는 동물의 모습도 보인다. 이 암각화는 당시 사람들이 동물들이 많이 번식하고 그로 인해서 사냥거리가 많기를 기원 하면서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암각화의 연대에 대해서는 신석기시대에서부터 시작해서 청동기시대의 작품이라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시기가 차이가 나는 표현양식과 내용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암각화 그림 모두가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고 상당히 오랜 기간 원하는 그림을 추가하는 등 신앙행위의 장소로 계속되어 사용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어로의 행위를 묘사한 고기잡이배와 그물에 걸려든 고기의 모습을 묘사한 것도 실제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일종의 주술적 행위로 볼 수 있다. 아마도 그 당시의 반구대지역의 사냥과 어로의 풍요를 빌고 그러한 위령을 기원하는 주술 및 제의를 행하던 성스러운 장소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 교수의 글입니다.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가 여전히 보존문제로 관계자들을 고민 속에 빠트리고 있다. 울산시 언양읍 대곡리에 있는 이 암각화는 1971년 태화강 상류에 식수를 위한 사연댐을 만들게 되자 수몰예정지구의 문화재를 조사하던 동국대 문명대 교수팀에 의해 발견되었다. 높이 4m, 폭 8m의 암벽에 고래·사슴·호랑이·멧돼지 등 동물 모습과 활을 쏘는 사람 등 인간 모습이 무려 231점이나 새겨져 있다. 이는 어로(漁撈)와 수렵(狩獵)으로 삶을 꾸려갔던 선사시대 인들이 풍요(豊饒)를 기원하며 새긴 것으로, 특히 46점에 달하는 고래 그림은 신비감을 자아낸다. 그러나 사연 댐은 예정대로 만들어져 암각화는 수몰된 지 35년이나 되었고 어쩌다 이른 봄 갈수기에 잠시 모습을 드러내면 그 보존상태가 나빠져 가는 것을 보게 된다.(중략)
선사시대 울산만의 자연환경은 바닷물이 태화강 중류까지 들어와 300m에 달하는 내만(內灣)이 형성되어 있어 지리학에서는 고울산만(古蔚山灣)으로 불린다. 울산은 예나 지금이나 고래가 자주 나타나는 곳으로 먹이를 따라, 또는 얕은 바다를 찾아 고울산만으로 들어온 고래를 수심이 더 얕은 곳으로 몰아 ‘좌초’시킴으로써 선사인들은 효과적으로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암각화에 그려진 망보는 사람, 여러 명이 탄 배, 그물, 어책(漁柵), 작살에 찍힌 고래 등은 실제 사냥 모습을 그린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부산 동삼동 패총에서는 먹고 버린 고래뼈가 상당수 발견되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렇게 고래잡이가 가능했던 지질학적 시기는 6000년 전부터 3000년 전 사이라고 하니 신석기시대에 해당한다. 한편 반구대 암각화는 세계 동물학회에서 고래 연구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한다. 연구는 이렇게 점점 깊어지고 있는데 암각화는 날로 병들어 가고 있다. 무슨 대책이 없을까?”
*필자는 <뉴패러다임 과학과 의학> <생명의 물 기적의 물> 저자로 뉴패러다이머 카페(cafe.daum.net/khwsupport)를 통해서 뉴패러다임 과학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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