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천하통일 43] 굴원의 ‘피눈물 경계’ 불구하고 초나라, 진에 패망
[아시아엔=강철근 한류국제문화교류협회 회장, 한류아카데미 원장, <이상설 이야기> 저자] 강대국 초나라는 영토가 넓고 자원이 풍부해 “갑옷을 입은 군사만 백만”(甲士百萬)이라고 자부할 정도로 막강했다. 그러나 역사가 항상 말해주듯이 외부의 적보다는 내부의 문제로 오랫동안 갈등하고 있어 국력이 쇠약해졌다. 왕과 대신들이 권력다툼으로 내란이 끊이질 않았으며, 충신들이 설 자리조차 없어져 갔다. 중국 최초최고의 시인 굴원이 마치 구약성서의 이사야처럼 그토록 눈물로 경계하고 예언했던 대로 초나라는 진나라에 멸망당한다.
초왕 부추 재위 3년째 되던 진시황 21년(기원전 226년), 영정왕은 장군들과 함께 초나라를 공략하기 위한 전시 작전회의를 연다. 먼저 영정왕이 묻는다.
“초나라를 치는데 병사 몇 명이면 족하겠소?”
그동안 공을 세워왔던 떠오르는 별 패기의 젊은 장군 이신이 나선다. “20만명이면 족합니다.”
그러나 역전노장 왕전 대장군의 답은 달랐다. “초나라를 가볍게 보면 안 됩니다. 60만명 이상 아니면 안 됩니다.”
“왕장군도 늙었구려. 무엇을 그리 겁내시오. 이신 장군은 과연 기개가 대단하오. 이장군의 말이 옳소.”
진왕은 이렇게 이신의 손을 들어주고 이신과 몽염(蒙恬)에게 20만 군대를 거느리고 초나라를 치게 했다. 왕전은 즉시 크게 절 하고는 병을 핑계로 고향인 빈양(頻陽)으로 낙향했다.
<초한지>의 영웅 초패왕 항우의 백부인 초나라의 명장 항연(項燕)이 비록 늙었지만 그런 어린 아해 이신 정도의 적수가 아니었다. 이신의 자만은 섣불리 공격에 나섰다가, 초의 대장군 항연의 작전에 말려 초나라 군의 항연과 굴정(屈定)에게 대패하여 진나라군은 거덜나고 말았다.
패전 보고를 받은 진왕은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친히 빈양으로 왕전을 찾아간다. 영정은 왕의 체면이고 뭐고 무조건 사과하며 왕전의 출전을 요청한다.
“과인이 경솔했소. 대장군의 말을 듣지 않고 섣불리 판단하여 이신을 보내 초나라에게 욕을 당하고 말았소. 지금 초나라 병사들이 계속 밀고 들어오고 있는데, 장군이 비록 병중이라고는 하지만 과인과 진나라를 버려서야 되겠소?”
왕전은 여러 차례 사양했으나, 결국 60만 대군을 준다는 조건으로 출전을 허락했다. 진왕은 친히 파상(?上, 혹은 패상(?上)까지 나와 전송했다. 그때 그곳에서 백전노장 왕전은 두고두고 레전드로 남아 있는 기막힌 멘트를 날린다. 그것은 너무도 엉뚱한 요청이었다. 왕전은 모두가 들리도록 큰 소리로 고래고래 소리치며 왕께 말한다.
“대왕이시여! 전쟁에 나가는 저에게 좋은 전답과 큰 저택을 하사해 주십시오!”
영정왕이 어리둥절하다가 파안대소하며 답하는데, “장군은 이미 전쟁을 하러 나가는 몸인데, 어찌 가난을 걱정하시오.”
“제가 옛날부터 대왕의 장군이 되어 공을 세워도 결국은 후(侯)로 봉해지지 않았고, 뭐 이렇다 할 재산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대왕께서 이렇게 신을 전송하실 때, 전답과 집을 청해 자손들이라도 잘살게 하려는 것이지요.”
영정왕은 더욱 큰 소리로 웃었다. 대장군 왕전은 이에 그치지 않고 국경에 이르기까지 무려 다섯 차례나 사자를 함양에 보내 진왕에게 약속한 전답과 큰 집을 하사해 달라고 졸라댔다. 부장들이 너무 민망해 대장군 왕전에게 퉁을 준다.
