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길청 경제칼럼] 남북정상회담, 평화의 기회비용 얼마나 낮출까

[아시아엔=엄길청 글로벌사회경영평론가] 19세기 중반 톨스토이가 쓴 <전쟁과 평화>는 지금껏 불후의 고전으로 남아있다.

2차대전의 패전국 독일과 일본의 전쟁 흔적은 이제는 그들 나라 어디를 가도 찾아보기 어렵다. 가장 치열한 현대전쟁의 기억이 남아있는 베트남도 이젠 세계가 주목하는 개방된 나라다.

1956년 개장한 우리나라 증권시장은 언제나 한 자락 깔고 투자를 해야 했다. 바로 분단상황이 가져다준 ‘체계적 위험’(systematic risk) 때문이다. 필자가 병아리 애널리스트 시절인 1986년 11월 어느 날 한 중앙지는 김일성사망을 전면 톱기사로 실었다. 당시 석간이던 이 신문의 소식은 당일 개장하던 서울 증시를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트려 주가는 천당과 지옥을 오르내리는 롤러코스트를 타야 했다.

결국 오보로 끝난 일이지만, 특히 장기펀드를 운영하는 펀드매니저들은 손을 쓸 수 없는 형국이었고, 단기투자자들은 주식을 판 사람이 더 많아 주가는 일시에 하락했다가 오보로 확인되어 다시 반등하는 널뛰기를 하였다.

이렇듯 우리는 남북의 긴장이 조성되는 사건이 발생하면 금융투자시장에서부터 구멍가게의 라면과 손전등 가격까지 덩달아 춤을 주는 휴전국가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우리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주식을 자주 사고팔아 주식의 매매회전율이 아직도 많이 높다. 세계적으로 전세라는 임대주택 관습은 전쟁의 분단상황이 근자까지 유지된 독일과 우리나라에만 유독 오래 계속되고 있다. 채권도 우리나라는 꽤 오랫동안 단기시장이 중심이어서 만기가 10년을 넘는 장기국채를 발행한 것은 불과 얼마 전 일이다. 무엇을 오래 투자하기 어려운 불안정한 시국을 반영한 결과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랫동안 사채시장을 가지고 있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이 불안한 마음에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않고 을지로, 명동 등에서 사채시장을 형성한 것이다. 특히 주로 그들 중에는 이북출신 사업가들이 많았던 것도 따지고 보면 전쟁우려의 코스트였다.

해외로 큰 수출을 하거나 해외 건설공사를 하면 이행보험을 든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이행보험료은 다른 나라보다 비싸다. 돈을 빌리려 유로시장에 가면 우리나라는 추가로 내는 금리스프레드가 높다. 국제유가가 오르면 우리 국내유가는 더 많이 오른다. 전쟁을 대비한 비축유가 많아야 하기 때문에 그 비용이 시중가격에 늘 부담을 준다.

모두 분단의 얼굴 없고, 이름 없는 비용이다. 우리는 그 많은 전쟁 기우의 비용을 내고 여기까지 왔다. 언제 어디서 투자설명회를 해도 누구도 한국경제에 대해 단호하거나 명쾌하지 못했다.

그런 우리 민족이 이제 새로운 평화의 기대를 안게 되었다. 자산가격이란 높아야 능사가 아니다. 주식이고 부동산이고 멀리 보고 투자하고 가격이 안정될수록 품격 있는 나라가 되는 것이다.

우리 국토는 유난히 한강 북쪽으로 주택의 분포도가 낮고 사실 평당가격도 평균에 비해 낮은 편이다. 북으로 가는 도로의 분포나 차량통행량도 현저히 적다. 이 모두 우리가 지불했던 평화의 기회비용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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