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영화 ‘인턴’으로 살펴본 ‘꼰대’와 ‘참다운 멘토’, 그 경계는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꼰대’라는 말이 있다. 은어(隱語)로 잔소리가 많은 ‘늙은이’를 이르는 말이다. 학생들의 은어로 ‘선생님’을 비하해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필자 역시 꼰대 대열에 들어선지 오래다. 이마에 주름살 하나 없는 것을 보면 꼰대는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젊은이들의 행동에 잔소리를 꽤나 하는 것을 보면 꼰대는 분명 꼰대인 것 같다.
미국영화 <인턴>을 보셨는지? 로버트 드니로와 앤 해서웨이가 주연한 영화다. 이 영화를 보면 우리가 중년이 되고 노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 겁낼 일이 아니라 축복인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중년을 지나 이제 노년이 된 로버트 드니로(벤)는 은퇴 후에 일상적인 생활을 하다가 노인 인턴 채용을 하는 앤 해서웨이(줄리)의 회사에 지원하게 되어 다시 인턴으로 입사한다. 재미있게도 그가 다시 입사하게 된 회사는 그가 지난 40년 동안 몸담았던 회사와 같은 사무실을 사용했다.
그 누구의 기대도 없었던, 그냥 사회봉사적인 회사의 의무 채용에 벤은 그의 경험과 놀라운 친화력을 살려서 잘 적응하며 결국 CEO 줄리의 비서 역할까지 맡게 된다. 처음에는 탐탁지 않게 귀찮기만 하던 할아버지 인턴의 존재가 이제 젊은 사장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인생의 ‘멘토’와 같은 존재로 직장 보스와 인턴의 관계를 넘어선 친구가 되어간다. 줄리의 인생에 참다운 선생으로, 또 동반자로 남겨지는 따뜻한 내용이다.
이 시대에 70살 넘은 노인은 그저 불필요하고 귀찮은 존재로 여겨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경험 많고 세월을 겪은 사람들에게 잊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우는 따뜻한 영화가 <인턴>이다.
노인이 되고 나이가 든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니다. 다만 꼰대 소리를 듣지 않고 노년을 보낼 수 있는 게 중요하다.
이 영화에서 눈여겨 볼 점은 꼰대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것도 먼저 충고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움을 요청하면 간결하게 거들어 스스로 깨우치도록 한다. 벤은 한 회사의 부사장까지 지냈지만 인턴사원으로서 본분을 잘 지킨다. 하찮은 일이라도 주어진 일은 늘 성실하게 처리하면서도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한다. 억지로 젊은 스타일을 흉내내려 애쓰지 않는다. 옛날 자신이 근무했던 때처럼 서류 가방을 들고 정장을 입고 출근한다. 디지털 환경에서도 ‘아날로그’ 적인 요소가 필요할 때가 있는 법.
사실 ‘꼰대’와 ‘멘토’는 조그만 차이에서 비롯된다. ‘꼰대’와 ‘멘토’는 둘 다 충고를 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하지만 다음 세 가지가 다르다.
첫째, 멘토는 남이 요청하면 충고를 해주지만, 꼰대는 자기 마음대로 충고한다.
둘째, 멘토는 미래를 말하지만, 꼰대는 과거만 떠벌린다.
셋째, 멘토는 자신의 실패 사례도 소개하지만, 꼰대는 자신의 성공 사례만을 말한다.
꼰대의 가장 큰 착각은 자신을 멘토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은퇴 후, 6개월 내에 새로운 것을 배운 것이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시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지 않고 자신의 오래된 경험을 일반화해서 남에게 일방적으로 말하면 꼰대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나이 들어 꼰대가 되기 싫다면서도 꼰대를 벗어나려는 노력은 안 한다는 것이 가장 큰 꼰대의 특징이다.
아는 것이 많다고, 할 말이 많다고, 멘토가 되는 것은 아니다. 꼰대는 말이 많고, 어떤 일에 그냥 지나치지 않는 특성을 지닌다. 꼰대는 하는 말의 내용 중에는 중요한 것도 많고 일견 논리정연하다. 그러나 방식이 다분히 ‘자기중심적’에다가 ‘과거지향적’이고 때로는 ‘자기영웅화’에 집중한다.
우리가 꼰대라고 지레 주늑들고 젊은이들이 불의(不義)를 저지르는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친다면 그건 그야말로 꼰대가 되고 만다. 2009년 여름, 영국 남부 해안 도시 본머스에서 10대 폭력배들이 길거리에서 축구를 하다가 시민들에게 행패를 부렸다. 이 장면을 지나가던 한 사람이 휴대전화 동영상으로 찍으며 야단쳤다.
그는 폭력배 4명에게 집단폭행을 당해 병원 신세를 졌다. 이 시민은 이전에도 길거리서 소변보는 깡패들에게 경고를 하다가 “꼰대는 그냥 가!”하며 몰매를 맞을 뻔했는데, 출동한 경찰 때문에 겨우 살았다. 이 사람은 일견 꼰대로 보이지만 사실 보통 사람이 아니다. 지난 3월 22일 영국 런던 테러 때, 피하지 않고 사건현장에 뛰어들어 칼에 찔린 경찰관을 위해 인공호흡과 지혈을 했던 토비아스 엘우드다. 그는 영국의 외무차관이자 보수당 소속 하원의원이다. 토비아스 엘우드는 단순히 꼰대가 아닌 한 사회의 어른으로 응당 자신이 해야할 역할을 한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국회에서 ‘일자리 창출’을 위한 시정연설을 했다. 그 내용 중의 하나가 ‘노인 일자리’ 대책도 있다. 우리도 다니던 회사에 ‘노인 인턴’으로 들어가 멘토역할을 하는 참다운 ‘꼰대’가 있으면 어떨까 싶다.