“장군님답지 않게 왕께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무슨 재산 타령을 그리도 심하게 하십니까?” 왕전이 묵묵히 있으니 부하 장수들이 거듭 묻는다. 이에 비로소 대답한다. “너희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소리 하지 말아라. 영정왕은 평상시에는 사람 좋아 보이지만, 사실은 성질이 더럽고 사람을 믿지 않는다. 지금 영정은 진나라의 모든 무장 병력을 나에게 다 위임했다. 지금이라도 내가 마음만 먹으면 진나라는 한순간에 내 것이 된다. 왕으로서 얼마나 불안하고 위험한 상황이냐? 그러니 내가 적극 나서서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그래서 내가 공개적으로 주접을 떤 것이다. 많은 재산을 자꾸 청하여 자손들을 걱정하고, 내 자신의 신변만을 도모한다는 것을 보여줘서 내가 그릇이 아주 작은 소인배이며, 나에게 다른 뜻이 없다는 것을 왕께 보여 주지 않는다면 진왕은 도리어 나를 의심하게 될 것이다. 결국 이것이 다 너희들의 목숨을 살리는 계책이다.”
왕전이 새로 장군이 되어 60만의 엄청난 병력으로 쳐들어온다는 소식에 초나라에서는 전국의 군사를 총동원하여 이에 맞선다. 왕전을 맞아 싸울 초나라의 장수는 또 다시 항우의 삼촌 대장군 항연(項燕)이었다. 그런데 왕전의 대군은 진지를 굳게 쌓고 지키기만 할 뿐, 도무지 나가 싸우려 하지 않았다. 초나라 군대가 아무리 싸움을 걸어도 왕전은 이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매일 병사들을 편히 쉬게 하고, 목욕을 하게 하면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넉넉히 보급했다. 왕전은 때로는 병사들과 함께 들판에서 식사를 하며 사기를 북돋아 주기도 했다. 1년여 지난 뒤에 왕전은 병사들이 스스로 돌 던지기와 뜀뛰기를 한다는 보고를 받고, 이제 병사들을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한편 초군에게 들리는 진의 정보는 왕전 대장군이 이제는 늙고 병들어 대충 싸우는 시늉만 하다가 날 잡아서 도주할 것이라는 풍문이 파다했다. 초군 또한 기강도 해이해지고 싸울 의욕도 사그러져 있었다. 초의 항연은 이제는 진나라 대군을 걱정할 필요 없다고 판단하고 급기야 군대를 철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동쪽으로 이동했다. 왕전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급히 초군을 추격하여 기습공격을 감행하였다. 왕전군은 막강하지만 기강이 해이해지고 전의를 상실한 초군을 산산조각 내었다.
왕전은 기 지방의 남쪽에 이르러 장군 항연을 잡아 죽이게 되었다. 너무도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작전이었다. 총사령관을 갑자기 잃은 초나라 군대는 패주하기 시작했다. 왕전은 승세를 몰아 초나라 각지를 공략했다. 시황제 24년(기원전 223), 초왕 부추(負芻, 재위 BC 227∼223)는 포로가 되었고 강대국 초나라는 이렇게 너무도 허망하게 멸망했다.
굴원이 그토록 눈물로 충언하고 예언했던 대로 초나라는 진나라에 멸망당한다.
그로부터 20여년 후, 초패왕 항우는 오늘의 패배를 잊지 않고 절치부심 끝에 진나라에 삼촌의 원수를 아주 처절하게 갚아준다. 투항해온 진나라군 20만명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산 채로 묻어버린다. 모두들 너무도 끔찍해서 말도 못 꺼내는데, 항우 홀로 하늘을 바라보며 혼자서 중얼거렸다. 드디어 삼촌 항연의 복수를 끝냈다고…. 초패왕 항우는 마음이 울적할 때마다 존경하는 삼촌 항연 장군을 떠올렸다. 갈 길을 알려달라고…. 그의 마지막 가는 길에서도 만고의 로맨티스트 항우는 사랑하는 연인 우미인을 한 칼에 죽이고 자신도 죽어가면서 백부이자 멘토인 항연을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